[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네 번째 만남 : 강아희 님(下)
2개월도 안 된 새끼 고양이들의 보호자가 된 그는 고양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초보 집사였다. 당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해솔이를 데려왔던 동생이 일러주는 대로 하나씩 챙겼다.
집사로서 그에게 제일 처음 떨어진 미션은 새끼 고양이들 분유 먹이기였다. 아직 젖을 다 떼지 못한 새끼 고양이들은 어린아이처럼 자주 먹여야 했다.
그는 일하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한 마리씩 안고 분유를 먹였고, 배변할 수 있도록 마사지도 해줬다. 처음 해보는 것이다 보니 모든 것이 서툴고 조심스러웠다.
‘어미가 곁에 있었다면 더 잘해줄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제대로 잘하고 있는 걸까?’
그의 우려와 달리 새끼 고양이들은 잘 먹고, 잘 싸고, 무럭무럭 자랐다.
배를 마사지해주어야 배변을 하던 고양이들이 어느 날부턴가 스스로 알아서 화장실을 가렸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배변은 어미한테 배운다고 들었거든요. 어떻게 가르쳐줘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얘네들이 알아서 잘 가리니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원래 고양이들은 모래 화장실만 마련해주면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변을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초보 집사들은 새끼 고양이들의 이런 모습에 놀라곤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맘 카페를 이용하는 것처럼 그 역시 고양이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그때그때 필요한 정보를 찾아가며 고양이들을 케어했다.
줄곧 집에서만 지내다가 처음으로 다 함께 외출을 하게 된 건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좁은 곳에 들어가 있길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습성 덕분에 가방 안에 넣고 차에 태우는 것 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차에 타서부터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3마리가 계속 울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이고. 너네들 대체 왜 우는 거니.'
혹시 멀미를 하는 건 아닌지, 뭐 때문에 우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까 운전하는 내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알 수가 있나.'
그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유독 어미와 일찍 떨어진 탓에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3마리 모두 건강하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곧바로 예방접종을 시작하고 중성화 수술 등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더니 정말 세 아이들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고양이 3남매의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어려서는 먹고 잠만 자던 고양이들이 커서 '냥초딩'이 되자 그의 집사 생활이 점점 고단해지기 시작했다.
'냥초딩'은 표준어가 아니기 때문에 사견을 더해 설명하자면 ‘유년기를 막 벗어난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는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귀여운 사고뭉치’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냥초딩'과 비슷하지만 사고를 많이 치는 경우 '냥아치'라고 낮춰 부르기도 한다.
초보 집사인 그에게 냥초딩 3남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제 자식 삼아 키웠으니 지금도 마냥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것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아이들이 예쁜 것과 집사 생활이 힘든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미운 4살'이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게 정말 미워서가 아니라 육아가 힘들기 때문에 하는 말인 것처럼, 집사에게는 고양이를 '냥아치'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피곤해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지금부터는 그가 꼽는 고양이 집사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혹시 고양이를 키워볼까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이래도 끝까지 키울 수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첫 번째, 밤낮 할 거 없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쑥대밭으로 만든다.
냥초딩 3남매인 모카, 레오, 호두는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사고 치기 일쑤다. 이를테면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책이나 벽지를 발톱으로 할퀴어놓는다거나, 가구 위에 올라가서 물건을 쓰러뜨린다거나, 화병을 넘어뜨리고 꽃을 물어뜯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이다. 한 번은 고양이들이 뛰어놀다가 텔레비전을 쓰러뜨려서 아예 망가뜨리기도 했다.
고양이들에게 주의를 준다고 알아들을 리도 없으니, 대형 사고를 못 치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가 서재를 '고양이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 이유다.
금지된 방 앞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고양이의 간절한 눈빛에 못 이겨 문을 열어주는 순간, 방 안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두 번째, 고양이는 야행성이라 새벽 3시쯤 냥아치 본능을 발산한다.
밤에 잘 시간이 되어서 침대로 향하면 이미 3마리의 고양이들이 침대를 모두 점령하고 있다. 그는 애매하게 남은 공간에 몸을 누인다. 시간이 지나면 고양이들이 다리나 옆구리 쪽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다. 자면서 몸을 들척거릴 때마다 걸리적거려서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고양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한 침대를 써왔기 때문에 적응이 되어서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 그래도 누워서 잠을 잘 수는 있으니까.
그러나 새벽 3시쯤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참 숙면을 취해야 할 시간에 눈을 뜬 고양이들은 뭐에라도 홀린 것처럼 신나게 뛰어다닌다. 미친 듯이! 그야말로 크레이지 타임이다. 그 광란의 현장이 펼쳐지는 장면이 어떨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어린 나이의 ‘냥끼발랄’한 고양이 3남매의 폭주는 그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때만큼은 통제 불능이기 때문에 고양이들은 누워 있는 그의 몸을 마구 밟고 뛰어다니기도 한다. 때문에 제 아무리 깊은 수면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다. 고양이 3남매는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듯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온 집안을 초토화시킨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지는 크레이지 타임이 끝나야 비로소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집사로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가장 힘든 건 잠을 잘 못 자는 거 같아요. 세 마리가 옆에 딱 붙어서 자니까 불편한 것도 있고, 고양이들은 야행성이라서요. 밤에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뛰어다니거든요.”
혹시 고양이를 키우려는 사람이라면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말이다. 고양이는 야행성!
그가 밤잠을 덜 설치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잠들기 전에 많이 놀아주는 것이다. 제일 자주 하는 놀이는 고양이들이 좋아하기로 검증된 낚시 놀이다.
“낚시 놀이는 진짜 팔 빠지도록 했어요. 실컷 놀리고 나서 재우면 밤에 안 깨고 같이 잘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아무래도 같이 놀아주다 보면 고양이들이 일부러 할퀴려고 그런 게 아니라도 발톱에 긁힐 때가 있거든요. 특히 여름에는 옷 소매가 짧으니까 놀아줄 때 좀 조심스러운 면도 있죠.”
그는 지난밤에도 잠을 깊이 자지 못해 피곤하다면서도 밝게 웃었다.
“고양이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달라붙어서 자는 애들(고양이들)때문에 불편하고 어색했거든요. 깊이 못 자기도 하고요. 근데 어쩌다 본가에 가거나 친구네 집에 가서 잘 때는 편하게 누워도 신기하게 잠이 안 오는 거예요. 고양이들이 없는 곳에서 자려니까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이상한 일이다. 숙면을 방해하던 고양이가 없으니 꿀잠을 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고양이들이 옆에 없으니까 잠이 안 온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어느새 고양이들이 그를 길들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고양이는 털이 많이 빠진다.
다행히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고생했던 그가 고양이를 키우면서는 아무 이상 없이 생활하고 있지만, 고양이의 털 빠짐이 생활하는데 불편한 건 사실이다. 평소 깔끔한 성격이라면 더더욱.
그는 부피가 큰 이불을 세탁소에 맡기러 갔다가 거절당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거절의 이유는 당연히 털 때문이었다. 그는 세탁소 주인의 말에 수긍하고 돌아와 집에 있던 세탁기를 16kg 대용량으로 바꿨다. 돌돌이로 털을 떼어내고 세탁하는데도 항상 먼지 거름망에 털이 한 뭉텅이씩 모이는 게 신기할 정도로 털이 많이 빠진다고.
"아무리 잘 치워도... 털 빠짐에 대해서는 그냥 무덤덤해지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는 해탈한 듯 피식 웃었다.
그는 고양이 집사로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도 눈을 반짝거리며 계속 웃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미소 짓게 하는 것일까.
“고양이 키우면서 성격이 더 밝아졌어요. 아무래도 당진에 살다 보니까 친구나 가족도 다 떨어져서 지내는데 고양이들이 있으니까 외로움도 덜하고요. 그 애들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힘이 나니까. 그냥 저한테는 고양이들이 운명이었나 봐요.”
비록 그가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에겐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어미묘 해솔이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동하는 것도 함께 느꼈고, 갓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함께하며 '키운 정'도 끈끈했다.
어미묘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직접 분유를 먹여가며 품 안의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으니 유달리 더 애틋한 정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왜 식물도 그렇잖아요. 사랑받는 식물이 더 무럭무럭 자란다고. 꼭 그래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제가 얘네들 아주 어릴 때부터 매일 밤마다 한 마리씩 이름 부르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줬거든요. 고양이들이 싫어하면 안 했을 텐데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지금도 계속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얘네들한테 사랑을 줄수록 제가 더 행복해진 거 같아요.”
그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최근에는 안 좋은 일도 있었고 너무 힘들었거든요. 근데 고양이들이 위로를 해주는 거 같더라고요. 저한테 앞발을 이렇게 대면서 눈을 마주 보는데……. 마치 뭘 알고 위로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막 울컥하더라고요. 그때 고양이들 덕분에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너네 때문에 산다' 하고 한 마리씩 안아줬어요.”
어느새 고양이들은 그의 삶 깊숙이 침투해 행복을 더해주고 슬픔은 덜어주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의 마음 안에 늘 고양이들이 있어서인지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동물 학대 뉴스 같은 것도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보고 넘겼던 것들인데, 고양이들 키우고부터는 그런 거 보면 너무 속상하고 눈물 나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 그리고 여긴 시골이라 로드킬이 많은데 그런 걸 보면 막 가슴이 쿵쿵거리고, 우리 애들은 집에 잘 있는 거 알면서도 빨리 가서 애들 보고 싶고 그렇더라고요.”
그의 말속에서도 ‘고양이들’은 어느새 ‘우리 애들’이 되어 있었다. 집사인 동시에 엄마이기도 한 그의 마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들에 좀 더 눈길을 주고 마음을 쓰게 된 것도 작은 변화다.
그가 ‘캣맘’이 된 것도 고양이를 키우면서부터다. 캣맘으로 활동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밥 먹이던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이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이 앞선다고.
어쩌다 관심도 없었던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지만, 그의 집사 생활이 지속되고 캣맘으로까지 확장되는 힘은 결국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사랑일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면 털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주는 행복은 그 단점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고요. 무엇보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런 책임감은 꼭 있었으면 좋겠어요. 생명이잖아요.”
첫 만남은 그저 가엾은 마음에 베푼 호의였지만, 점차 관심이 생겼고, 관심이 생기니 걱정하게 되었고, 어느새 사랑하는 가족이 되었다. 비록 그의 로망이었던 프렌치 불독과는 전혀 다른 고양이지만,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초록 단풍잎에 빨간 물이 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시간들 사이로 천천히 쌓인 사랑에는 그만큼의 단단함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의 가족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백지상태에서 시작된 고양이 육아와 집사 생활은 평범해 보일 정도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고양이가 야행성인 것도, 털이 많이 빠지는 것도, 높은 곳에 잘 올라가(사고를 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다 고양이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이걸 뒤집어 보면 고양이의 털 빠짐은 가장 대표적인 '파양'사유이며, 다른 특징들도 마찬가지로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간과하기 쉬운 어려움들이다.
때문에, 예쁘고 귀여워서 키워보려고 데려왔지만, 털도 많이 빠지고 손도 많이 가고 키우기 힘들다며 다시 돌려보내거나 유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같이 살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는 초보 집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의 경우처럼 키우면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의 성향과 맞는지부터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 자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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