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쯔뜨끄의 짧은 이야기
비에 대한 기억 1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카페 문을 열 때
존박 "빗속에서" 를 크게 틀어 놨다.
오전 10시 임에도 비 때문에 어둑어둑한 가게 안 불을 켜고,
작은 소리로 흥얼흥얼 소울 충만하게 노래 따라 부르며 청소를 한다.
그러면, 텅 빈 카페 안에 노랫소리와 빗소리가 섞여서
마음까지 촉촉하게 만들었다.
딱,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다.
첫 손님은 우산에 빗물 뚝뚝 떨어뜨리며 들어와
나와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창밖 내리는 비를 본다.
점점 손님이 늘어나고,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비 그 시끄러우면서 고요한 소리가, 잔뜩 가라앉은 그 공기가
커피 향이랑 섞여 코 끝에 맴돌았다.
비에 대한 기억 2.
여름 날,
언제고 비가 쏟아질 준비를 하던 그 검고 무거운 먹구름이 가득 껴 있던 날.
일요일 오후 세시쯤 됐을까.
할머니는 나에게 우산을 주면서
섬뚤 할아버지한테 갖다 주고 오라고 했다.
한참 낮잠 자다 일어나서, 미간 잔뜩 찌푸리고
그 귀찮은 심부름을 하러나갔다.
할아버지는 왜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이렇게 날 귀찮게 하나 생각하면서.
아직 할아버지가 있는 섬뚤 논까지는
한참 남아있었는데,
굵은 빗방울이 알아차릴 틈도 없이
후두두둑 떨어졌다.
비는 처음부터 그렇게 내리던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소리도 요란했다.
쏴아아아아아아
산골 계곡물 흐르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차 하는 마음에 서둘러 뛰어가면
신고 나온 슬리퍼가 야속하게도
자꾸만 발뒤꿈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할아버지 갖다 줄 우산을 내가 쓰고
자꾸만 자꾸만 미끄러지는 슬리퍼를 신고 달리다가
에라 모르겠다 슬리퍼 벗어 들고
맨발로 빗물 흘러넘치는 아스팔트 바닥을 걸었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아스팔트에
시원한 비가 쏟아지니, 흐르는 빗물은
뜨끈뜨끈 딱 알맞은 온도가 되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뜨끄뜨끈한 빗물이 넘쳐 흘렀고,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괜히 발걸음에 더 힘을 주고 걷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물길을 막았다 풀었다
반복하기도 했다.
멀리 할아버지가 몸집의 배가 되는 만큼 풀을 싣고
지게를 지고 왔다.
잔뜩 허리는 굽어져 있었고,
비는 야속하게도 그런 할아버지 온몸으로 내렸다.
혼자 신나 놀던 게 미안해서,
비 맞을 할아버지를 잊어버려서,
짜증 냈던 내가 부끄러워서 얼른 달려가
할아버지 옆에 섰다.
할아버지는,
"뭐더러 나왔어? 비온디."
했다.
비에 대한 기억3.
세상 모든 불행이 우리 둘에게만 쏟아지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
그도 나도 행복하지 않았고,
억지로 억지로 살아내던 불행한 시간이었다.
그때 즈음 그는 가난했고, 우울했고, 힘들었고,
살아갈 의욕이 없던 때였다.
어느 날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그는,
검은 봉지 가득 고기를 사 왔고,
허옇게 퉁퉁 부은 발을 운동화에서 빼내면서
웃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며칠 동안 비가 잔뜩 쏟아져 내렸고,
한강물이 잔뜩 불어난 뉴스가 매일 나왔다.
그날, 그는 걸어서 마포까지 갔다.
선릉에서 마포까지.
걸어서.
비에 넘쳐 물기 가득한 서울을 혼자 걸으면서
그는 그냥 나랑 고기가 먹고 싶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