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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Feb 24. 2022

골목의 온도

돈의문 박물관 마을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라는 호칭보다는 아지오가 있던 그 골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이미 사라진 건축물을 기준으로 위치를 설명하는 건 그만큼 나이가 먹었단 뜻이겠지만... 그럼 뭐 어떤가, 습관처럼 지표로 삼는 잊지 못할 장소가 있다는 건, 제법 낭만적이지 않은가. 

내가 아는 가장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를 기억한다. 대학시절 스타식스 정동에서 영화를 보던 날이면 길 건너 새문안 동네에 위치한 아지오로 향하곤 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낡은 한옥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그 끝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세련된 이층 집. 앤티크 인테리어 전문가 부부가 운영한다는 그 레스토랑에는 주인의 감각을 닮은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품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  

약간은 세련된 어른이 된 듯한 기분, 갓 스무 살을 넘긴 그 시절의 나에게 아지오는 그런 우쭐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 학생 형편에 자주 올만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날을 맞이하거나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곳으로 향했다. 소중한 하루를 맡겨도 좋을만한 곳, 내가 아는 가장 우아한 공간이었으니까.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것이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2층 창가 자리에 앉아서 제법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존재했던가 싶어질 정도로 아스라이 멀어진 스물세 살의 나. 그럴 때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괜찮은 레스토랑을 하나 둘 알아갔다. 그렇게 유일했던 나의 아지오를 찾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잊혀져 갔다. 그러다 몇 년 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층 집을 발견했을 때, 마치 학창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반가움이 피어올랐다. 이제는 돈의문 역사관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새문안 동네의 지난 이야기들이 전시된 공간 한 편에는 아지오에 대한 추억도 조그맣게 기록되어 있다. 

한 때는 날리던 

새문안 마을.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가정집을 개조해 소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방이 성행하던 곳이었다. 서울고, 경기고, 경기중, 경기여고 같은 명문 학교들을 근처에 두고, 가까운 광화문과 종로에 유명한 입시 학원이 즐비한 위치적 특성상 뜨거운 교육열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그 많던 명문 학교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고, 과외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일대의 과외방 열풍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대신 고층 빌딩이 하나 둘 늘어갔고, 그 안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식당이 많아졌다. 1990년대 초부터는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이 내놓은 주택을 개조한 식당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났고, 새문안 동네는 식당 골목으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던 2003년, 새문안 마을은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며 기존 건물의 전면 철거 후 근린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에 포함된다. 하지만 마을과 그 안에 놓인 건물들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인정받으며, 마을 전체가 공원이 아닌 박물관으로 재탄생하기로 최종 결정된다. 덕분에 새문안 마을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뻔한 위기를 넘어, 과거의 이야기를 지금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친근한 동네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찾을 수 없이 멀어진 어릴 적 골목 풍경. 돈의문 박물관 마을 한 켠에는 80년대 생인 나의 어린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마을의 모습이 조성되어 있다. 일반 가정집을 재현해 놓은 공간부터 만화방, 컴퓨터 게임장, 이발소, 극장 등이 들어섰다. 이 모든 것이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전시품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추억의 소품들에 마음이 울컥해진다. 가끔은 가짜인 것을 뻔히 알면서 그것에라도 기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유독 좁은 골목길을 좋아한다. 이 취향의 시작은 아마 어릴 적 살았던 빨간 벽돌집과 그 주변의 풍경에서 기인한 것 같다. 집을 둘러싼 모든 골목길들이 동네 친구들과의 무궁무진한 놀이 공간이었고, 그 친구들이 사는 이웃집들은 물론, 슈퍼든 부동산이든 어딜 들어가도 다 아는 사이인 그런 다정한 시절이었다. 모두가 잘 어울렸고, 공생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골목에 망설임 없이 스며들어 있었고 맘 편히 숨기를 즐겼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자주 마주하게 되는 대로에서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곳에서는 타인에 대해 관심 가지는 이가 없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숨길 곳도 없다는 기분이 든다. 모두가 ‘적’이 되는 느낌. 골목길처럼 곁을 내주는 듯한 따스한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밥때가 되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된장찌개 냄새도 없고, 아스라이 들려오는 사람의 웅성거림도 없고, 동그란 빛을 만들며 선 가로등의 반가움도 없다. 대로는 없는 것투성이다. 

익숙한 동네 풍경 속, 친근한 골목길을 걷다 보니 토요일 오후, 4교시 수업을 마치고 돌아간 집에서 긴급출동 911을 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빠랑 가던 ‘로뎅’이란 이름의 경양식 집도 그립고, 말 그림이 그려져 있던 죠다쉬 티셔츠도 그립고, 조니 뎁과 위노나 라이더, 베버리힐스 아이들과 헐크 호건도 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 옛날 생각의 끝은 늘 엄마로 향한다. 이상한 일이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하는 땅따먹기며 팽이 돌리기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를 목청껏 부르던 엄마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엄마 보고 싶다. 


* 이 글은 빅이슈 254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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