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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리카노 May 15. 2022

쾨벤하운의 자전거

친환경 끝판왕

아내를 따라 북유럽에 와 있다. 월요일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치자마자 덴마크 쾨벤하운에서 콘퍼런스가 있어서 부랴부랴 대서양을 건너왔다. 올여름엔 한국에 머물 한 달 정도를 제외하곤 유럽에 있을 예정이다. '미국을 알아가는 시간'은 미국 밖에서 신선한 시선을 더해 살펴보는 시간으로 이어간다. 그냥 여름이라 휴가 가는 걸 이렇게 포장해도 되나 싶지만, 유럽에서도 글도 쓰고 팟캐스트도 할 생각이니 괜찮다고 합리화를 해본다.

많은 사람이 부루마블에 써있는 대로 이 도시 이름을 코펜하겐이라고 읽는다. 영어로 쓰면 Copenhagen이고, 발음도 그렇긴 하지만, 덴마크어로는 København이라고 쓰고 쾨벤하운에 가깝게 읽는 것 같다.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뒤 우크라이나 수도를 키예프(러시아어 발음)에서 키이우(우크라이나어 발음)로 읽자는 주장에 나도 공감했으니,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사람들이 발음하는 대로 써보려 한다.

쾨벤하운은 4년 전 여름에 한 번 와봤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도 이번에도 워낙 아름다운 계절에 와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단점을 찾기 어려운 이 도시의 매력에 3분에 한 번 꼴로 감탄을 쏟아낸다. 그럴 때마다 덴마크나 유럽 친구들은 놀이공원 입구에서 잔뜩 들떠 있는 아이를 달래듯 말한다.

"1월 중순이나 2월에 와서 한 사흘만 있어봐. 생각 달라질 걸?"

그래도 우리는 이런 풍광에 감탄하느라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쾨벤하운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저번에도, 이번에도 역시 자전거다. 세상의 수많은 도시가 저마다 다른 이유는 거기 사는 사람도, 건축도, 생활양식도 다 달라서일 텐데, 쾨벤하운은 도시의 혈관과도 같은 길의 주인이 자전거라는 점이 독특하다.

미국에선 대개 길의 주인이 자동차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도시의 기본값이 있다면 아마 자동차가 아닐까? 도시 곳곳에 차가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 구역을 정해놓았다는 건 곧 도로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자동차란 뜻이다. 맨하탄은 좀 예외인 듯하다. 차도가 워낙 좁고 보행자가 많은데다 요즘엔 배달 노동자들의 전동자전거, 전동 킥보드, '따릉이' 씨티바이크 타는 사람들이 마구 뒤섞여 다닌다. 구역을 제대로 나눠 표시하는 건 불가능하고, 서로 양보하고 천천히 다녀야 하는데, 절대로 그럴 수 없는 뉴요커들은 모두 다 늘 신경질이 나 있다. 

시골은 물론 또 다를 것이다. 아마 옐로스톤 같은 국립공원에선 물소나 야생동물들이 길의 주인일 거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땐 양 떼가 길을 건너고 있으면 모두가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쾨벤하운에선 길의 주인공은 자전거다. 설계부터 규범까지 많은 게 자전거 우선이다.

평일 아침에 도시를 산책하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쾨벤하우너들의 웅장한 출근길을 볼 수 있다. 자전거 앞에 단 큰 바구니에 아이를 태우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부모도 많다.

출근길 쾨벤하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수십 대의 자전거 바퀴가 보인다!

수십 대의 자전거가 10여 대의 자동차와 함께 신호를 기다리다 파란불이 돼 갈 길을 가고 나면 널찍하게 정비된 자전거 전용도로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쾨벤하운이 자전거 도시가 된 비결은 당연히 자전거가 다닐 만한 환경을 잘 갖춰놓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시스템을 고려하는 데 있어 자전거는 가장 중요한 대주주다.

물론 차가 없진 않다. 공영주차장은 물론 길거리에 있는 주차장 곳곳에도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장비가 마련돼 있다. 테슬라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전에 어디선가 일론 머스크는 유럽 도시들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개인이 이동하는 수단, 교통의 중심을 전기차로 만들고 싶은 머스크에게 유럽 도시들마다 잘 갖춰놓은 대중교통은 눈엣가시란 분석이었다. 미국처럼 대중교통이 전무하거나 있어도 엉망진창인 나라만큼 자동차 팔기 좋은 나라가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비만 오면 물이 줄줄 새는 지하철역이 있다. 뉴욕 지하철역 가운데는 물 안 새는 역을 세는 게 빠를 것이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으로 가는 자동차보다 (아마도) 탄소 배출량도 적고, 친환경 교통수단이 맞기는 할 텐데, 아무리 그래봤자 훨씬 많은 사람을 효과적으로 실어 나르는 대중교통에는 비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급이 다르다. 그런데 그 대중교통보다도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친환경 교통수단이 바로 자전거다. 무동력 앞에서 누가 감히 탄소 배출량을 가지고 겨루겠는가?

쾨벤하운의 자전거 정책에 관해 좀 더 찾아보니 재미있는 글이 많았다. 인상적인 건 자전거 도로를 잘 만들어 놓으니 이런저런 긍정적인 효과가 잇달아 나타났고, 이를 근거로 다시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정부가 앞장서서 만들어낸 점이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탄소 배출 줄어서 공기 깨끗해지지, 따로 운동할 필요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만 해도 사람들이 건강해지니 의료비 절감되지, 게다가 장 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자가용을 가지고 장을 보러 가면 아무래도 주차장 넓은 대형마트 가서 트렁크에 이것저것 잔뜩 싣고 오게 되는데, 사람들이 장도 자전거로 보러 다니다 보니 동네 시장이나 작은 가게에서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사게 되고, 덕분에 골목 상권까지 살아난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 건 미국 생각이 나서다. 미국은 절대로 이렇게 하지 못한다. 이건 입만 열면 '작은 정부'를 부르짖는 보수적인 공화당 성향의 지역뿐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일 거다. 물론 워낙 땅덩이가 넓고 이미 모든 생활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뤄지니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튼 정부가 뭐라도 하려고 하면 일단 기겁하거나 정부가 나서는 건 "미국적이지 않다"며 움츠러든다. 시장에 맡길 일이 있고, 아닌 게 있는데, 그 기준이 나라마다, 사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미국인은 정부가 나서서 무언가 하는 걸 특히 싫어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상상의 부재 아닐까? 잘 되는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잘 될 리 없다는 생각에 갇혀서 그냥 시도조차 안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인다. 물론 환경이 다르고, 조건이 다르긴 하다. 조금 김 빠지는 이야기지만, 뉴욕이나 서울을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사실 쾨벤하운의 인구는 수도권을 다 합쳐봐야 135만 명이다. 그러니까 분명 출발점이 다르긴 하다. 그래도 배울 점을 찾아서 맞춤형 전략과 전술을 짜 볼 여지는 충분한데, 이런 세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그저 정부가 뭐만 하면 미국답지 않다고 말하는 건 참 답답한 일이다.

뛰는 테슬라 위에 나는 대중교통이 있고, 그 대중교통을 초음속으로 앞지르는 교통 시스템이 쾨벤하운의 자전거일 수 있다. 특히 자전거가 최대한 자동차와 만나지 않으며 도심 곳곳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자전거 전용 고속도로 시스템을 만든 과정은 나도 배워보고 싶다. 마치 서로 마주치기 싫어하는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들의 동선을 겹치지 않게 일정을 짜는 일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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