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매년 어기지 않는 약속으로 반드시 피어나는 꽃, 성실하게 쫓지 않으면 금세 사라져 버리는 올해의 찰나에 애틋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에는
벚꽃을 보지 못한 채 지난봄을 떠나보냈었다. 몸과 마음이 겨울에 머물러 있어서 따스함이나 화사함 같은 것들을 맞을 여력이 없었다. 그저 방 안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며 남들의 꽃놀이 사진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누군가의 행복함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으니까.
처음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꽤 오래전부터 집 근처 안산의 연희 숲 속 쉼터로 벚꽃 구경을 가곤 했었는데, 작년에는 그 봄의 의식마저 건너뛰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개화 시기를 정확히 가늠해 벚꽃을 보러 나섰다. 지금이 아니면 놓치고 마는 순간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에 서서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건넸다. '그래, 올해는 꽃을 보러 올 힘을 내었으니, 나아지고 있어.'
언뜻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빛깔과 모양을 지닌 벚나무들이 산속 가득 피었다. 안산 연희 숲 속 쉼터에는 약 3천 그루의 벚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왕벚나무, 산벚나무, 잔털 벚나무 등 알고 보면 각각의 이름을 지닌 그 벚나무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건 연희 숲 속 쉼터의 중심에 자리 잡은 커다란수양벚나무이다. 수령 40~50년 정도 되었다는 수양벚나무는 연분홍 꽃이 가득 피어난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봄바람에 가볍게 몸을 흔들거리고 섰다. 그 우아한 살랑거림을 봐야만 올해의 벚꽃놀이가 온전히 완성된다.
매년 변함없이 벚꽃을 피어 내는 수양벚나무를 바라보면, 어쩐지 안심이 된다. 나무 전체가 잘 보이는 맞은편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 나무 밑으로 들어가 올려다 보기도 하고, 주변을 맴맴 돌며 다른 각도의 다른 풍경을 감상한다. 수양벚나무는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처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변수 많은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수양벚나무 한 그루는 감사하고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이 글이 세상에 나올 즈음엔
또 한 번의 벚꽃 계절이 지나있을 것이다. 만약, 벚나무가 일 년 내내 꽃을 피우고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설렘이나 감동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긴 겨울이 끝나고 햇살이 몽글몽글해지는 시기에, 일주일 남짓 잠시 피고 지는 꽃이기에 이토록 벚꽃을 사랑하고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봄이 오니 겨울 내내 숨기고 가려 두었던 것들을 세상에 내어 보여도 좋겠다는 마음이 슬며시 차오른다. 지난 계절의 이불을 빨아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보송하게 말리듯이, 일상의 관성에 젖어 돌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다듬고 정리하고 싶어 진다. 꽃이 피고 지는 것만큼만 성실하게 살아내어 보자, 그런 생각을 한다.
매년 더 꽃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을 '나이가 들어서'로 퉁치며 희화화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의 변화를 살피고 고마워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니까.
그리하여 벚꽃엔딩. 또 한 번의 만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을 기억하면서...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꽃이 지는 일에 관한 아쉬움이 아니라, 다시 한번 피어날 꽃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고마움에 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