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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케미걸 Mar 18. 2024

사람이 사람에게


“지금껏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이던가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외로움이요. 80억 지구인 중에 내 편은 한 명도 없구나, 실감했을 때요.”

“철썩같이 믿었는데 배신했을 때 암담하더라고요.”

“가장 무서운 거라. 예나 지금이나 돈이 아닐까요.”

“저는 돈보다 사람이 훨씬 더 무섭던데요.”

“아 그건 맞네요. 사람이 더 무섭죠!”


듣고보니 그렇네요. 요즘은 뉴스를 아예 안 봐요. 사람이 못 미더워져서요. 하긴 돈이 무슨 죄가 있나요? 돈에 휘둘려 사람이 저지른 일들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나는 거잖아요. 일행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며 고개를 끄덕이다 동시에 대화를 멈추었습니다. 저마다 떠오른 기억에 잠긴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랜드 캐년 한가운데 혼자 던져진 외로움. 가족보다 친근하게 품어준 누군가의 배신. 돈에 얽히고설킨 사연과 시련을 모두 면제받은 삶은 여태 보지 못 했습니다. 처한 상황과 정도의 차이가 다를 뿐 우리는 주어진 인생 트레일에서 나름의 최선으로 삶을 꾸려갑니다.


분투하는 시간 속에 부대끼고 밀치고 넘어지다보면 옆에서 달리는 씩씩한 사람이 무례한 경쟁자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약속을 깨고 혼자 앞서 가버린 동반자가 괘씸하고 서운해서 허탈한 날도 찾아옵니다. 험한 골짜기에 길을 잃고 주저앉아 현실이 된 최악의 시나리오가 두려워 지새우는 밤도 견뎌내야 합니다.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이해받기는커녕 마음에 빗장을 지른 채 강행군만 고집하면 사람을 접하는 일이 버거운 짐이 되고 맙니다. 경계심을 풀고 거리낌없이 애써 상대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집니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메말라 관심을 갖는 일조차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은 더없이 선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 안네 프랑크 -


사람이 섬뜩해지는 일들이 난무하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고 믿는 이들도 만났습니다. 그들은 가망이 없다면서 모두 등돌리고 떠나갔을 때 손을 내밀어준 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망연자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던 어느 날 지인이 건넨 책을 붙들고 일어났다며 한 귀절을 들려주었습니다. 여기가 끝이구나, 극단적 선택을 궁리할 때 기회를 준 인연에 감사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다시 일어설 희망을 사람에게 선사받은 그들은 삶에 닥친 고난과 도전이 포기의 엔딩씬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길바닥에 버려진 칼을 보고 겁에 질려 달아나지 않습니다. 무시무시한 강도가 쥐고 위협하면 앞이 캄캄할 테지만 덕망 높은 의사의 손에 들려있다면 안심하고 기꺼이 자기 몸을 맡기게 되겠지요. 사람도 사람에게 칼을 닮은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두고두고 해가 되거나 두고두고 복이 되거나. 극과 극인 결과를 낳고 정반대의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부담과 아픔이 되기보다 치유와 응원이 되는 세상을 누구나 소원합니다. 남을 대하는 내 모습은 상대를 향해 밖으로 드러난 내 마음의 생김새입니다. 내 마음은 지금 무엇으로 불안하고 어떤 상처로 덧나있고 어떤 정리정돈과 양분이 필요한지 살피는 봄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돌보는 탄탄한 마음이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사람으로 치유되는 세상을 울창하게 키우는 비옥한 힘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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