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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hyun Oct 12. 2016

끝이 보이지 않던 길

2016년 10월 11일 (Day + 142)

<CDT(5,000km 미국종단) Day + 142>

3주정도만 더 걸으면

끝이 보이지 않던 이 길도 끝나게된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니.

이래저래 생각이 더욱 많아지는 요즘이다.

Fifty mountain campsite in Glacier national park
US-Canada border
Nobo(Northbound)에서
Sobo(Southbound)로

142일 전,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출발해서 북쪽방향으로 쭉 걸어왔다.

하지만 3,500km정도를 걸은 뒤

갑자기 계획을 변경하게되었다.

북쪽이 벌써 눈이 많이 와서 입산이 통제된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눈때문에 이 길을 다 걷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끝에, 가장 북쪽 구간으로 가서 그곳을 걷고, 거꾸로 방향을 바꿔 내려오기로 했다.

Waterton, Canada

사실 조금 아쉬웠다.

남들처럼,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세워진 비석에서 이 길을 끝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오며

비석이 있는 그곳에 도착해서 기뻐할 내 모습을 항상 그려왔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고속도로 옆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 최종 목적지가 되었다.
최종 목적지가 달라지면서
내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Waterton, Canada

비석이 세워진 그곳에 먼저 다녀온 뒤,

방향을 바꿔 남쪽을 향해 걷고있는 요즘.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예전이나 지금이나 간절함은 똑같았다.

어느새 그 작은 마을에 도착해 기뻐할 내 모습을 상상하며 걷고있었다.

목적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걷는 이 길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덕분에 깨달았다.


선명해진 모습들

지금까지 142일을 걸으면서
나는 나와 더 가까워졌고 내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마음껏 기뻐하고, 행복해했고 때로는 마음껏 아쉬워하고, 힘들어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혼자 소리내서

눈물이 더 나오지 않을 때까지 펑펑 울어보기도 하고

나를 응원하고 다독이면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도 알게되었다.

Bob Marshall, Montana

나의 장점도, 단점도 더 분명하게 알게됐다.
그리고 나에게 솔직해진 나의 모든 모습을 더욱 아끼게됐다.

내가 좀 더 선명해진 느낌이다.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Bob Marshall, Montana _ 비가 갑자기 눈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모든 것들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기억

왜 힘들었던 곳은

그만큼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더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걸까?

Bob Marshall, Montana

이제 3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요즘, 지나온 길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더 오래 기억하고싶어서 억지로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Bob Marshall, Montana

사진을 보면

그때 그곳을 걸었던 내 모습, 그때 그 상황, 내가 느꼈던 것들, 이 모든 것이 뒤섞여서 떠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이 흐려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이 감정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싶은 것은 내 욕심일까?? :'(


'Chinese Wall' Bob Marshall, Montana
만리장성처럼 길게 쭉 이어지는 절벽. 'Chinese Wall'

어떤 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었고

또 어떤 날은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 한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다.

그런 순간들을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하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이곳에서 무지개를 참 많이 봤다.

3주.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이 길의 끝이 보인다.

Continental Divide Trail

기분이 참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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