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앱 '씀'을 오랜만에 살펴보며

오래오래 갑시다

by 딱정벌레
'씀' 로딩 화면. 사진=씀

'씀'을 처음 접한 건 2016년 초 어느 겨울날이었다. 1월이었던 것 같은데 그 무렵부터 우리에게도 매일 발제를 시키고 오후 2시 30분까지 마감하라고 했다. 내가 수습 시절을 보낸 IT 부서에서는 선배나 부장이 발제를 까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부 수습 동기들은 늘 까였다. 심지어 오전 내내 재발제하고 계속 까이고 욕먹고 동기는 울면서 전화 오고 공포의 나날이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난 편했던 것 같다. 물론 내게도 복병은 있었지만.

그전에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제하고 추가 취재해서 그렇게 마감했다. 잊힐 권리에 대한 것도 있고, 가상현실에 대한 것도 있고, 기능성 게임에 대한 것도 있고, 전자책에 대한 것도 있고, 웹툰에 대한 것도 있었다. 부서가 통신, 포털, 콘텐츠 등을 다루는 부서라서 아이템도 그런 방향으로 갔다. 한 번은 텍스트 콘텐츠 플랫폼에 대해 썼다. 브런치가 아직 베타 운영할 때였고, 그 외에도 텍스트 콘텐츠 플랫폼을 표방하는 서비스가 나왔다. '씀'도 그중 하나였다. 그때도 짧은 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스낵 컬처 콘텐츠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요즘 말하는 숏폼 콘텐츠. 그런 가운데 긴 호흡으로 쓰는 줄글 플랫폼이 떠오르는 게 난 이색적이었다.

'씀' 글감. 사진=씀

사실 씀은 브런치처럼 글이 길지 않다. 여기 서비스 내용을 설명하자면 매일 오전 오후 글감을 제시한다. 이용자는 그에 맞는 글을 길든, 짧든 써서 올린다. 지금 이 시간 새로 등록된 주제는 '흑백'. 아까는 '새로운 사람'이었다. 그때 개발자에게 연락해서 전화로 서비스 취지 등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하루 취재해서 하루 기사 쓰는 하루살이. 아무튼 매일 시간을 정해 주제를 과거시험 치르듯 제시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언론사 필기시험 볼 때도 생각났고. 작문은 제시어를 던져주고 글을 쓰게 하니까. PD 지망생은 소설을 많이 썼고, 기자 지망생은 에세이 같은 글을 주로 썼다.

참고로 작문 시험에서는 1문단은 보통 글 핵심을 아우르는 사례나 이론으로 티저를 쓰는데 그걸 외워서 돌려 막기 하는 사람도 많다. 그전에 쓴 글을 활용키도 하고. 진정한 고수는 어떤 주제가 나오든 일필휘지로 쭉쭉 쓴다. 내 기억에 남는 작문 제시어는 '사과', '공지영' 이런 거였다. 공지영은 동아일보 필기시험 작문 주제였는데 '의자놀이'였나 그의 SNS 때문에 출제됐던 것 같다. 사과는 친정 필기시험 작문 주제였고. 친정에서는 모회사와 늘 전형을 같은 날 치렀다. 아쉬운 건 필기시험 문제도 똑같다는 거다. 채점도 모회사에서 하고. 친정은 2017년 공채가 가장 최근 수습 공채였다. 그 뒤로는 수습 공채를 진행하지 않는다. 모회사도 공채를 실시 안 한 지 좀 됐고.

씀 '문학' 코너. 사진=씀

역시 또 삼천포행. 암튼 씀에서는 플랫폼에 올라온 글을 모아 종이책을 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독립서점에서 나중에 그 책을 샀다. 가격은 기억나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언론사 필기시험 이후 더 이상 볼 일 없는 원고지 그림도. 오늘 앱스토어에서 글쓰기 앱을 이것저것 찾다가 오랜만에 씀이 생각났다. 검색해보니 아직 서비스가 있길래 내려받았다. 여전히 이용자가 있는데 서비스 안정성은 약해진 듯했다. 앱 리뷰를 보니 그런 내용이 많고. 혹시나 서비스가 없어질까봐 염려하는 이도 있었다. 앱에 다시 들어가니 큰 문제는 못 느꼈고 아직 주제를 규칙적으로 계속 제시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가 바로 '문학', '읽기' 코너였다. 둘 다 베타 버전인데 문학은 유료로 운영했다. 작가들도 보니 문학상을 수상했거나 등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꼭 그렇지 않아도 평소 꾸준히 소설 쓰는 사람도 있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씀에 올라온 소설 중 괜찮은 걸 발굴해 제안한다고 한다. 시, 수필로도 영역을 넓힌다고. 매주 세편 이상 새 문학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단다. 이메일로 직접 제안할 수도 있다. 가격이 아쉬운데 작품당 1100원이다. 못 받아도 5000원은 줘야 할 것 같은데. 단편소설이라도 작성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너무 적다. 충분한 돈을 받아서 플랫폼과 수익을 배분하는 것도 좋겠는데 가격 책정 기준이 궁금해졌다. 작품은 23편 올라왔는데 이걸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씀 '문학' 코너 안내. 사진=씀

읽기의 경우,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글쓴이의 글을 묶었는데 마치 책처럼 편집했다. 유료는 아닌 듯하고. 물론 한 사람만 쓴 글도 있다. 추천 모음, 최신 모음 이렇게 분류했고. 여기에도 소설은 있다. 브런치도 있는데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점에 매료됐나 궁금했다. 짧게 써도 부담 없어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괜찮아서? 흰색이 대표 색상으로 쓰이는 건 브런치와 비슷한데 좀 더 세련된 느낌이 있다. 특히 문학 코너에서 그걸 느꼈다. 네이버 포스트를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텍스트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는 일단 이용자가 스스로 글 쓰고 싶게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능이 편리한 건 물론 예쁘게 편집할 수도 있어야 하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네이버 디자인 콜로키움에 가서 괜히 긴장했더랬다. 플랫폼은, 기술 회사는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쓸어가겠구나. 그리고 그걸 무료로 보여주겠구나.

암튼 예전에 좋다고 생각한 서비스가 아직 있어서 반가웠다. 나도 짧게 뭔가 쓰고 싶기도 하고. 난 TMI라서 짧게 쓰는 게 어려운 사람이지만. 요즘 편집 매뉴얼 자료를 자주 보고 있다. 이렇게 편집해야 더 보기 쉽고 눈에 잘 들어오겠구나. 편집 매뉴얼을 참고하라고 받은 자료를 보다가 예시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정작 매뉴얼은 잊은 채 글만 열심히 읽었다. 웹 글쓰기를 다룬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놓기만 하고 사지는 않았는데 그것도 읽어야겠다. 씀 다시 만나서 반갑고 수익화를 잘해서 서비스가 오래가면 좋겠다. 문학은 과감하게 유료화해도 괜찮을 듯하다. 썸네일과 같이 들어가니 전자책으로 소설 읽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생각보다 비가 많이 오네. 요즘 너무 더워서 비가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에어컨을 청소해야 하는데 더우니 그 엄두가 안 나서. 비올 때 걷는 게 좋은데 아까 비 맞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려니 엉덩이가 무거운 느낌적 느낌.

'씀' 종이책. 사진=딱정벌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