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기록하며
글로 옮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무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반년의 시간. 내 삶의 너무 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바뀌었고, 너무 많이 아팠으며, 여전히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건, 마지막으로 느꼈던 아빠에 대한 생각을 기록해 두어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글을 다시 꺼내어 읽으며 아빠를 그리워하고 싶기 때문이다.
올해 설날, 집 안은 어린아이들로 인해 시끌시끌했던 것에 비해 엄마, 아빠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어디 안 좋으신 데가 있으신지 여쭤보니 조금 있다가 얘기해 주겠다고 하셨다. 무슨 일일지 도통 알 수 없어 일단은 엄마가 차려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다 하고 나니 아빠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모두 잠깐 모이라고 하셨다. 보통 이렇게 정식으로 얘기하시는 분이 아닌데, 뭘까 궁금했다. '시골로 내려가시려고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빠께서는 최근 허리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의사가 심각한 소견서를 건넸다고 한다. 어려운 영어로만 적혀 있어서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의사는 대학병원에 가보라고만 하고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번역기를 활용해 소견서 내용을 확인한 뒤, 엄마와 아빠는 큰 상심에 빠지셨다. 아빠가 암에 걸린 것이다. 사실 아빠의 암 판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5년 전 대장암으로 큰 고비를 넘기신 후, 아빠의 노력과 엄마의 보살핌으로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어려운 시간을 함께 견뎠다. 그런데 또 암이라니..
이번 암은 '혈액암'이라고 한다. 너무 생소했다. 나름 건강 지식에 관심이 많았던 나인데, 혈액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겨우 떠올린 기억이라곤 연예인 허지웅이 걸렸던 일, 얼마 전 남편의 사촌동생이 혈액암 투병 후 일상으로 다시 복귀했다는 것 등 너무나 희망적인 기억들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번에도 아빠가 병원 치료만 잘 받으면 금방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걱정이 컸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남은 설 연휴에는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 데 집중했다. 내 앞에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르고.
안타깝게도 의료진 파업이 진행 중이던 때라, 혈액암으로 유명한 주요 대학병원들은 모두 입원이 불가했다. 겨우 엄마의 아는 분을 통해 신촌세브란스 진료 예약을 했지만, 이마저도 첫 진료까지 한 달이나 기다려야 했다. 아빠는 매우 불안해 하셨고,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빠르게 진료와 입원이 가능한 다른 대안을 함께 찾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작은 대학병원이 있었고, 평소에 후기가 좋지 않았지만 나름 '대학병원'의 간판을 달고 있었고, 빠른 치료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했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아빠의 병은 혈액암이 맞았다. 더 정확하게는 '급성 다발성 골수종'. 그 병원은 바로 입원이 가능했고, 5일 후 항암치료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입원 절차를 밟았다. 그게 우리 가정에 얼마나 큰 비극이 될지 모른 채로.
어찌나 빠르게 모든 절차가 진행됐는지, 아직도 의아할 정도다. 아빠가 병원에서 처음 검사를 받은 날이 수요일이고, 그 주 토요일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혈액암의 치료 방법은 표적 치료제를 활용하는 것으로, 사실상 대부분 병원이 비슷하다고 한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아빠의 컨디션은 매우 좋았고 병원 식사도 잘 드셨다. 치료 전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를 보러 면회를 갔고, 아빠는 다시 한번 암을 이겨내실 거라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셨다. 우리는 모두 안심했고, 아빠가 당분간 집에 없어 어색했지만 일상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마음이 하루 종일 싱숭생숭하고 불안을 떨칠 수가 없어서, 회사 생활에 지장이 갈 것 같아 같은 팀과 친한 동료들에게는 미리 얘기해두었다. 모두 나를 위로해줬고, 요즘은 암도 다 치료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굳게 믿었다. 아빠는 평소에 정말 건강하셨고, 운동도 매일 하시며 식단 관리도 철저한 분이셨기에, 60대 중반에 죽음이 찾아올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이 시간을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무척 힘들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눈물이 끊임없이 앞을 가려 글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아무래도 조금씩 나누어 써야 할 것 같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