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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an 22. 2024

비극 실화를 대하는 거장 감독의 문제의식과 자세

영화 <플라워 킬링 문>(마틴 스코세이지, 2023)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은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이지족을 상대로 백인들이 벌인 잔혹한 범죄 실화를 다루고 있다. 토지 강탈과 강제 이주, 착취와 무력화 등 원주민 침탈의 역사는 미국 개척 시대의 어두운 면으로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오세이지족이 겪은 비극의 세밀한 내용은 이번에 처음 알았기에 충격적이었다. 감독은 FBI 수사에 초점을 맞춘 원작의 방향을 틀어 사건과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집중함으로써 오세이지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비극의 핵심인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담아냈다. 영화를 찍는 내내 감독은 오세이지 커뮤니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스크린에 구현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실화를 정확하고 윤리적으로 다루겠다는 거장 감독의 문제의식과 자세가 영화의 가치 및 완성도를 높였다고 평하고 싶다.     




   19세기말 오세이지족은 미국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고향을 잃고 불모지나 다름없는 오클라호마 지역에 정착했다. 그 땅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큰 부를 누리지만 동시에 범죄의 대상이 되고 만다. 오일 머니를 노리고 마치 코요테처럼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백인들은 ‘후견인 제도’ 등의 이점을 누리며 이들의 재산을 갈취하는 한편 원주민을 대상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그중 최악은 겉으로는 신뢰와 사랑의 형태를 띠었으나 석유처럼 검은 욕망을 숨기고 있었던 연쇄 살인 사건이다. 범죄자들은 결혼을 무기로 오세이지족의 땅과 재산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이는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으나 원주민에게 벌어진 일이라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조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세이지족인 몰리(릴리 글래드스톤)의 세 자매도 하나둘 그렇게 죽임을 당한다. 몰리는 동족의 잇따른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부에 강력한 수사를 요구한다. 오세이지족이 스물네 명이나 희생된 후에야 제대로 된 수사가 시작되고, 몰리는 다수의 죽음 배후에 자신의 남편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삼촌인 윌리엄 K. 헤일(로버트 드니로)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리엄 K. 헤일은 평소 원주민과 백인의 공존을 외치며 긴 세월 마을의 존경받는 어른으로 대접받아 온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가 원주민 학살을 주도면밀하게 계획 실행했다는 사실은 오세이지족을 충격에 빠뜨린다. 몰리에게는 남편 어니스트의 정체가 더욱 섬뜩했을 것이다. 어니스트는 헤일의 손발 노릇을 해왔으며, 심지어는 당뇨병을 앓는 몰리에게 독약을 섞은 인슐린을 투약해 왔다. 남편이 자신의 가족을 해친 당사자이며 아내인 자신도 죽이려 했다는 걸 안 몰리의 심정이 어땠을까?     


   모든 악행이 밝혀진 뒤에도 어니스트는 범죄를 자백했다가 다시 철회하는 등 삼촌과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가 과연 몰리를 사랑했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벌일 수 있는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몰리는 어니스트가 헤일의 권세가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일에 가담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어리석기는 해도 악의를 가진 사람은 아닐 거라고 끝까지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사실에서 몰리는 어니스트에게 사실을 고백할 마지막 기회를 준다. “주사기에 뭘 넣었어?” “인슐린...” 어니스트는 그 순간마저 진실을 감추고 자신을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과 기만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몰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홀로 남은 어니스트는 멍한(거의 멍청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도움이라도 청하는 듯 수사관(제시 플레먼스)을 쳐다본다. 수사관도 그를 외면한다.     


   그 잠깐의 정적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음, 진실을 직면하는 게 두려워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인간의 나약함이 어니스트의 얼굴에 다 담겨 있다. 그래도 '사랑'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건 한 가닥 희망의 불씨가 꺼지고 관객도 수사관처럼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모든 신뢰를 저버린 자의 최후다.      


저절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이들 중 누가 야만인인가?
(<플라워 문>, p.59)     



    

   영화의 제목 <플라워 킬링 문>은 5월을 가리키는 원주민 언어 ‘Flower-killing Moon’(‘꽃을 죽이는 달’)에서 왔다. 오세이지 영토에는 5월이 되면 키가 큰 식물들이 작은 꽃들의 빛과 물을 훔쳐가서 작은 꽃들의 목이 부러지고 꽃잎이 날린다고 한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5월은 헤일이 주도한 연쇄 살인이 시작된(몰리의 언니 애나의 죽음) 달이다. 그의 범죄는 1921년 5월부터 1926년 1월까지 이어졌으며 오세이지족은 이 시기를 ‘공포시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논픽션 원작의 작가 데이비드 그랜은 그 이전과 이후에도 은폐된 살인이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세이지족의 재산과 목숨을 노린 비열하고 끔찍한 범죄는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말이다.       


그대의 괴물 같은 얼굴을 가려줄
어두운 동굴이 어디 있을까? 그런 것을 찾지 마라, 음모여.
미소와 상냥함 속에 그것을 숨기라.
(<플라워 문>, p.230, 셰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인용)



<플라워 킬링 문> 포스터와 원작 논픽션 <플라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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