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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어 Feb 17. 2016

오빠! 나 클럽 가고 싶어

아내에게 그리고 오키나와 친구에게

약 3년 전 아내 왈,

오빠! 나 클럽 가도 돼?


당혹스러웠다. 클럽이라니. 클럽이라니.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느 날 밤, 카우치서핑을 통해 두 일본 아가씨가 오키나와에서 놀러 왔다. 대학로 민들레 영토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이후는 클럽에 가고 싶다는데. 밤새 콩짝콩짝 놀고 싶다며. 다음 날이 출국이라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모양이다. 물론, 나는 유부남이라 초대하지 않는다. 예의 바른 친구들 아닌가.


그중 한 아가씨는 작년에 아내와 오키나와 여행을 할 때 본인의 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해 술 사주고, 재워주었던 친구. 그녀는 주류 마케터인데, 당시 오키나와에 축제가 있던 기간이라 회사에서 엄청난 노동을 하는 눈치였다. 기간 내내 다크나이트 수준의 다크서클을 달고 있던 그녀였느니. 하여, 금번에 그녀가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하며 최대의 호의를 베풀고자 노력했다. 맛집, 숙박(우리 집) 그리고 쉬지 않는 유머와 실시간 강연. 원래 강연은 의도한 게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한일 역사관을 공유하게 된 일이 있었으며 내가 그들에게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를 한 시간, 사카모토 료마 이야기를 한 시간, 사이고 다카모리, 야타로(미쓰비시 그룹 창업자), 손정의(소프트뱅크 그룹 회장) 등등 일본 위인 이야기를 수시간에 걸쳐서 강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그저 그 긴 시간 동안 '에에~~' '스고~~~~이' '에~~~~'만 반복할 뿐이었다. 강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좋은 청중이 없지. 이를 두고 한 형이 말하기도 했었다. '하여튼 일본애들 저런 반응은 특허를 줘야 돼'


그렇게 우리는 짧은 시간에 굵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 클럽에 가고 싶다는 그들에게 오.빠.의.예.를 갖추고 정중히 조언했다.


우선 편의점에 들렀다 가라.


보통 클럽에 가고 싶다는 아가씨들에게 '왜? 가고 싶냐'고 물으면 초행인 친구들은 '호기심'이라 답하는 경우가 많고, 아닌 친구들은 '노래 들으며 춤추고 싶어서'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들의 경우 초행은 '호기심'이 맞지만,  그다음부터는 '한탕(One night stand)'이 목표인데. 알랑가 몰라?


나의 일본 친구들도 보통 아가씨들이 그러하듯 '즐기러(노래 들으며 춤추러)' 간다고 말한  것뿐인데, 나는 그것을 왜? 남성적으로 비약했을까? 우선은 놀다 보면 띠용띠용 꽂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상황에 미리 대비하자는 가벼운 의미도 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아래는 실제 술자리 대화 내용)




01. 진심과 겉치레에 대하여

일본인들의 진심: 혼네(本音)과 겉치레: 타테마에(建て前) 사이엔 동일본 대륙판 수준의 간극이 존재하지(라는 이야기는 너무 식상지만). 과거 사무라이들은 마음 속 불만을 표현하거나(그게 주군에 대한 충언일지라도), 용기내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다른 지역으로 허가 없이 여행한다거나), 이를 실행한 대가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잖아. 할복. 스스로 창자에 일본도를 꽂고 사나이답게 난자하는 일. 이것은 주군에 대한 의리(義理)와 의무(義務)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회적 채무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무사의 입장에서는 명예로운 일이었지.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이 일치하는 게 명예로운 인간의 모습이라 믿는 현대인들의 시각으로는 좀체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밖에.


코바야시 마사키 作、하라키리


뭐. 이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클럽이라는 장소의 현실을 논해보기로 (눈빛으로)약속했다. '음악 들으며 춤추려고' 클럽 간다. 인류는 원래 그렇게 진화해왔지. 광야의 한 가운데 타오르는 불빛에 열광하고, 타악타악 타악기를 두드리고 삐익삐익 삘릴리 갖가지 관을 사용해 노래 부르고, 대지의 중력에 거스르는 일탈적 쾌감에 취해 뛰오르고, 뛰오르고, 더 높이 뛰오르고 싶어서 기술을 개발하고, 더 아름답게 뛰오르고 싶어서 예술을 창조했지.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나의 욕망과 타자의 시선이라는 표현의 갈망이 합을 이룬 순간. 그 순간 춤이 탄생했겠지.


그러다 우연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눈과 눈이 마주치자 심장의 펌프가 거세지고, 거센 혈류가 더 아름답고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을 만나 의식이 혼미해지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심장까지 파고 들어와 버리면...정을 나누는거지. 그렇게 설계된 게 인간이지. 암 그렇고 말고. 그게 없었다면 인류는 번식도 안되어 진작 멸망했을지도 몰라. 암 그렇고 말고. 따라서 인간 유전자 또한 음악 그리고 사랑을 한 패키지로 싸서 진화해왔을거야. 클럽은 그 패키지 전체를 담는 그릇일진저.


헌데 그 패키지에서 말야. 심장에 대한 것을 빼버리면, 뭐가 남지? 텅 빈 것 같지 않나? 공허하지 않나? 클럽 가는 목적이 누굴 꼬셔서 하룻밤을 지내는 건 아니겠지만, 혹시 천운이 닿아 그런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는 건 결코 나쁘지 않아.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단 맛을 기대하듯. 그런 기대나 설레임 없이 클럽에 간다면 그것은 마치 창민 없는 동방신기와도 같을터.


로마의 시저 왈, '보통의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못한다'


클럽에 유노윤호만 데려가지 말고, 꼭 최강창민도 함께하길 바라네. 둘 중 하나를 빼면 동방신기라는 현실이 완성되지 않으니.




02. 행복에 대하여

작년 봄 아내와 오사카를 다녀왔어. 오타쿠(御宅、집에만 계신 분..-_-)의 성지라는 덴덴타운을 구경했는데.. 카페에서 쉬던 중 참 흥미로운 광경을 봤지 뭐야. 두 명의 오타쿠가 수집한 카드를 펼쳐놓고 앉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낄낄낄. 깔깔깔. 흐뭇흐뭇. 아...햇살 아래 고이 잠든 장인어른네 강아지 같은 그 행복한 표정을 잊을 수 없구만.



일주일 내내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쉬는 때 잠시 나와 덴덴타운을 활보하며, 자기만의 환상과 꿈을 열정적으로 좇는 사람들. 오타쿠.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 그냥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 아닐까? 오히려 우리는 왜 안달복달 더 가지려 애쓰는가?


오타쿠적 삶의 키워드는 바로 '선택과 집중'이야. 그들은 말하자면, 세일러문의, 세일러문에 의한, 세일러문을 위한 삶을 살지. 그리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스위치를 꺼버리잖아. 외모, 언행, 부동산, 자동차, 권력 등은 남 일이지. 그래. 어린왕자에게는 장미를! 오타쿠에게는 세일러문을!!


여담이지만 위대한 성취자들은 다들 그렇게 신경 스위치를 끄고 살아가는 것 같지 않나? 중국에서 전자상거래가 될 거라고! 될 거라고! 외치며 한 일생을 살아온 마윈. 그것만 보고 살아왔지. 하지만 처음엔 다들 그를 미친사람 취급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을 설정해두고 그것만을 남들에게 강요하며 살아온 스티브 잡스. 그래서 그의 평전에서는 그가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던가. 그가 얼마나 남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스위치를 끄고 살았던지 한때는 구글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애쓰홀(Asshole)이 나올 정도였다니.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또한 어린시절 미국에서 유학하고 싶어 병든 아버지를 등지고(매정한 놈이라 욕 들으며), 학교도 포기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갔었지.


오타쿠, 마윈, 잡스, 손정의의 공통점? 무엇인가를 선택했고, 그것만 바라보며 살았으며, 다른 건 포기했다는 점이야. 오타쿠와 다른 분들의 차이라면 <선택의 방향>이 자기자신만을 위한 자위적 선택이었느냐 공공의 진보를 위한 문명적 선택이었느냐에 있을 터. 그들의 삶을 다르게 한 건 큰 뜻(志)과 방향성이라고 봐.


아, 우리 지금 행복을 말하고 있었지. 이야기가 성공 쪽으로 빠질 뻔했네. 그래. 우리나 위대한 성취자들은 과연 덴덴타운의 오타쿠들보다 행복할까? 나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쪽에 걸겠네. 보통의 우리라면 평생 한번, 예를들면 자식이 태어났을 때나 지을 것 같은 표정을 걔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짓는다니까! 그리고 성취자들의 경우 큰 뜻(志)을 선택을 했고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관리 압박, 적들의 견제와 스트레스에 직면해야 했을터. 따라서 그들은 매일매일이  행복했다기보다는 뜻한바대로 세상이 변해가는 걸 지켜보는 충만감이 컸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존재(Existence)에 대한 확인이지.


중요한 것은, 오타쿠적 행복도 위대한 충만감도 의미있는 선택 없이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점이야. 선택을 한다는 건 기준을 세워두고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판단한다는 말이지.


아이러니하게도 하지 않을 일을 정확하게 아는 것. 그것이 행복의 핵심이야. 그걸 모르면 가져도 더더더더더 갖고 싶어지기 때문에 만족이란 걸 모르지. 늘 다음 목표를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설정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하지도 않은 걸 가지려고 어둥버둥거리는거야. 피로해지지. 비움 없이 채우기만 하면, 불행해져. 남들 갖는 것 나도 다 가지려 살다보면 결국 나는 사라지고, 남만 남거든.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가 워렌버핏에게 조언을 구하러 찾아갔을 때 버핏이 남긴 말이 인상 깊지.


소음을 피하라(Avoid noise)


그러던 중 질문이 들어왔다. '두어상은 결혼 전에 어떤 사람이었어요?' 좋은 질문이다. 결혼도 선택이고, 그 선택을 통해 내가 행복해졌는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으므로.


우선 나는 운 좋게도 너무 좋은 짝을 만났어. 지금 이 생활 자체가 너무 좋아. 내가 오타쿠라면 아내는 나의 세일러문. 아내가 오타쿠라면 나는 아내의 세일러문. 우리는 둘 다 장인어른네 강아지와 유사한 것 같아.


결혼 전 난 에너지가 정말 많은 사람이었지. 그리고 지금도 동일한 수준으로 많아. 이는 에너지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에너지 보존법칙에 따르는 것 같은데. 결혼 전과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결혼 전에는 에너지가 분산되어 있었고, 지금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야. 결혼 전에는 이것저것 다 하고 싶었고, 다 되고 싶었어. 반드시 필요한 도전들이긴 했지만, 이것저것 도전하다보니 에너지가 분산될  수밖에.  그중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이성 문제였던 것도 사실. 이성과의 관계가 불안하면, 계속 신경쓰게 되잖아. 하지만 좋은 짝을 만난 덕분에 결혼 후에는 다른 이성에게 에너지를 배분할 일 자체가 아예 없어졌어. 길을 걸으면서 눈도 덜 돌아가고, 포르노 따위도 안 보게 되지. 에너지가 남게 되는거야.


한 축이 안정되면 그 외의 다른 부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게 되겠지.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는 것, 몰입. 요즘은 그런 몰입 상태가 자주 찾아와. 몰입은 뭐랄까..행복의 큐피드 같다고 할까? 영생의 열쇠 같다고나 할까?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라는 분이 강연에서 그러더라. 몰입하면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몰입하면  뇌신경이 격하게 활성화되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밀도 있게 저장할 수 있게 된다고. 그러면 같은 시간동안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그 덕분에 시간을 길게 음미할 수 있다고.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뇌신경이 느려져서 시간의 사진을 덜 찍기 때문이래. 늙어감과 함께, '작년에 뭐했더라?' 생각하면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개 없는거지. 그나저나 빛의 속도로  뇌신경을 움직여보면 어떨까? 시간이 멈출까?


아, 우리 클럽 얘기하고 있었지.


결론. 어서 가서, 클럽 오타쿠가 된 듯 몰입해서 놀고, 행복과 카타르시스의 순간에 뜻밖의 일이 찾아오거든 기꺼이..고고씽!!^^ 하길 바란다.





이어서 오.빠.의.예.로 빠르고 정확한 실전 팁을 더했다.


01.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는데, 친구가 걱정되어 나가기 어렵다면

- 아침 8시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만나는 걸로 미리 정하라. 안 오면 서로 연락해주고


02.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편의점에 들렀다 가라

- 결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해서는 안된다.


03. 나이가 20대 후반인만큼, 밤과 음악사이를 추천한다

- 구글 맵에서 홍대 밤과 음악사이를 검색해 즐겨찾기에 추가해주었다.

- 대기가 적어도 1시간은 될 터이니, 우선 홍대 도착하자마자 대기 타놓고 옷을 사서 갈아입는 게 좋겠다.


04. 클럽 입장 전 기분 좋게 술 마시고 들어가길!

-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선택했으되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 용기의 여신을 술로 소환하자! (과하게는 말고..)


그렇게 대화를 마친 우리는 기운차게 요~시!(좋~았어! 해보자!)를 외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후 아침에 결과보고(?) 문자를 받았는데, 정말 흐뭇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만약 딸이 자라서 '아빠, 나 클럽 가고 싶어'라고 한다면..오키나와 친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조언해줄 것이다. 즉, 아내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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