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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Feb 22. 2016

월급쟁이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라는 말이 너무 싫어."


상사가 말했다.


'나는 그런 당신이 너무 싫어.'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요즘 참 많이 들리는, 그래서 웃기는 말이다. 지당한 것은 새삼스레 이름 붙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은 당연하지 않아서, '워라밸'은 그 이름 얻게 된 것이다.


내가 지금의 상사와 처음으로 같이 일하게 되었을 때, 그는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일하고 있는 나에게 '번개'에 갈 것을 요구했다. '잔업이 있어서 오늘은 안 되겠다'고 말하니, 그 사람은 '그래도 오고 싶으면 일 끝내고 오라'고 했다. 전혀 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물론 업무를 마무리한 뒤에 퇴근했고, 밤 늦게까지 다른 사람을 시켜 나에게 연락을 해대던 상사는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그 후에도 며칠 간 눈치를 줬다. 업무 시간 이후 '번개'에 참석하는 것이 얼마나 '조직을 위해' 중요한 활동인지 열변을 토하며.


업무 시간에는 업무에 최대한 집중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내 삶을 챙기겠다는 것이 그렇게 이기적인가. 심지어 나는 그 날 '6땡퇴(6시 땡! 하면 퇴근하는 것)'를 하지도 않았으며, 그 날 뿐만 아니라 그와 일하게 된 이후로 한 번도 6시 30분 이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가. 내가 남아서 마저 업무에 집중한 2시간 동안 그는 회사 돈으로 술을 마신 뒤에 회사 돈으로 대리 운전을 불렀으며, 다음날 업무 시간에는 넋을 놓고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아, 다음날 점심 해장도 회사 돈으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저녁 시간에 술을 마시러 가는 '희생'을 꺼려한다고 말한다.


맞다. 나는 희생을 꺼린다. 성과와는 관계도 없는 흥청망청한 '업무'를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하기를 꺼린다. 즐기지도 않는 술을 억지로 마시며 행복한 척 하느라 내 건강을 희생하기를 꺼린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상사의 시간을 채워주기 위해 내 에너지를 희생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앞으로도 희생 정신이 투철한 직원은 못 될 것 같다.






누구나 이런 상사 한 명 쯤은 있을 것이다. 한 명만 있는 나는 어쩌면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철칙은 '워라밸은 스스로 챙겨야한다'는 것이다. 누구도 내 삶이 균형잡힌 것이 되도록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희생 정신'이 투철하신 분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그것도 많이!) 그들이 나의 생활까지 멋대로 희생하려 할 때, 가끔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막아낼 용기가 없다면 내 삶의 균형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는 이기적인 단어가 아니다. 워라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업무 시간 내에 주어진 일을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회사가 아니라 내 삶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회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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