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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ul 26. 2021

그래, 상류에서 놀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상류





그때 나는 엄마가 왜 우리를 데리고 외할머니 집에 가는지 잘 몰랐다. 엄마가 조금 화가 났다는 것은 택시 안 공기의 질감이 말해줬다. 엄마는 웃고 있는 적이 별로 없었다.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거리에 할머니 집이 있었다. 서울이지만 시골 같았던 할머니집 주위로는 실제로 개울이 흐르고 밭이 있었다. 북한산 자락의 한편에 자리한 그 집에서 여러 해의 여름을 보냈다.


할머니는 우리가 놀러 간다고 하는 날에 커다랗고 빨간 고무다라이에 물을 받아두셨다. 하루 전날 받아둬야 얼음장처럼 차가운  지하수가 조금이나마 태양열에너지를 흡수해서 온도가 놀기 좋게 시원해 지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다라이 두어 개에 가득 받아놓은 물이 손주들을 위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대신한다. 래시가드라는  자체가 없었던 그때, 우리는 메리야스와 팬티를 입고서 다라이 워터파크로 첨벙 뛰어들었다.


때로 할머니는 근처의 계곡으로 우리를 델고가 주셨는데 가는 길에 이미 올챙이를  바가지 잡곤 했다. 그때는 올챙이가 징그럽지 않았던  신기하지만, 올챙이가 징그럽기 않았다는 것이 내가 아이였다는 증거다. 아무튼 도착한 계곡에서는 돌을 들추면 가재가 있었고, 물방개라던가 소금쟁이들이 지천이었다.  계곡의 이름이 진관사 계곡이었다는 것을  자란 후에 알았다.


진관사 계곡에 마지막으로 가서 가재를 잡은 이후 30년은 지난 듯.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가본일이 없었다. 그 시절 나만큼이나 훌쩍 자라버린 나의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갈 수 있는 계곡을 검색하다가 마주한 그 장소의 이름에서 할머니와의 어린 시절이 동시에 되살아났다. 아, 그런 여름이 있었지.


아이들을 데리고 어른의 입장으로 진관사 계곡에 처음 찾은 것은 2019년이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진관사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지금은 보호구역이라 물놀이가 금지되어 있다. 힘에 부쳐하는 아들들을 얼러가며 200여 미터 걸어 올라가 본다. 진관사 너머 등산로로 이어지는 계곡에서부터는 무서운 더위를 피하러 온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맑고 청초한 물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이미 좋아진다. 발만 담가도 더위가 페이드아웃되는 느낌.


계곡을 좀 다녀본 입장에서 계곡을 평가하는 기준 몇 가지가 있다. 집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계곡물은 맑아진다는 공식도 있다. 강원도의 계곡은 웬만하면 다 맑고 깨끗한데 서울 근교에서는 맑은 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송추나 남양주 정도에 위치한 계곡은 가깝긴 하지만 하류의 느낌이다. 진흙이 많고 탁하기 일쑤다.


진관사 계곡은 이런저런 기준을 모두 통과한다.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하면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차가운 물이 힘차게 하르는 곳,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다만 국내 나들이를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가깝고 좋은 곳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는 점이다. 나 말고도 이미 이곳이 좋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 자리를 차지하고 바위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아 자리잡기가 녹녹지 않다는 것. 비밀은 없다.


진관사 계곡에서의 이동은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암벽 타기의 스킬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험하다. 그만큼 자연에 충실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린 아들을 꼬셔서 위로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사실은 가재를 찾고 싶어서였다. 사람이 너무 붐비는 계곡 입구에서는 물고기와 가재를 찾을수가 없어서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 수는 적어졌다. 아, 이곳이 상류로구나.


반들반들 잘 마모된 커다란 바위를 미끄럼틀 삼아서 연신 슬라이딩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엉덩이에 구멍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거침없이 놀아대는 아들들 모습에 시원한 마음이 들어 우리는 번번이 계곡을 찾게 된다. 우리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다른 가족들도 계곡 이곳저곳에서 발을 담그고 더위를 피하고 있다. 덥지만 덥지 않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그보다 시원한 곳은 없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에어컨이 만든 인위적인 온도 속에서 아이들과 온종일을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무더위에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여름에는 일류다. 라는 이상한 마인드를 고집스럽게 달고 산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 날이면 날마다 우리가 찾아다닌 상류.



현재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상류문화는 이런 것이다. 더워서 부려본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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