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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r 13. 2016

농담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수요미식회>의 농담 방식에 대한 감상

<수요미식회>는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신동엽과 황교익, 홍신애 같은 미식가들이 음식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재미있고, 소개하는 집을 무조건 맛집이라 치켜세우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집에 갔다가 실패한 적도 아직까지는 없어서, 믿고 본다.

그런데 오늘은 <수요미식회> 56회를 보다가 매번 불편하게 느껴지던 부분이 심지어 불쾌하게 느껴져서 중간에 꺼버렸다. 내가 유독 불쾌감을 느낀 건 사회자들이 농담을 하는 방식이다.



모욕인가, 농담인가.

<수요미식회> 사회자 2인은 거의 매 방송에서 요리 연구가 홍신애를 겨냥한 농담을 하는데, 농담 포인트는 '홍신애가 대식가이다'와 '그녀가 날씬하지 않다'의 상관관계에 있다. 그녀가 선정 식당에 가서 이런 저런 메뉴를 다 맛보았다고 이야기하면, 전현무는 "저 분은 진짜 먹는 것에 비하면 살 안 찌는 거라니까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녀가 어떤 메뉴는 양이 적어서 조금 아쉬웠다고 말하면, 신동엽이 "보통 사람들한테는 적은 양 아닐걸요. 홍신애 씨야 워낙 많이 드시니..."라고 농담하는 식이다. 그러면 패널들은 하하 웃고, 홍신애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뭘 그렇게 많이 먹느냐고 '농담'하는 상황
문어를 많이 먹었으니 '대왕 문어'라고 농담한다. 그런데 함께 출연한 날씬한 여성 패널은 작은 '세발 낙지'란다.


농담이다. 아니, 얼핏 농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농담을 풀어서 얘기하면 결국 '당신은 그렇게나 먹으니 날씬할 수가 없다'는 메시지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농담은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더라도 듣기 불편하다. 예의에 어긋난 농담이라서 그렇다. 잘 먹는 것도 흉이 아니고, 날씬하지 않은 것도 흉이 아닌데, 날씬하지 않은 사람이 잘 먹는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흉보는 꼴이다. 그러면서 농담이라고 떼를 쓴다. 타겟이 된 입장에서는 발끈할 수도 없다. 농담의 탈을 쓴 멘트에 발끈하면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할 것 아닌가.


"넝담~ㅎ 설마 화내는 거 아니지?"


왜 그녀에게만 '농담'하는가.

그들의 농담이 더 예의 없는 이유는 사람을 가리기 때문이다. 날씬한 패널들에게는 절대 이런 농담을 하지 않는다. 오늘 보다가 꺼버린 방송에서 전현무는 게스트로 출연한 샤이니 태민에게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 쪄서 좋겠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다른 여성 게스트들이 나와서 음식 이야기를 하면, '그런데도 몸매가 그렇게 날씬하시냐'고 칭찬한다. 홍신애와 똑같이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고 말해도 '당신이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농담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불쾌한 농담은 어지간히 살집이 있는 남자들에게도 적용되지 않아서, 소주를 24병 마신다는 지상렬에게는 "술 드시는 양에 비하면 마른 편이라니까요."라는 농담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잘 먹으면서 통통한 여성'만 그런 모욕을 당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잘 먹는데 왜 그렇게 몸매가 좋지? 태민이가 먹은 게 다 나한테 오나..."
날씬한 여자 패널들은 잘 먹는다고 하면 이런 말을 듣는다. "그런데 왜 살이 안 쪄요?"
홍신애와 똑같이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고 말해도 '당신이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농담하지 않는다.
소주를 24병 마신다는 지상렬에게는 "술 드시는 양에 비하면 마른 편이라니까요."라는 농담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를 모욕하는 농담

교묘한 방식의 농담, 소위 '돌려까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악한 사람들이라서는 아닐테다. 우리는 농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고, 농담에 성공했을 때의 뜨거운 반응은 우리를 뿌듯하게 한다. 특히 방송 사회자들은 시시각각  재미있는 대사를 쳐야 사람들이 열광하니, 날씬하지 않은 출연자가 엄청난 대식가라는 사실이 농담의 기회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듯한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사회자들의 그런 농담도, 그들의 농담에 웃음소리와 자막을 삽입해서 내보내는 편집도,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죽겠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농담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말이다.


다른 이를 모욕하는 농담, 참 예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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