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거리두기
초임 교사 시절 추자중학교에서 교사의 첫 발을 막 내디뎠을 무렵, 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라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얼마 안 있어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발견했다!
'드디어 교육자로서의 나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군!
그 학생은 약간 어눌한 말투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곤 했었다. 그래서 울고 있는 그 학생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다른 가해 학생들을 불러 단호하게 를 혼냈었다. '내가 잘한 것 맞겠지? 그 피해 학생은 나에게 고마워하겠지?'라는 엄청난 착각 속에서 며칠이 흘렀다.
그리고 그런 기대 속에서 여전히 의기양양한 웃음만 짓고 있던 어느 날, 그 피해 학생은 울면서 찾아왔다.
내가 개입해서 오히려 더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교사인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중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냐?
갑자기 교사랑 학생들 간의 거리두기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지에 심각한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어지면 행성은 궤도를 이탈해 항성과 부딪히거나 항성에서 멀어져 그 생명을 다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로에게서 나오는 중력의 적절한 균형이 있을 때 행성과 행성, 혹은 행성과 항성은 서로의 궤도를 돌며(혹은 자전과 공전을 하며) 각자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
교사 대 교사는 어떨까? 서로의 중력에 의해 이끌려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 같은 사이가 될 수도, 아니면 같은 극으로 이루어진 자석들처럼 서로를 밀어내야만 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러하듯 교직 사회에서도 100명이 있으면 100명의 생각이 다 다르다.
그저 행성과 항성처럼 서로의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교집합을 서로 공유한 채 서로의 궤도를 돈다.
어떨 때는 같이 있으면서도 외롭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웃을 때는 시시콜콜한 것에도 웃을 때가 있다.
그리곤 '뭐 하는 짓이지?'라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또 어떨 때는 각자의 궤도를 이탈해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저... 힘들어요, 선생님도 힘드신 것 같네요. 우리 서로 같은 마음인 것 같은데, 이렇게 눈치 보지 말고 마음 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외치고 싶다. 가면을 쓰지 말고 진솔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그 중력의 세기와 깊이를 느끼고 싶다.
그러나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교사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비록 적이지만 처음으로 공감하고 나아가서 그러한 마음들이 공명하며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위험해 처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미소를 짓는다.
우리 교사 사회에서도 그런 경험들이 있긴 하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교육 환경 역시 날이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우리 교사들의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 계속적인 정책의 변화와 급속히 전개되는 사회 환경의 변화 속에서 교육의 회복적 가치보다는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생각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의 궤도만 돌며 각자의 할 일만 하다가 퇴근하는 삶은 차라리 퇴직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싫다.
오늘만큼은 나의 궤도에서 벗어나 당신들의 중력에 이끌리며 같은 궤도를 거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