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앞에 온천 앞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도 있다고 하지만, 버스에 올라 휙 지나기보다는 슬슬 걸으며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건물 사이에 핀 민들레, 꽃나무속에 숨은 표지판, 손때가 묻은 기구가 놓인 놀이터와 그 한가운데를 지키고 선 커다란 나무... 작고 귀여운 순간이 넘쳐난다.
사소하지만 사랑스러운 순간이 오늘을 풍요롭게 가득 채운다.
온몸이 가벼워진듯한 개운한 기분.
아직 길게 남은 오후는 어디에서 보낼까 고민하다가, 유학시절 가장 자주 들렀던 신주쿠로 향한다.
다니던 학교가 있던 곳. 복잡하고 정신없지만, 어디로 든 향하기 좋은 곳, 온갖 전철과 지하철이 지나는 곳, 흔하지만 익숙한 곳, 굳이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향하게 되는 곳.
신주쿠의 빅카메라, 돈키호테 같은 눈에 익은 건물을 지날 때면 어쩐지 드라마 [심야식당]의 인트로 노래가 머릿속에 재생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키노쿠니야 서점에 들러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지하로 향한다.
이 서점을 수없이 방문했는데 왜 단 한 번도 지하에 내려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모험심과 탐구심 없던 지난날의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며 처음으로 내려가본 지하 1층. 표지판 속 책을 읽고 있는 픽토그램이 사랑스럽다. 공간이든 사람이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언제나 사소한 디테일이다. 애정이 담긴 건 아무리 작아도 마음에 남는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카레집.
혼밥이 마음 편한 바(bar) 형태의 가게에 앉아, 양고기 카레와 라씨 한 잔.
마음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만든 듯한 인형을 하나 사서, 가방에 단 채로 다시 지상으로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