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고난주간이었고, 이번 주일은 부활 주일이었다. 교회 서점에서 몇 주 전부터 구운란과 부활 달걀 데코 상품을 판매하고 있어 매주일마다 주지하고 있긴 했다. 지난 주일 부활주일 달걀을 꾸밀 스티커와 달걀을 담을 작은 조립식 상자(?)를 샀다. 가까운 친척에게 전하고 싶기도 하고, 친척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의미 있는 날에 부활 달걀을 나누며 이날의 기쁨도 공유하고 싶었다.
이번 주말은 최근 한 달 주말보다 에너지가 더 있었다.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날도 있었지만 일에 더 몰입하고자 다른 에너지를 좀 아꼈고 그게 비축이 됐나 싶기도 하다. 몸에 좋지 않은 것도 평소보다 덜 먹었다. 절식한 건 아니지만, 바빠서 그랬지만 식사도 소박하게 했는데 그게 건강에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업무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지만 그래도 덜 피로하고. 생각해 보니 다른 이유도 떠오르긴 한다.
토요일 밤부터 부활 주일 달걀을 꾸미기 시작했다. 원래 집에서 달걀을 삶으려 했는데 느낌적 느낌이지만 금방 먹어야 하는 부담이 있어 소비기한이 더 길어 보이는 훈제란을 샀다. 달걀을 1인당 하나씩 드리려 해서 우선 4알 샀다. 훈제란에 양념이 있는 줄 몰랐는데 냄새가 났다. 안 좋은 냄새는 아니고 그냥 훈제란 냄새인데 다음에 훈제란은 사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손에 냄새가 배니까.
이번에 산 부활 주일 스티커는 귀엽고 예쁜 게 많았다. 주로 병아리와 닭 그림이 많고 메시지가 좀 있는데 구매 당시엔 메시지를 주의 깊게 봤다. 이런 생각이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 덜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이 들어가지 않는지도 생각해 봤다. 부활 주일 달걀을 받는 사람 중에는 믿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나, 마음에 상처가 있던 분도 있어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서 속도나 단계 조절이 필요했다.
사진=딱정벌레
스티커를 금방 붙일 줄 알았는데 디자인이나 미적 요소를 고려하느라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스티커 하나를 붙여도 위치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고, 어떤 스티커를 붙일지 선택할 때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여러 스티커를 서로 어울리게 붙이는 것도 중요했다. 근데 오랜만에 이런 걸 해서 그런지(장식하는 것?) 재밌기도 했다. 평소에 자주 하는 일은 아니지만 한때 이런 거 좀 했던 적도 있다.
돌아보면 교회가 배움과 경험의 장이었다. 내가 꾸미는 재주가 없어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뭐라도 해봤는데 생각보다 좋게 봐주시고. 그러나 그게 또 다른 일로 돌아오거나, 부끄럽게도 대가를 바라는 마음도 품어서 그런 나 자신이 창피하기도 했다. 하나님과 공동체를 섬기는 일인데 너무 이해타산적이었다. 그걸 어린 마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 부족한 믿음과 모자라는 헌신 때문이라고.
스티커에는 이걸 붙이면서 부활 기쁨을 느껴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러기 좋은 활동 같았다. 아주 옛날에는 물감도 칠하며 달걀을 꾸몄겠지만 요즘은 스티커로 편리하게 꾸미도록 나왔다. 스티커를 붙이지 않아도 포장 용기로 꾸밀 수도 있고. 처음에 스티커를 너무 많이 붙였다니 뒤로 갈수록 스티커가 모자란 건 아니지만 처음 붙이기 시작했을 때보다 선택지가 좁아져 신경 쓰였다. 꼭 뭘 많이 붙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스티커를 다 붙이고, 꼼꼼히 부착됐는지 점검하고, 사진도 찍었다. 종이 상자를 조립해서 하나씩 넣었다. 상자를 완성하니 참 예뻤다. 말씀도 적혀 있어 좋았고, 5개에 3500원이었나. 예전에는 노방 전도용이나 교회에서 아마 소모임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나눠주느라 비닐 포장지를 샀다. 요즘도 나오지만 비닐 쓰레기가 될 수 있으니까 더 쉽게 재생할 수 있는 소재로 된 포장 용기를 원했고 그게 이거였다.
사진=딱정벌레
교회 서점에서 보니 요즘은 생분해 성분으로 된 비닐도 있어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여러 달걀을 한데 포장할 거라면 그것도 좋은데 난 한 알씩 전달할 거라 한알만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찾았고 그게 이거였다. 이와 별개로 영국에서는 부활주일마다 핫 크로스 번이라는 빵을 먹는다길래 그것도 샀다. 독특하게도 빵 윗면에 십자가 그림이 있다. 빵은 건포도, 시나몬 등이 들어갔는데 너무 달지 않아 좋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진을 찍어봤다. 주는 사람의 기쁨을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다. 내 감정과 기분을 위해 하는 일은 아니지만. 줄 때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정이 있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날에는 아침에 나도 핫 크로스 번에 커피를 곁들여 마시고 부활 달걀 셔틀(?) 겸 예배를 다녀왔다. 고맙게도 친척들이 좋아하셨고 빵도 맛있게 드셨다. 부활 주일 예배도 감사히 드렸다.
핫 크로스 번을 먹을 때는 예수님 핑계 삼아 내가 자꾸 사리사욕 채우려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부활주일 핑계로 맛있는 거 먹으려 하고, 재미를 누리려 하고. 한편으로는 기쁜 날이 맞기도 하고, 좋은 감정과 나눔의 기회, 부활을 계기로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해 주셨단 생각도 들고 감사하다. 그날 하루 좋은 구경 하거나 놀지 않아도 그 행위만으로 충만하고 충분한 하루. 성탄절과 같은 기분으로 부활 주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