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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Nov 15. 2024

나이 스물다섯에 죽음을 생각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는 천재

가을이 되면 듣는 노래가 있어요. R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그는 제자였던 아내와 결혼할 때도 가곡 네 곡을 써서 선물했는데, 여든 살이 넘은 노 부부의 건강이 나빠져 스위스로 간 뒤 전범 혐의로 쫓기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가곡을 쓰고 있었어요. 이동 제한, 계좌 동결, 미래 로열티까지 묶인 상태로 지내다가 거듭된 전범 재판 끝에 무혐의 판결을 받던 때에도 그가 쓰던 곡이 <네 개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다행히 일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큰 수술 받고 가르미슈로 돌아온 뒤 이듬해 세상을 떠나게 되죠. 85세까지 살았으니 장수했지요. 젊어서부터 누린 영광과 부에 비해 말년은 다소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전주만 들어도, 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해가 뉘엿뉘엿해질 같은, 본격, 가을철 해질음악입니다. 처음 들으신다면, 제2곡 '9월'부터 들으면 좋아요~ 호른 후주~ 크으~!) 


마지막  제4곡 ‘저녁놀’은 이런 가사예요. (아이헨도르프의 시) 

“우리는 손을 맞잡고  고난과 기쁨을 지나왔네,

 조용한 땅을 지나 이제는  방랑에서 쉬네.

 사방에 계곡이 가라앉고  하늘은 벌써 어둑해지는데,

 두 마리 종달새 꿈꾸듯  향기 속으로 날아오르네.

 오 드넓고 고요한 평화여!  저녁놀 속에 가라앉는구나, 

 우리는 방랑에 얼마나 지쳤는지 어쩌면 이런 것이 죽음일까?“ 


어쩌면...이런 것이 죽음일까?
Ist dies etwa der Tod?


사실, 이 질문은 그가 젊어서부터 품고 있던 겁니다. 스물다섯 살, <돈 후안>을 써서 이미 이름을 알렸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뜬금 없이 <죽음과 변용>이란 교향시를 썼습니다. 이후 한동안 교향시를 쓰지 않는 보면 뭔가, 하고 싶던 말은 했다, 이런 느낌인데... 그에게는 평생 죽음과 이후라는 주제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중요했다고 하네요. 당시 궁정 호른 주자였던 슈트라우스 아버지가 바그너 음악을 접하지 못하게 해서 아들은 몰래 악보를 찾아보면서 완전 빠져있었는데,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사랑의 죽음'처럼, 죽음으로써 정화되고 완성되는 어떤 그런 것...!(아...이걸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그러니 변화가 아니고 변용일텐데...)에 대한 생각들을, 관현악곡으로 펼친 거지요.  

여기에는 각 부분에 맞춘 줄거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냥 들어도, 참 좋습니다. 소음 차단 이어폰을 꼽고 이 곡을 듣는데, 순간순간이 참 좋고, 삶의 희노애락이 다 담긴 것 같습니다. 이게 천재지, 이런 곡을 스물다섯 살에 썼으니..싶어져요. 그리고 그 영감이 60년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뎌지지 않고 빛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곡을 쓴 뒤 60년 뒤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이 곡은 더 특별한 의미를 입게 되지요. 20분 남짓한 연주시간에, 처음엔 듣기를 망설였는데... 어느덧 20분이 훅~ 지나가 있는 경험, 음악 들을 때 가장 짜릿한 순간 중 하나죠. 


KBS 클래식 FM(수도권 93.1 MHz), <출발 FM과 함께>, 이번주 일요일(17일) 아침 8시 '음악이 머무는 곳' 코너에서 <네 개의 마지막 노래>에 대한 이야기, 다음주 토요일(23일) 아침 8시 즈음, '다만 말없이 감상하소서' 코너에서 <죽음과 변용>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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