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문득문득 두렵긴 하다
별일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직 조직검사한 부위의 피멍이 있어서 다른 검사가 불가능하여 다음 주에 있을 전이여부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2주에 걸친 검사 후 선생님을 만나 앞으로의 치료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대학병원의 파업으로 선생님과의 진료가 5일 미뤄졌다는 연락을 오전에 받았다. 무기한 미뤄지는 것보다는 낫지 싶다.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 후 나의 치료 스케줄이 나오면 정말 환자가 되어서 나의 병과 싸워야 하기에 지금은 느긋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니다 느긋은 아니다. 혹시라도 연구소로 돌아오지 못할 일을 대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실험들을 모조리 하고 있다. 내가 하던 일은 논문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아마 끝까지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실험과 샘플들을 만들어두고 가려하니 조금 무리하고 있다.
혹시라도 나의 이 암덩어리가 다른 곳에 퍼지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었다면, 수술로만으로도 끝날 수 있을 것이다. 항암을 하게 된다면 100% 조기 은퇴다. 그렇게 은퇴가 꿈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강제 조기 은퇴는 상상도 못 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나의 운명이 결정되기에, 최대한 지금 일상을 즐겨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요즘 나의 일상은 일이 많은 날은 늦게 퇴근 해서 남편과 치맥을 즐기기도 하고, 저녁 외식을 한 날에는 산책을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한다. 연구원의 친한 선생님들과 곱창을 먹으러 가서 맥주 한잔을 하기도 했고, 남편과 코스트코 가서 먹고 싶은 초콜릿을 두 봉지나 사 오기도 했다. 또 내가 재배하고 있는 작물이 있는 매우 작은 밭에 가서 장마와 한여름 대비 작물들을 다 뽑아 정리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8월 말에 다시 작물들을 재배해야지.
아직도 나의 병이 실감되지 않는다. 통증이 전혀 없다. 피곤하다는 증상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피곤한 거 아닌가?? 난 어제 회사에 12시간이나 있었는데!! 그럼 다 피곤한 거 아닐까? 아직도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 나의 치료 방향이 결정되어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순간순간 문득문득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
오늘 확인하니 지난 글에 댓글을 21개나 달아주셨더라고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은 처음이에요!! 어떤 분이 소설인가요? 사실인가요?라고 질문해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 잘 안 우는데 댓글 응원 보면서 막 울었어요 ㅠㅠ 너무 감사합니다!! 아직 병아리 환자지만 잘 치료하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제가 또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건 정말 잘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