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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Oct 30. 2019

외눈박이가 된 품종묘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첫 번째 만남 : 성하연 님(上)

그는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포인핸드¹를 들여다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었고, 다른 고양이를 입양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마음 쓰이는 유기동물의 정보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개인 SNS에 공유하는 게 전부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달큰이를 보기 전까지는.

      

⒧포인핸드 : 유기동물 정보 공유 애플리케이션




썸네일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손이 갔다.     

“우리 애들이랑 닮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더 신경 쓰였다.

체중이 겨우 500g에 불과한 사진 속 고양이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안구가 돌출되고 피딱지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치료가 시급해 보였다.     

‘이대로 두면 얼마 못 살고 죽을 거 같은데, 이런 애를 누가 입양하려고 하겠어.’     

안타깝지만 그에게는 이미 3마리의 고양이가 있었고, 더 이상 식구를 늘리고 싶진 않았다.

쯧쯧, 혀를 차면서도 모른 척하자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지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뭘까.’

고민하던 그는 자비를 들여 치료만이라도 해주고 싶어 보호소에 전화했다.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입양하시게요?”

치료를 위해서는 입양을 해야 된다는 의미였다.

“아…….”

그는 잠시 망설였다.

입양할 생각까진 없었으니까.

복잡한 생각들이 우르르 몰려왔지만, 이윽고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네. 제가 입양할게요.”

얼굴 한 번 마주 보지 못했지만 둘은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



오늘 만나실 분은,
서울 은평구에 사는 성하연 님입니다.
프리랜서 예능 PD인 그는 많은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퇴근 후에 더 바쁜 사람입니다.
그의 가족 소개는 차차 하도록 할게요.






그는 양주에 있는 보호소에서 달큰이를 데리고 나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달큰이는 셀커크 렉스(selkirk rex)라는 품종묘인데, 펫 숍이나 품종묘 공장에서 결막염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악화됐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보니 상태가 더 심각했다. 눈가에는 고름과 함께 흘러내린 핏물이 얼룩져 있었고 피부도 엉망이었다. 공고에는 3개월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작고 야윈 몸은 고작 2개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갔을 때 달큰이의 눈은 이미 실명에 가까운 상태였다. 수의사는 눈을 살릴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지나친 희망을 경계했다.


치료가 시급한 건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겨우 붙어 있는 생명이라고.


기력도 없고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당장 수술을 하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게 종합적인 소견이었다.


일단 수술을 뒤로 미루고 달큰이가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도록 돕는 게 급선무였다.


이미 실명에 가깝다고 했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능한 눈 치료를 병행했다. 안약을 넣고 내복약과 영양제를 챙겨 먹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안구를 소독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달큰이의 눈에서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보기만 해도 아픈데, 달큰이는 대견하게도 잘 견뎌내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육안으로 보기에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혹시나 잘 치료해주면 시력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눈은 안 보이더라도 안구 적출 수술까지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바람이 점점 커졌다.


일주일 뒤, 달큰이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 기력을 조금 되찾긴 했지만 피검사 수치는 아직도 수술하기에 부담되는 수준이었고, 시력 회복에 대한 가능성도 여전히 미미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린 듯 수의사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처음보다는 눈이 조금 맑아진 것 같으니까 지금 하던 대로 계속 케어해 주시고 조금만 더 지켜볼게요.”


조금이나마 괜찮아졌다는 말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다. 달큰이도 기력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사료도 잘 먹고 생존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덩치 큰 누나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식사하는 달큰이


기력을 되찾은 달큰이는 병원에 상태를 체크하러 갈 때마다 조금씩 나아졌고, 3주 차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때마침 왼쪽 눈은 적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그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보존 치료를 지속한 덕분이었다.


과연 시력이 어느 정도까지 돌아올지는 미지수였지만,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 소식이었다.


수술 후 병원에서 회복 중인 달큰이


안타깝지만 이미 극심한 안구손상으로 되돌릴 수 없게 된 오른쪽 눈은 끝내 적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달큰이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남겨진 왼쪽 눈은 기대 이상으로 시력이 회복되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외눈박이가 되었지만 다른 고양이들처럼 사냥 놀이를 하거나 함께 어울려 마음껏 장난을 칠 수 있게 된 건 그가 일구어낸 작은 기적이었다.


달큰이는 수술 후에 폭풍성장을 거듭하며 위풍당당한 성묘가 되었다.


달큰이가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만약 그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병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입양자를 기다리는 유기동물은 차고 넘치는데, 그 가운데서 병들고 아픈 동물은 경쟁력이 없으니까.


수백 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지불하고 지극 정성으로 병수발을 하면서까지 유기동물을 입양하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라면 못할 것 같다. 차라리 단발성으로 치료비를 기부하라면 그게 더 쉬운 선택지일 것이다.


예컨대 그가 입양은 못하지만 치료만이라도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 이유는 나와 비슷할 것이다. 입양이 그만큼 긴 시간동안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는 달큰이를 포함해 5마리의 고양이 가족이 있고, 임시보호(이하 '임보') 중인 고양이 6마리가 있다. 그나마도 지난주에 1마리가 입양을 가서 6마리로 줄었지만, 이중에는 달큰이처럼 실명을 했거나 질병 때문에 치료 중인 고양이도 있다. 좋은 가족을 찾아 입양 보낼 때까지 험난한 가시밭길이 그의 앞에 펼쳐져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이렇게 열성적으로 동물 구호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동물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가 '욕먹을 각오로' 나와의 인터뷰에 나서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숨겨져 있다.



글·그림 / 자유지은



오래된 반성문 같은 그의 과거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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