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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Apr 11. 2019

[밀려쓰는 육아일기]생후 16~17개월

아이는 습자지 같다

산책을 나선 길에 '캉캉'하며 앙칼지게 짖는 강아지를 만났다. 잘 걷던 아이가 가만히 멈춘 채 숨죽이며 보고 있길래 무서워서 그런가 보구나 하며 넘겨짚고는 아이를 살포시 안아올려 가던 길을 마저 나섰는데 엄마 품에 안겨서도 그 강아지를 주시하던 아이는 이내 방긋 웃고는 '앙앙'하며 강아지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었다.


16개월이 넘어가며 아이는 누군가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일이 많아졌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형아 삼촌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바로 얼음 상태. 앞에서 손을 흔들고 뽀뽀를 퍼붓고 이름을 수차례 불러도 흔들리지 않고 축구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비로소 다 봤다 싶으면 돌아서서 '따~'하고 공차는 흉내를 내었다. 17개월에 접어들면서는 본인도 형아 삼촌들과 같이 공을 차겠다며 호기롭게 운동장에 들어가려는 일이 잦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숨죽여 구경하기가 우선인 듯 하다.


습자지처럼 무엇이든 쑥쑥 빨아들여 배우려는 아이는 새로운 물건이 나타나면 무조건 엄마 손가락을 잡아 끈다. 잡아 끌어 물건 위에 엄마 손가락을 올려두고는 '자 이제 이 물건을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나에게 보여줘 봐'하는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낸다. 기존에 있던 물건의 새로운 쓰임새가 알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 엄마 손가락을 잡아 끌거나 물건을 엄마 품에 안긴 후 '응응'하며 뭐라뭐라 지시를 하는데 옹알이로 하는 명령어를 잘못 인풋한 엄마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바로 징징대며 항의, 아이의 말문이 트일 때 까지 엄마는 눈칫밥을 잔뜩 먹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집안 물건을 뒤적여 헤집는 양상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물건을 다 꺼내어 늘어놓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으면 손에 꼭 쥐고 돌아다니거나 입에 집어넣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면 돌리고 밀고 굴리고 열어보는 식으로 탐색, 전에 엄마가 '이 물건으로 뭘 어떻게 했는데' 하는 식의 기억이 있을 경우 엄마가 했던 행동을 흉내내기하며 노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고 있다. 카드를 찾아 쥐고는 지갑도 내놓으라고 깽깽거려 지갑을 내어주면 지갑 속에 카드를 넣고 빼는 흉내를 내는 식. 비어있는 물뿌리개를 쥐어 주면 이곳 저곳 물 뿌리는 시늉을 하며 다니기 바쁘고 마른 걸레를 내어주면 열심히 방을 닦는다.

카드와 지갑을 흩뿌리곤 좋아하는 아이



요즘은 본인의 가슴팍을 팍 치며 '아지(아기)~'라고 말하는 행동을 종종한다.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늦은 월령에 속해 빠른 월령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아기'라며 부른다던데 어린이집에 다니며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운 것은 본인의 정체성 확립이었던가 보다. 덕분에 '아기 어디있어?'라는 말에 본인을 가르키고 '엄마 어디있어?'라는 말엔 엄마를 가르키는 애교 스킬이 생겼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아빠 앞에서 보여주니 아빠도 흐뭇. 아빠가 없을 때 아빠가 어디있냐고 물으면 씩 웃으며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사진 속 아빠를 가르킨다.



모양 끼워 맞추기나 블럭 쌓기도 제법 늘었다. 별, 하트, 동그라미 모양 퍼즐을 제 위치에 넣거나 커다란 아기용 종이 블럭을 크기 순으로 쌓는 건데 16개월 전까진 해 볼 생각을 안해 '아 이것도 느리게 하려나' 싶었는데 16개월이 넘어가니 굳이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고 있다. 물론 같은 모양에 끼워넣기 보다 다른 모양에 꾸겨넣기를 더 좋아하고 블럭을 쌓는 것보단 엄마가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더 즐겨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여전히 공이다. 책 속에 동그라미는 죄다 가리켜 '킁(공)'이라 부르고 풍선도 동그란 전등도 모두 공이란다. 덕분에 집에는 고무공, 스펀지공, 축구공, 야구공, 볼풀공, 탱탱볼, 천으로 된 공모양 쿠션 등등등등등.......공이 대체 몇 개인지 모르겠다.(하핫) 얼마 전에는 행사 중인 커다란 마트에 갔는데 마트 전체를 풍선으로 장식해두어 아이 눈이 뱅글뱅글 돌아간 적도 있었다. 사방이 공(풍선)이니 갖고 싶어 죽겠는데 엄마가 한 개도 안줘 힝 우엥 앙앙 식으로 점점 시무룩해진 아이의 손에 빵을 쥐어주고 탈출했는데 가정 경제를 위해선 할인행사 중인 마트를 가야하고 아이의 정신건강을 위해선 피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을...


노란색 풍선이라고 아무리 일러줘도 공이라는 아이




아빠의 폰이 신상 아이폰으로 바뀐 후 공유 앨범에 코퀄 사진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 사진은 블로그에 올리지 않겠다 생각했었는데 사진이 코퀄이라 어디든 자랑하고 싶....덕분에 아빠는 요즘 포토그래퍼에 빙의해서 '사진 찍어야 하는데~'를 연발한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순간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의 예쁨도 늘어나고 죽을만큼 힘든데 죽을만큼 예쁘다는 말이 실감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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