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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Jan 28. 2020

죽을 때까지 품 안의 자식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일곱 번째 만남 : 박선영 님(下)

▼전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아내와 의논해보겠다던 사장님의 확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가 운영하는 공방에서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원래 살던 지역을 떠나 갑작스럽게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 샘이니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스러웠는데 불과 반나절 만에 제집처럼 편안하게 행동했다.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자신이 직접 키우는 쪽으로 기울었다.


"사실은 제가 TNR을 보내 놓은 다음부터도 내심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긴 했거든요. 그래도 혹시 더 좋은 입양처가 생길 수도 있는데 제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해버리면 괜히 그런 기회를 뺏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일단 좀 지켜보려고 했던 건데 얘가 너무 적응을 잘하고 있으니까 굳이 다른 집에 업둥이로 보내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지금 그 사장님 집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사이가 안 좋은데 괜히 얘가 그 집에 가서 천덕꾸러기 될까 봐 걱정도 되고.

 

진즉부터 마음이 있었던 터라 결심을 굳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운영 중인 공방 이름을 본따 ‘노리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이했


이렇게 입양을 결정하고 나서야 짧게 잘린 한쪽 귀가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TNR을 마친 길고양이는 수술과 함께 한쪽 귀를 1cm가량 잘라내기 때문이었다.


"제가 키우게 될 줄 알았으면 이렇게 귀 안 잘라도 됐던 건데, 괜히 TNR 보내서 미모를 버렸어요."

 

그가 애석한 눈빛으로 방석에 누워 있는 노리를 바라보았다. 





2017년, 제주로 귀향하면서부터 더 이상 고양이를 안 키우겠다고 했던 그가 또다시 반려묘를 입양하게 된 건 언제나 '묘연(猫蓮)'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제주도에 오면서 고양이를 안 키우겠다고 마음먹긴 했지만, 만약에 묘연이 닿아 만나게 된다거나 제가 다시 고양이를 맡아 키워야 되는 상황이 생긴다면 굳이 그것까지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맞다. 묘연이 없었다면 그가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고양이 집사로 살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묘연을 믿지 않았다면 다시 고양이 집사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로 21년 차 집사가 된 그에게 ‘묘연’이란 어떤 것일까.


“그냥 묘연이 있으면 제가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고양이가 따르는 것 같아요. 그전에 키웠던 애들도 그렇고 ‘노리’도 그렇고. 고양이를 키울 생각이 없었는데도 어느 순간 제 앞에 나타나고 제 품 안에 들어오는 거 같아요.”



그는 그동안 자신이 만난 고양이들 중에서 묘연이었다고 생각하는 고양이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날따라 차를 두고 출근하는 바람에 퇴근할 때도 평상 시라면 들어서지 않았을 길을 걷고 있었다.
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을 무렵, 서늘한 공기가 에워싼 거리에는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때, 어디선가 또렷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풀숲에서 울고 있던 새끼 고양이 1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보이는 핏덩이였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선뜻 데려갈 수도 없었다.
갈등하며 서 있는 와중에도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쉼 없이 울려 퍼졌다.
왜 날씨가 추워지면 애처로운 마음이 더 짙어지는 걸까.
그는 새끼 고양이를 품에 안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안타까움 섞인 대답만이 흘러나왔다.

“안 되지. 집에 이미 넘치는데…….”

그도 알고 있었다.
집에는 이미 고양이 3마리와 강아지 1마리가 있었기에 더 이상 숫자를 늘리는 건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다시 내려놨는데, 새끼 고양이는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빽빽거리며 안간힘을 다해 울어댔다.
그의 눈엔 마치 죽을 둥 살 둥 애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안 된다 모질게 마음먹고 그 자리에서 멀어지려 노력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강하게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결국 얼마 못 가서 걸음을 멈춘 그는 반쯤 돌아서서 읊조리듯 말했다.

“이리 와.”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 신기하게도 그 새끼 고양이는 줄기차게 울면서도 기를 쓰며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보니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새끼 고양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러고 있던 찰나...
때마침 외출했다 돌아오던 어머니와 마주쳤고, 고양이 사랑이 각별한 어머니 덕분에 그 새끼 고양이도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운명적으로 구조된 새끼고양이는 12년간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더 오래 함께했다면 좋았겠지만 고령에 접어들자 뜻밖의 병이 찾아왔다.


나중에 암에 걸렸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안락사 얘길 하시더라고요.

 

죽음이라는 문 앞에서 어떤 선택도 쉽지 않았다. 그저 아프면서도 티를 내지 않던 고양이가 혼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안락사 문제를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양쪽을 오가며 매일매일 같은 고민 하면서도 아픈 애를 치료받게 한다고 병원에 데리고 다녔다. 


한편으로는 낯선 장소에 데려가서 몸에 주사 바늘 꽂고 치료하면서 아픈 애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럴 때면 의사 선생님 말처럼 안락사로 보내주는 게 나은 선택인 것 같다가도, 여전히 맑게 빛나는 눈을 보면 차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고, 그렇게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고양이는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마지막 가는 길에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는 게 많이 미안하더라고요. 몸도 아프고 힘든데 제가 괜히 병원 다닌다고 더 힘들게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무섭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많이 속상하고 미안했죠. 오랫동안 고양이를 키웠지만 제일 힘든 건 죽음인 거 같아요. 그래도 '펫로스 증후군'때문에 동물을 못 키우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안 했어요. 죽음을 겪어야 하는 건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같이 살면서 얻는 행복은 훨씬 더 크니까요."


 죽음을 겪어야 하는 건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같이 살면서 얻는 행복은
훨씬 더 크니까요.


그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고양이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사람이 캣맘 활동만 하고 직접 키우지 않았다는 게 더 의아할 정도였다. 이런 그를 다시 고양이 집사로 돌아오게 만든 노리는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저는 이런 고양이 처음 봤어요. 낯가림도 없고 사람을 진짜 좋아해서 여기에 있다가도 바로 앞 갤러리에 손님 오거나 강아지가 들어가면 자기도 쫓아 들어가려고 해요. 개도 안 무서워하더라고요. 자꾸 나가고 싶어 하는데 가둬두기가 좀 그래서 문 열어줬더니 갤러리에 들어가서 손님들이 막 귀엽다고 해주면 가만히 앉아서 예쁨 받고 손님들이랑 같이 단체사진까지 찍어요. 무슨 갤러리 직원도 아닌데 그쪽 손님 접대를 혼자 다 하는 거예요. 웃기죠? 근데 이렇게 나갔다가도 제가 부르면 쪼르르 다시 돌아오고요. 저랑 같이 산책도 해요."


소위 말하는 '개냥이'의 전형이면서도 한 뼘 정도는 개에 더 가까운 성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성향은 잠을 잘 때도 드러난다.


"밤에 잘 때 되면 폴짝 뛰어와서 옆에 붙거나 배 위에서 같이 자요. 아무래도 고양이들은 야행성이라 새벽에 일어나서 뛰어다니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노리는 사람이 자면 그때 같이 자고 아침에도 같이 일어나요. 제가 늦잠 자거나 해도 안 깨우고 옆에서 같이 자더라고요."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은 그가 반려인으로서 꼽는 최고의 장점이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게 마련! 노리는 독특한 성격만큼이나 식성도 남달라 식사시간마다 그와 각축을 벌이곤 한다.


“노리가 식탐이 많아서 밥 먹을 때 좀 힘들어요. 달걀이나 고기반찬 같은 거 있으면 싸우면서 먹어야 돼요. 특히 달걀을 좋아하더라고요. 샐러드 만들고 달걀 삶은 거 잘라서 넣으려고 하면 그렇게 먹겠다고 달려들어요. 노른자는 먹여도 된다고 해서 나눠주는데 진짜 잘 먹어요.


그가 방석에 누워 있는 노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집에서나 공방에서나 거의 하루 24시간 붙어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일하는데 방해가 되거나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들도 있지만 그에게는 이런 일들 조차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거 같은 느낌이에요. 털 빠지니까 청소도 매일 하고, 찍찍이랑 돌돌이도 항상 이렇게 손 닿는 곳에 있고. 이런 게 자연스러운 건데, 고양이를 안 키우는 동안은 이런 게 필요 없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고양이를 안 키웠던 적이 거의 없으니까, 저한테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던 그 공백기가 잠깐 달라졌던 거죠.”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줄곧 방석 위에 누워있던 노리는 어느새 우리가 있는 테이블로 올라와 작은 노트북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노리의 얼굴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마지막으로

박선영 님이 꼭 해주고 싶은 말


“제가 고양이를 오래 키웠으니까 지인들이 많이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너무 좋으니까 키우라고. 근데 잘 생각해보고 키우라고 하죠. 결혼도 언제 할지 모르고 애 낳고 버릴까 봐 걱정도 되니까. 주변 여건이 확실해지면 키우라고요. 단지 죽음 때문에 아플까 봐 망설이는 거라면 그런 건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살면서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나 보니까 아픔조차도 추억인 것 같아요. 어차피 지금 이렇게 제 눈 앞에 존재하고 있잖아요. 이미 존재한다면 내가 케어해준다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키운다면 좋겠다는 거죠. 엄한 데서 아프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내 품 안에서 보살펴주고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마음이요.


이미 반려묘의 죽음을 경험한 뒤 그가 어떤 마음으로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노리를 입양했는지 짐작케 하는 말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때때로 가슴이 뭉클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럼에도 내가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리며 훈훈함과 함께 쌉싸래한 뒷맛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한 마리의 길고양이 때문일 것이다. 


그와 인터뷰를 하고 보름쯤 지난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에게 사진을 요청하기 위해 연락했던 나는 실시간으로 비보를 전해 듣게 되었다.


그의 집 마당 한구석에서 숙식하던 고양이 할아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비록 가슴 아픈 일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거나 비참하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길고양이로서 호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폐가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졸고 있던 고양이를 그가 품어주지 않았더라면 그 마지막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을 테니까. 


그나마 이 세상 떠나기 전에 얼마간이라도 편안하게 먹고 쉬다가, 지켜봐 주는 이가 있을 때 떠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마당 한구석에 보금자리를 허락해준 그의 배려는 가슴 뜨겁게 그 역할을 다한 것이리라 믿는다.



글 / 자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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