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도 아니고 한소희도 아니다
여럿이 모여 앉아 있다가 하는 실없는 소리 중에서 제법 빈도 높은 주제가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누구로 태어나고 싶은가. 다시 태어날지 못 태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단히 진지하고 엄청나게 심도 깊게 그 대상들을 추려보곤 했다.
전지현의 전성기는 내 눈으로 목격한 것만 20년이 훌쩍 넘어간다. 대체 불가의 캐릭터라고 생각 못했다. 긴 생머리 프리미엄을 만든 장본인이자 우리 모두의 엽기적인 그녀이긴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별수 없지 않겠어,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아직까지도 전지현은 독보적으로 전지현뿐이다. 광고계에서도 전지현을 빼고 모델을 논할 수가 없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수많은 브랜드의 간판은 여전히 그녀의 것이다. 몇십억 모델료가 아깝지 않을 광고 효과를 만들어내는 존재감. 지금은 아이도 둘이나 낳았고, 부동산 부자라는 타이틀도 추가됐다. 몇백억짜리 건물을 현금으로 구매하는 부동산 큰손이기까지 한. 하루만이라도 전지현으로 살아볼 수 있기를- 대기번호 뽑은 사람이 많아서 나한테까지 순서가 올까 싶어 진다. 다시 태어난다면 두번 생각 할 필요도 없이 전지현이지.
구글 포토에 저장되는 사진들이 많이 쌓여서 한 장 한 장 들여다볼 수 없는 수준으로 많아졌다. 그냥 쭉 스크롤해서 내려가면서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시간을 점프해도 내 사진은 별로 없다. 구글 포토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결혼을 한 이후라서 내 예전 모습을 확인하고 싶으면 싸이월드까지 찾아가야 할 판이다. 그게 아니라면 실제로 출력된 사진들 속에서 만날 수 있다. 2010년에 유럽여행 후에 만들었던 여행책은 제법 공들여 제작했고 함께 여행한 친구들에게도 선물했다. 얼마전 친구로부터 책장 한편에 있는 그 책을 오랜만에 들춰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진 속 우리들이 너무 젊고 어려서 같이 보던 친구의 남편이 몹시 놀라워 했다는 반응과 함께. 맞다. 그때의 내 인생이 얼마나 자유롭고 젊고 반짝거렸는지가 떠올라 눈이 부셨다. 이건 눈물인가.
혹시, 만약에, 어쩌다가, 우연히,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로 태어나서 다시 한번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 시절 나는 나 자체도 그렇게 형편없는 재료는 아니었는데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한걸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 나를 조금 더 잘 가꾸고 단련해서 더 나은 인생을 만들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로 가정에서의 활동은 조금 소홀해도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고백한다. 예를 들면 바득바득 청소를 하지 않고, 일주일마다 먹을 밑반찬을 영양소 따져가면서 만들어놓지도 않는다. 화분들이 죽어나갔고, 구석구석 묵은 때가 발견된다. 살림 잘하는 사람들은 행주를 날마다 삶는다던데, 행주도 삶지 않고 애들 옷도 삶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몇 년간을 살면서, 회사에서는 크게 인정받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니까.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엄마인가 물으면 글쎄. 그렇다고 남편에게 괜찮은 와이프냐는 질문을 하면 남편이 대답을 보류할 테고. 부모님에게 좋은 딸이냐고 차마 검토해볼 용기가 안난다. 꼭 뭐든 다 잘 하는 인생만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후회가 남는건 사실이다. 여기까지가 타인의 기준으로 평가해본 내 인생이라면 본격적으로 나 스스로는 내 인생에 대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해볼 필요도 있다. 나 어때?
조금 피하고 싶은 질문인걸 보면, 이미 답은 나왔다.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내가 되어있다. 나도 모르게 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모르는척하면서 지나온 것뿐이다.
사람들에게 나 어떻냐는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직접 질문해본 적은 없다. 소개팅 좀 시켜달라는 말을 농담으로도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대체로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했다. 평가받는 것이 두려웠다. 솔직한 대답을 듣는 것도 싫고, 혹시라도 상대방이 당황하는 표정이라도 지을까 봐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은 없다. 그렇게 살았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내 주위를 자주 맴돌고 있는 아홉 살 아들에게 용기를 내어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어때?"
"음... 엄마 오늘 스타일 좋은데?"
지난겨울 새로 산 패딩을 입은 나를 보고 아들이 한 말이었다. 그게 뭐라고 기분이 좋아서
"엄마 괜찮아?"
"음 쫌 괜찮아"
그날 이후로 종종 아들에게 나의 상태를 점검받기 시작했다.
"엄마 머리 기니까 어때? 어울려?"
"음.. 엄마 머리 동그랗게(짧은 단발머리를 그렇게 표현한다) 했을 때보다 이게 나은 거 같아"
아들이 생긴 이후의 나는 그 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내가 원한 건지 원하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인생은 조금 많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라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캠페인은 유명하다. 맞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벤츠를 사야겠지. 그럼에도불구하고 단 한번이라고 생각했던 그 인생 안에 소수점으로 쪼개져있는 여러 번의 다른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눈치챈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의 인생이 있었고 아이를 낳은 후의 인생은 또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같은 사람의 인생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니까. 그렇다면 굳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한번은 죽었다가 환생이라는 신비로운 경험을 대신해서 출산을 했고, 아들 둘을 낳고서 다시 한번 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시 사는 인생이 꼭 전지현이냐 한소희냐 화려하게 고민하던 것에 비해서 결론은 몹시 단출하다. 그래도 나에게 할당된 이 두 번째 인생에 잘 적응해 봐야겠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 아이가 없던 날의 나를 떠올려본다. 생각보다 전생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