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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Feb 23. 2016

브런치 작가가 되다!


나는 공부를 곧잘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면 열심히 했고, 잘하라고 하면 잘했다. 특목고에 진학한 뒤에도 그냥 열심히 했더니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고3 때도 매번은 아니었지만 꽤 자주 1등을 했다.


그래서 내가 수능을 망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선생님이 없었고, 다행히 논술 수시에 합격했을 때도 친구 엄마에게 '서울대에 못 가는 게 아까우니 재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조금은 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앞에서는 생글거리지만 뒤에서는 불만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내 인생을 내 손에 못 쥐고 휘적휘적 끌려다니는 어른이 되었다.






내 장래희망은 글쟁이였다. 장래희망을 꿈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언론학과나 사회학과에 진학하고 싶었고, 글을 쓰고 싶었고, 기자나 작가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문제는 내가, 무얼 하든 '보통 이상은'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해도 못하기는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뭘 해도 나쁘지는 않게 해내는 거다. 그래서 나는 잘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려 해왔다. 잘한다는 말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니까. 잘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버리면 속 편하니까. 지금 하는 일도 결국 숫자 다루는 일을 '보통 이상은' 해서, 좋아한다고 우겨서, 하게 된 일이다.


가끔 상상을 한다. 내가 글쓰기를 빼고는 몽땅 보통에도 못 미쳤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물론 글을 또 그렇게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글을 쓸 수밖에 없으니 지금쯤 '글쟁이'가 되었을까?


엄청나게 잘하는 건 어렵지만 '보통 이상'만 하는 건 쉬워서, 나는 쉽게 도망쳐 다녔다. 좋아하는 일을 엄청나게 잘 할 자신이 없으면 '보통 이상은' 하는 걸 좋아한다고 우기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도망치다보니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불만 가득한 곳. 아침에 눈 뜨기가 걱정돼서 잠 못 드는 곳.



안녕하세요 작가님!


으로 시작하는 작가 승인 메일을 받은 지금이 회사에서 중요한 보고를 무사히 마쳤을 때보다 행복하다. 월요일을 회식으로 시작했는데도, 점심을 못 먹었는데도, 괜찮다.

요즘 나는 기로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적당히 잘해서 좋아하는 척만 하면 되는 일과, 좋아해서 고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사이에 서있다는 느낌.


오늘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내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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