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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국 Oct 19. 2020

공허함이 당신의 안부를 물을 때

가끔 성수동이 내게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동네가 성수동이다. 내가 성수동에 처음 생활 터전을 잡게 된 것은 1년 먼저 성수동에 정착한 누나 때문이다. 강릉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면서 누나의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취직을 하면서 우리는 월세 공동체를 이뤘다. 서울 생활에서 주거비는 큰 경제적 부담이었다. 어쩌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게 성수동 생활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는 서울 생활도 8년이 넘었다. 7년은 누나와 함께 성수동에서 월세로 살았다. 성수동 다가구 주택 투룸에서 사는데 매달 45만 원의 고정 지출이 발생했다. 누나와 함께 공동으로 분담했지만, 서로의 형편에 따라 매달 지출 비용이 달라졌다. 가난한 청년의 입장에서 매달 나가는 월세가 경제적 독립에 꽤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다 작년에 4년 동안 살던 월세 집 계약이 만료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독립을 했다. 강아지를 키우던 누나는 한강이 가까운 성수동의 옥탑 원룸으로 이사를 갔고, 나는 성수동을 떠나 직장 출퇴근이 편리했던 옥수동에 오래된 주택으로 전세 집을 얻었다.     

옥수동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강남의 회사 사무실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집 앞을 지나갔고, 성수동으로 향하는 13번 마을 버스정류장도 걸어 이동이 가능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할 수 있는 숲 속 공원도 집에서 가까웠다. 월세 집에서 살 때보다 더 넓은 주방이 생겼고, 작지만 거실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도 있었다. 투룸이라 방 한 칸은 옷방 겸 작업 공간으로도 사용했다. 건축 연도는 내 나이보다 한 살 어린 오래된 주택이었지만, 적은 비용으로 나의 편의에 맞게 실내 공간을 다시 꾸몄다. 오래된 문고리를 직접 교체하고, 성수동에서 만난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방문과 창틀의 벗겨진 페인트를 하얗게 다시 칠했다.    

 

무엇보다도 독립된 나만의 공간에서 자립을 시작한 것이 가장 기뻤다. 이제는 집주인에게 보내는 월세가 아니라, 전세대출 이자만 내면 되었다. 월세로 지출되던 고정 비용이 사라지고,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쇼핑이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새로운 집에 채울 물건을 사는데 월급의 상당 부분을 썼다. 거실 공간에 TV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스마트 TV를 질렀다. 스마트 TV가 생기니 영화를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결제했고, 텔레비전 거치대도 새로 장만했다. 이사 다닐 때 짐 덩어리였던 책을 보기 좋게 꽂을 책장도 구매했다. 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물건들이 집에 채워졌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쓰기에 넓은 공간만큼이나 공허함도 컸다.     


처음에는 주거비용으로 매달 고정 지출이 줄면 집에 대한 만족감이 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강남에 있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쓸쓸하고 외로운 공허함만 남았다. 가끔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불안감에 빠지기도 했다. 저 멀리 앞서 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수록, 나만 계속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 옥수동 이사와 함께 나는 더 풍족한 경제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경험해 보지 못한 공허함도 얻었다. 이 공허함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말 못 할 고민도 동시에 생겼다.   

  

공허함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다시 인식하게 된 계기는 최근 <청년, 편지로 어른을 만나다> 프로젝트로 박미정 경제교육협동조합 푸른살림 대표님께 고민을 토로하면서다. 경제적 문제와 주거 주제로 청년들의 고민 상담을 맡아 주신 박 대표님은 오프라인 좌담회에서 주거는 ‘문화’라고 말했다. 각자 돈을 모아야 하는데도 자기만의 이유가 필요하고, 그럴 때 삶이 더 가치가 있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공허감은 성취 경험에 대한 내적 목소리예요. 돈만 벌고 돈만 모은다고 되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내 몸에서 스며들 때 그때 아마 공허감을 선물할 거예요. 어딘가 기여를 하세요. 그래서 비재무적 보상을 좀 얻으시기 바랍니다.”     


인생 선배 어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느낀 공허함의 원인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성수동이 삶터이자 일터일 때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뭔가 성취해 나가는 기쁨을 자주 경험했다. 꼭 돈이 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재주와 능력이 어딘가에 쓰임새 있게 활용되었을 때, 보람을 느꼈고 스스로도 성장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었을 뿐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거나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 하는 문화도 성수동에서는 자연스러웠다. 이제는 집을 다르게 채우기 위해 생각을 고쳐먹으려 한다. 물질적 가치로 집을 채우기보다는 누군가에 대한 믿음, 존중, 사랑처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가치가 삶의 공간에 더 채워지길 희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나의 재능 기여는 계속 이어져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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