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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Jun 19. 2020

아들에게 주는  가장 거대한 장난감  

바다로 간다



장난감으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으면

아직은 아이다.

그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아쉬운 엄마다.


장난감으로 해결하고 싶었던

많은 시간들


어떤 장난감은 주는 사람만 기뻤고

어떤 장난감은 하루만 지나면 시들했다.







     2016년 여름이었다. 다섯 살,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을 했고 그로 인해 대국민 공통 여름휴가 기간을 실제로 받아들여야 했던 첫여름이었다. 그전까지는 "여름방학"이라는 것이 없는 아기였기 때문에 극성수기를 피해서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어디로든 떠나곤 했는데 유치원 첫여름방학을 덜컥 맞이했고 마음이 분주했다.


우리 남쪽으로 갈까?


유치원을 일주일이나 안 가는데, 우리도 그럼 휴가를 맞춰야겠네. 아이의 여름방학에 대한 고민을 주제로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회사 복도 구석에서 갑자기 우리는 4박 5일 남쪽 여행을 결정해버렸다. 통영-남해-부산으로 커다란 동선을 잡고, 구체적인 계획은 가면서 세우자고 했다.


떠나기 전날 마트에 들러서 돌고래 튜브도 사고, 작은 보트도 샀다. 남편은 그런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좋아한다. 튜브에 욕심이 많다. 커다란 튜브를 챙겨가서 바람을 넣고 빼는 일은 생각보다 더 번거로운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지치고 시작하는 물놀이. 그런데도 항상 바리바리 한 짐 싸가는 남편. 바다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신이 나서 튜브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완성된 보트에 아이를 태우고 바다에서 출렁출렁 거리며 미미하지만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남편 얼굴에 어린다.


남해 몽돌해변 바로 앞에 있는 숙소에 머물렀던 날, 아침부터 바다에 나갔다. 8월 첫째 주였고 눈을 뜨자마자부터 무더위가 느껴졌기 때문에, 곧바로 바다로 직행했다. 대문을 열고 조금만 걸으면 바다가 있는 숙소가 가진 가장 큰 혜택을 놓칠 수가 없어서 이른 아침 바다행.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빗방울이 거세져서 셋이 앉아서 보트를 뒤집어쓰고 비를 피했다. 아이의 표정이 신나보였다. 바닷가에서 생긴 이런 긴급한 상황이 즐거웠나보다. 비가 조금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침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컵밥 같은 것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고 부산으로 이동했다.


부산으로 가는 길, 완전히 개인 날씨에 자연스레 바닷가에 차를 세웠다. 잠깐만 놀다 가자, 했는데 남편은 어느샌가 또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잠깐만 놀다가 갈 건데 바람을 왜 넣어~

그래도 보트를 타야지


아이를 위한 건지 본인이 타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다. 아이는 파라솔 그늘 아래서 모래 놀이하는 것에 더 집중했고, 남편은 홀로 보트 위에 누워 유유히 바다를 떠다니며 한나절을 보냈다. 삽 하나와 버려진 소주병 하나를 갖고 하루 종일 모래를 파고 있는 아이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그 해변의 모래를 모두 파낼 기세로 계속해서 모래를 파고 뭔가를 가져다 심었다. 바다로 달려가서 물을 길어와 본인이 심은 정체모를 무언가를 위해 물을 주고 다시 또 파고 심고 물주는 아이의 주위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즐거움의 아우라가 퍼져나갔다.


때마침 날아온 전단지를 훑어보고 무슨 반점에서 중화요리를 주문했다. 자장면 탕수육 짬뽕 세트를 시켰는데 그 깊은 맛에 감탄하다가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해보다 먼저 부산으로 넘어가야지, 그때 자동차 키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차키 못 봤어? 차키가 어디 갔지... 아까 여기 뒀는데


가방 속을 뒤지고, 주위를 살펴도 차키는 보이지 않았다. 햇볕에 그을려 까매진 우리들의 피부가 약간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 문을 못 열면, 어떻게 이동하지. 모든 짐은 다 차에 실려있는데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이 막막했다. 여름휴가 기간이고, 차키를 새로 맞추려고 해도 당장은 불가능할 텐데. 견인차를 불러 서울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고 있을 때 저 옆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던 아들이 멀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재희야, 아빠 꺼 빠빵 열쇠 봤어?


의외로 아이의 대답은 "응"이었다.


내가 여기에 심었어. 무럭무럭 자라라고 물도 줬어


남편과 나는 아이가 놀던 모래사장을 일대를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늘 밤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로 오랜만에 한마음이 되어 진지하게 수색에 임했다. 포기하고 싶어 지기 직전에 고이 심어져 있던 차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틈만 나면 바다에 갔다. 바다에만 데려다 놓으면 모래사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모래성을 쌓다가, 땅을 파다가, 바다로 들어가서 물을 길어 나왔다가. 그러다가 미역 한줄기를 건졌다가, 조개를 주웠다가, 새우를 잡았다가. 파도에 발을 담갔다가, 모래 속에 몸을 파묻었다가. 신나는 표정이다. 온종일을 그렇게 보내고서도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하면, 오분만 더 십 분만 더 하면서 아쉬워한다. 선크림을 아무리 두껍게 발라줘도 새까맣게 타버린 후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할 때 모래가 우수수 떨어지면, 오늘 정말 신나게 놀았구나 싶다.


둘째도 다르지 않았다. 둘째는 기어 다닐 때부터 바닷가에 놓였다. 멀찌감치 형아가 바닷가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던 아기가 이제 제법 세 살 어린이가 됐다. 형들 노는 틈에 껴서 바닷가 모래밭을 누빈다. 걷기 시작하고 처음 바닷가를 마주했을 때 그 뒷모습의 비장함을 잊을 수 없다. 파도가 치는 바다를 마주하고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것이 정녕 나에게 주어진 장난감이란말인가, 라는 말풍선이 머리위에 뜬 것도 같았다. 그러더니 본격적으로 바다놀이에 착수했다. 그날 이후 다이소에서 사준 3000원짜리 모래놀이 세트를 그 어떤 장난감보다 소중하게 품고 다닌다. 삽과 모래놀이 도구가 들어있는 그 세트를 보물단지처럼 챙긴다. 잘 때도, 차에서도 그걸 꼭 안고서 "빠다빠다” 바다에 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바다에서 돌아온 날 그 모래놀이 세트를 침대까지 챙겨 들어간 것을 나중에 봤다. 그날 침대는 모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어떤 장난감은 하루만 지나도 시들해졌고, 어떤 장난감은 쉽게 고장이 났다. 아들 둘에게 수없이 많은 장난감을 선물했지만, 결국은 바다였다. 아들에게 주는 거대한 장난감,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바다라는 선물.



흔히 돈으로도 셀 수 없는 것이 추억이라고 한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엄마랑 아빠가 바닷가에 너희들을 데리고 다니느라고 쏟은 돈과 시간을 기억해주렴. 바다는 무료지만, 분명한 것은 너희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많은 비용을 들여서 바다 앞에 너희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장난감보다 비싸고 커다란 선물을 한 것이다. 생색내는 부모는 별로일 수도 있어서 직접 말은 하지 않고, 이렇게 여기에만 기록해두기로 하고. 언젠가,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장난감으로 더 이상 달래지지 않을 만큼 커버린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우리가 함께 했던 바닷가에서의 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머물기를 바라면서 이번 여름에도 우리 가족은 하염없이 바닷가에서 그을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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