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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호 Aug 31. 2022

교사의 가면

나의 진짜 모습은 가면 뒤 모습일까? 아니면 가면 그 자체일까?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극도로 혐오감이 몰려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거울 속 겉모습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 모습 뒤에 감추고 싶었던 내면의 모습이 비친 듯해서 싫었다.


그것이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범생이'의 모습을 탈피하고자 새로운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양한 동아리에 가입하였고 조용해 보이는 친구들보다는 말썽을 꽤나 피우게 생긴 친구들만 골라서 사귀기도 하였다. 전에는 조용히 공부하거나 책을 읽고 때론 집에서 게임만 했던 내가 춤도 배우고 노래도 하고 연극에도 참여했으며 동아리 행사를 기획하고 선후배들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등 수동적인 모습에서 능동적인 모습으로의 변모를 꾀했었다. 마치 MBTI의 I 타입의 사람이 갑자기 E로 바뀐 것처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였다.(친구 중 한 명은 그러한 모습에 걱정하는 편지를 준 적도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어느 날, 술을 먹고 있던 선배가 갑자기 홱 돌아서며 대뜸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넌 도대체 어떤 정체가 뭐냐? 도저히 종잡을 수 없어!'
'그러게요. 저도 어떤 모습이 제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앞의 놓인 상황과 사람들에 따라 그에 맞춰 다양한 가면을 쓰며 대응했던 것 같다. 활발한 친구들 앞에서는 활발하게, 조용한 친구들 앞에서는 그 조용함을 활용해 공동의 관심사로 접근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다.


솔직히 내 행동이 다른 교사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평가가 두렵기도 했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대충 좋게 평가받겠거니 하면 그저 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학년 부장으로 승진(?)하고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인간관계-특히 교사들 간의 사회적 관계-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장으로서 뭔가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 같고 선생님들을 다독이며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안내해야 할 것 같았다. 겉돌거나 부적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선생님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생님들을 나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생각하니 머리만 아팠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의도를 따라주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속으로 탓하며 마음속에서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그래야 하지?'
'내가 왜 이런 인간관계에 집착하고 있지?"


무엇보다도 내가 부장이 아니었다면, 아니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했었을까?


3년 전만 해도 어느 모 선생님은 나에게 '선생님네 반 애들은 담임 닮아서 활기차고 시끄럽네요.'라고 한 적이 있었다. 3년 전 내 모습이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그때도 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말이 많고 잘 웃고 다녔었나 보다.


그러나 작년에 지금의 학교에 부임하고 난 후부터 이상하게 내 진짜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들 한 명 한 명과의 대화부터 행동까지 어색해지기만 했다. 교무실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거짓 가면을 쓴 채 어색한 웃음으로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업시간만큼은 원래 나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학생들은 내 수업이 제일 재미있다고 한다.(수업을 잘 안 하고 다른 얘기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신나게 웃고 있는 학생들 앞에서는 나 역시 내가 이렇게까지 활발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몰입해서 이야기를 한다. 설명하기 위해 때로는 칠판에 그림 또는 만화 캐릭터를 그리기도 하고, 내가 직접 몸개그를 보여주기도 하고 나의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해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수업 시간의 학생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완벽한 사회적 파트너'였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가는 내 모습을 복도 거울에서 본 적이 있었다.

만족감을 띤 얼굴, 뭔가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 그리고 웃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게 나의 본모습이었다.


물론 이러한 수업 속 모습들을 일상 속에서, 우리 선생님들 앞에서 하면 아마 '미친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을 나는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었던 것 같다. 부장이라는 굴레를 쓴 후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부장이라는 자리가, 관리자라는 자리가 내 모습을 바꿔 놓았다.


며칠 전 어느 모 선생님이 나에게 다른 부장으로 가거나 승진하시더라도 지금의 모습을 바꾸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나 싶어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올해는 적어도 작년만큼 '가면'을 쓰며 살고 있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그리고 나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오히려 그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우리는 다양한 맥락 속에서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슬픈 짐승들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앞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간다. 그리고 거기에 익숙해진 채 살다 보니 어느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인지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 모습을 못 찾고 그리워하며 자책하거나 환경 탓을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교사로서의 생활도 그렇게 가면을 쓰고 이루어진다. 나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수업에 임할 때가 많다는 말이다. 그 학교의 그 학생들에게 알맞은 가면을 쓰고 말이다.

하지만 교사의 업무 대부분이 수업인데 그때마다 맞지도 않는 가면을 쓰고 수업을 한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물론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학생들과의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는 그런 교사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학생들은 교사와의 관계가 진실될수록 신뢰를 보인다.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우리한테 보여주는 모습이 거짓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진정한 배움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부장으로서 선생님들에게 내 진짜 모습보다 어눌한 책임감으로 억지스러운 리더십을 보이려다 관계가 더 어그러졌던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관계 형성에 어려울 수록 억지로 나의 진짜 모습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면 신뢰감이 형성되어 수업도, 교사 생활도 힘들지 않게 서로 웃으며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최소한의 이성과 사회적 예의는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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