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탈 없이 평안한 요즘, 부모님도 모두 건강하시고 우리 집에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이도 있어서 그런지 내 삶에서 가장 찬란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친구들과 원 없이 놀던 10대도, 새로운 경험이 쏟아지던 20대도, 지나온 시절을 다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아이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인생의 정점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식혜를 먹기 전까지는.
거동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는 이번 추석 때 자식과 손주들을 위해 식혜를 만들어오셨다. 지팡이 없이 걷기도 힘드셔서 식사도 잘 안 챙겨드시는 분이 번거로운 식혜를 어떻게 손수 만드셨는지 그 모습을 떠 올리면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식혜 맛이 싱겁든 달든 쓰든 어떤 맛이건 맛있다고 대답해야지 하며 한 잔을 받았다. 한 모금 마신 후 예상치 못한 맛에 흠칫 놀랐다. 삼다수 병 한가득 담긴 식혜가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엄마도 같이 식혜를 맛보았는데, 할머니가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식혜 마시지 마 상했다. 조서방도 먹지 말라 그래”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그 모습을 멀리 거실에서 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식혜가 어떻냐고 물으셔서 나는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 씽긋 웃으며 맛있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마시지 말라며 계속 얘기하는데 난 할머니를 보며 한 모금 더 마셨다. 옆에 있던 착한 남편은 식혜를 더 마시며 “막걸리 같고 좋은데요”라며 상황을 무마했다. 할머니가 보시지 않는 틈을 타 남은 식혜는 싱크대에 모두 버렸다. 엄마는 식혜를 버리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러게 만들지 말라니까 어휴.. 몸도 불편하신 분이 왜 고생해 가지고 다 버리게 만들어..” 나는 엄마의 등을 어루만지며 “자식들 해주고 싶으셨겠지..”라고 대답했다. 엄마의 마음도 할머니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돼서 가슴이 저릿했다.
어린 시절, 나를 등에 업고 슈퍼에 가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다 늙는다지만 아흔을 넘긴 할머니를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만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매일이 생기로운 아이만 바라보다 저물어가는 노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고 하니 애써 외면하고 싶은 나쁜 마음도 들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이 장면을 넣어야 하는 게 분명한데, 예정된 이별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이 순간은 부정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몸이 더 안 좋아지셨고, 엄마가 며칠 간병을 해보았지만 엄마의 몸까지 나빠져 결국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가게 되었다. 다시 건강해져서 집으로 돌아오실 수도 있지만 요양병원에 가신 분들의 끝이 대부분 비슷한 걸 알기에 그 결정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게 삶인가 보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할머니를 보니 삶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도 아직 덜 살아본 나의 착각일 수 있겠다. 할머니의 삶을, 마지막을 비극이라 단정해 버리는 것조차 나의 잘못된 판단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식혜를 한 번만 더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