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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ul 18. 2022

아기와 노인은 닮았다

아기를 키우면서 나는 자주 할머니를 떠올렸다. 아기의 행동이나 모습이 할머니와 무척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새 생명과 90살 노인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떠올랐다. 어릴 적 이 영화를 봤을 땐 어린 아기를 노인으로 표현한 것과 노인을 갓난아기로 표현한 게 괴상하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 영화의 감독은 아기를 키우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육아를 하면서 느꼈던 아기와 노인의 비슷한 점들을 꼽아보았다.

(단, 내가 떠올린 노인의 모습은 연로하신 아흔네 살의 할머니이다. 모든 노인을 대표하는 그림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1. 이가 없다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기가 이유식이나 떡뻥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할머니가 틀니를 뺀 채 식사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가 없는 상태로 밥을 먹는 모양은 노인이나 아기나 비슷할 수밖에 없다. 아기는 귀엽고, 노인은 가엽게 느껴지는 게 유일한 다른 점이다.



2.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아주 단순한 행동에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일, 음식을 먹는 일,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까지. 노인이나 아기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하기 어렵다.



3. 두 발로 걷지 못한다

아기와 노인이 각각 이동할 때 꼭 필요한 공통적인 아이템이 있다면 바로 유모차다. 노인분들의 것은 보행보조기라고 부른다. 요즘 이것을 끌고 다니시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생김새가 유모차와 흡사해서 할머니들이 단체로 보행보조기를 끌고 다니시는 모습을 볼 때면 귀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4. 옷 스타일이 비슷하다

어느 날 아기 내복을 정리하는데 옛날에 할머니가 입으셨던 분홍 내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꽃무늬를 옷에 이렇게 많이 활용하는 것도 아기와 노인뿐일 것만 같았다. 무늬뿐만 아니라 아기 옷이나 노인분들 옷은 대체로 화사하다. 칙칙하고 어두운 옷을 입는 경우는 드물다.



5. 머리 스타일이 비슷하다

곱슬기 하나 없이 아래로 쭉쭉 뻗은 생머리에 딱 머리만 가릴 정도의 짧은 길이와 적은 머리숱. 우리 딸의 현재 머리 스타일이자 시할머니의 스타일이다. 머리카락의 색깔은 전혀 다르지만 나머지는 똑같다.



6. 가족들의 관심을 받는다

아기를 데리고 시댁에 간 날, 시할머니도 오셔서 자리를 같이 했다. 식사를 할 때가 되자 한쪽에서는 시할머니의 식사를 돕고, 한쪽에선 아기에게 밥을 먹였다. 그 둘에게 틈틈이 물이 필요한지 묻고, 더 필요한 반찬이 없는지도 확인했다. 온 가족의 관심이 둘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다른 점이 있다면 아기는 항상 주인공이 되어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한다면 할머니는 뒤 편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계셨다는 점이다.






삶의 시작점과 끝점에 있는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한 해 우리 아기를 보며 그리고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며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서 다시 아기로 되돌아가 죽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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