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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학 Mar 04. 2024

오늘. 필사_240304_꽃샘추위


꽃샘추위_전윤호 


늘 그렇듯 이때쯤이면 

추위가 한 번 기승을 부려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법 

느닷없는 한기에 떨다가 

처음 듣는 노래가 입안에서 맴돌고 

지금 막 첫장을 넘긴 소설은 

어디서 한 번쯤은 읽은 듯한 이야기 

거리를 가득메운 시위대와 

텔레비전에 나오는 정치인들조차 

이미 당해본 아픔처럼 

익숙한 풍경 

나는 겹쳐 녹음된 테이프처럼 

이미 실패한 누군가의 삶을 다시 사는 걸까 

내가 쓰고 있는 시조차 이미 

다른 이의 입에서 읊어진 듯한 

두려움에 

혼자 술집에서 침묵할 때 

내 안을 떠도는 낯선 모습들 

생각해보면 난 

만주 오녀산성 연못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병사이기도 하고 

강화도에서 농성한 포수이기도 하며 

경무대 앞에서 쓰러진 학생이기도 하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자들은 

몽고군의 앞잡이로 내 집을 약탈하고 

친구를 고문한 형사이기도 하고 

우리가 숨은 동굴로 

기관총을 난사한 점령군이기도 하다 

오래된 총상처럼 저린 소주를 마시고 

난 생각한다 

다시 쓰러지는 배역이라해도 

피할 수 없음을 

언제나 먼저 사라지긴 하지만 

내 뒤엔 봄이 한 발 더 따라오고 있음을





새학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곧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은

몽골군의 앞잡이로 내 집을 약탈하고 

친구를 고문한 형사이기도 하고 

우리가 숨은 동굴로 기관총을 난사한 점령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만주 오녀산성 연못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던 병사이기도 하고 

강화도에서 농성한 포수이기도 하며 

경무대 앞에서 쓰러진 학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촌의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아 피흘리며 죽어갔던 청년이기도 하며 

특전사령관실에서 반란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군인이기도 합니다. 


총선이 끝나면 진짜 봄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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