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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리 Jun 01. 2020

낯선 일상의 단편들

미스 제주댁 이야기 | #제주살이 #서울살이 #서울에서의하루



언젠가부터 우리의 대화는 제주의 보금자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런 곳에 살고 싶어. 저번에 그 집은 어때? 번화가보다는 한적하면서 바다에 가까운 동네면 좋겠어. 때로는 장난스럽게, 이따금 진지하게 우리는 제주에서의 생활을 꿈꾸고 준비한다. 정말 현실이면 어떨까. 하루에도 열두 번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가 또 다른 현실 앞에 무릎 꿇기를 반복한다. 이 쳇바퀴가 더 빠르게 돌아가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 달의 제주살이가 두 달이 되는 시점, 더 정확히는 섬에서의 생활을 더 이어가기 위해 잠깐 서울을 다녀온 그 날부터.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5호선의 굉음이 역에서 역으로 움직일 때마다 내 귀를 찢을 듯이 들려왔다. 차분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승하차를 위해 잠깐씩 멈춰 설 때, 그 짧은 시간 중에서도 안내 방송이 없는 찰나뿐이었다. 이어폰으로 두 귀를 막고 음악을 틀어도 봤지만, 가소롭다는 듯이 그 모든 것을 뚫고 들어와 내 몸과 머리를 울려댔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던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두 귀에만 피로가 집중되도록 놔두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2시간 동안 나는 새어지지 않을 만큼의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머물렀고 또 부딪혔다.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 사이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줘야만 했다. 두 눈은 혹여 다른 이들과 부딪힐까, 내 짐들로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주위를 살피기에 바빴다.


온통 깜깜하기만 한 지하에서 밖으로 나왔지만, 조금 더 밝아졌다는 것을 빼면 다를 것이 없었다. 거리에 나와도 나의 눈과 귀는 한 시도 쉴 틈이 없었다. 초록불이 되자마자 출발하지 않는다고 앞선 차를 탓하며 빵빵 울려대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들, 가게마다 시선을 끌어보려 쾅쾅대는 음악소리가 번갈아가며 머리를 울려댔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서서 피로한 눈에 휴식을 주려 고개를 좌우로 돌려봤으나 내 시선은 하늘에 닿기 전에 높은 건물들에 가로막혔다. 고개를 완전히 젖히지 않고서야 두 눈에 파란 하늘을 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누가 좇아오기라도 하듯 빠르게 문을 닫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멈춰 서서 비로소 되찾은 고요한 적막을 누렸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약통을 찾아 타이레놀을 집어 들고 입에 털어 넣었다. 지끈지끈한 두통에 머리가 아팠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원래 내가 살던 일상의 단편들이었다. 지하철의 커다란 소리도, 거리의 소음도 모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것들이었는데. 고작 한 달을 떠나 있다 돌아온 나의 일상은 다른 이의 세상 어느 단편에 들어와 있는 듯 낯설기만 했다.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나의 물건들로 가득 찬 서울 집에 있는 내내 얼른 제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 마음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 달이라도 좋아요 미스 제주댁>  브런치에서 ·사진으로, 유튜브에서영상으로 제작됩니다. 영상이 궁금하시다면 놀러오세요 :-> https://youtu.be/i7iXoxWKBx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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