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모먼트
솔직히 좀 어이없었다. 기획의도인 즉슨 헤어진 연인들 모아놓고, 서로간에 크로스 해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그런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 [환승연애]라니 제목은 그럴싸 하지만 미친거 아니야?(정색) 헛웃음이 나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서로 모르는 남녀가 나와서 매칭하는 프로그램들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왜 거기까지 갔어야 했냐고 자극적인 제작의도에 대해서 반감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헤어진 연인이랑 연락을 해서, 우리 저기 나가볼까? 하는 과정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고 X랑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눈맞는 경험이 짜릿함과 죄책감 사이 그 어느지점을 자극할건데 어쩌자고 저러는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안보려고 했는데, 티빙을 켜고 1화를 보고나서 겉잡을수 없이 빠져들어버린 것이다. 이건 정말 미쳤다. 미쳤어!! 너무재미있어!! 그대로 정주행 해버린 나란 유부녀. 과몰입 그잡채로 시즌1을 거쳐 시즌 2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기가막히게 예쁘고 잘생긴 출연자들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관계성에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사람이다보니, 사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과는 다르게 감정과 관계에 동요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X에 대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사람, 새로운 만남에 설레는 기분, 하나하나에 다 몰입됐다. 묘하게 설득력있었다. 그냥 남자와 여자가 서로 끌리는 이야기도 재밌지만, X가 직관하는 가운데 새롭게 시작하는 연애라는 것은 잔인하기도 하면서 참신했다. 과몰입할수밖에 없었던 날들. 가끔은 티비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지금 저 여덟명의 남녀는 내일의 걱정 없이 매일 밤마다 거실에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그저 사랑이라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고민인 것이다. 하, 저기 같이 앉아서 술이나 마시고 싶다고 많이 생각했다.
이직해서 온 새로운 여자동료는 아들 쌍둥이가 있다고 했다. 우리팀은 항상 같이 점심을 먹었고 식사중 대화가 많았다. 조심스럽게 환승연애 너무 재미있다고 추천을 했는데 "헤어진 남녀 4쌍이 나와서 서로 사랑의작대기 하는거에요" 라고 설명하면 그런거 너무 잔인한거 아니냐는 대답이 가장 보편적이긴한데. "아 답답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보면 진짜 재밌다니까요, 제작진들이 진짜 영리한거 같애... 과몰입 장난아니에요" 이런 나의 확신에 찬 추천에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면서 "제가 보는건 요즘.... 돌싱글즈 아세요? 이혼남녀들이 나와서 연애하는건데 자녀유무 공개 정도 해야ㅎ 그래야 재밌더라구요 저는!!" 하면서 수줍게 자신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을 커밍아웃했다.
미쳤구나 미쳤어. 이혼한 사람들까지 TV에 나와서 서로 연인을 찾는다고? 오마이갓. 그런 이야기 진짜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상하다고까지도 생각했다. 굳이 왜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는지, 와 mbn 이거 선넘네, 생각하면서도 그 프로그램을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맹세코.
그날 오후 친한 후배랑 점심을 먹는데 그 후배가 혹시 돌싱글즈 보셨냐면서, 거기 윤남기씨가 이제 자기 이상형이라는 말을 했다. 에?
바빴던 프로젝트들이 끝나고 다른 팀원들은 재택을 하고, 혼자 사무실에서 덩그러니 남아있던 날. 여기저기 윤남기씨의 짤이 많이 돌아다녔고, 사진으로 캡쳐된 윤남기씨는 어느 포인트가 그렇게 화제성 있는 인물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도 많겠다, 그 화제성이 도대체 뭐길래 하면서 tvn을 켜고 돌싱글즈를 보기 시작했는데 2화에서 자녀유무 공개가 시작되고 함께 울고 있는 나를 발견, 스스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뭐지??????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고 쇼미더머니에 다시 출연했던 전 우승자가 노래했다. 결혼한 커플중에서 이혼을 논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으리라고 장담한다. 그 무게가 어느정도인지는 몰라도 다들 한번쯤은 거론해본다. 이혼. 하지만 결혼은 비교적 쉽고 또 이혼은 말만큼 쉽지않아... 이혼률이 그렇게 높다고 하지만, 막상 내 주위에 실제로 이혼한 사람은 생각만큼 많지는 않은 것이다. 이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한데, 이혼후의 연애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나보다. 공식 이혼 커플링 프로그램에 나온 멀쩡한 이혼남녀의 새로운 시작이 신선하고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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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까지 쓴게 환승연애 시즌1 마지막회를 보고나서였는데 현재 환승연애2까지 완결이 된 상태다. 이 모든 감정과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를 더 구구절절 이야기 하고싶은 마음이 크지만 이건 여기까지.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내 남편이다. 내 남편이 돌싱글즈를 챙겨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술자리 후에 늦은밤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켜고 그날 방송했던 돌싱글즈를 챙겨보는 모습은 내가 그동안 본 남편의 모습중에서 가장 놀라운 모습 중 하나였다. 그런 남편이 선택한 다음 프로그램은 나는솔로. 과몰입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그런걸 보는게 귀엽다고 생각한다.
"오빠, 오빠는 만약에 다시 20대로 돌아가서 나는 솔로에 출연 할 수 있으면 출연할거야?"
"당연하지"
"엥, 그럼 젊을때 왜 짝 같은 프로그램 있었는데 출연 안했냐"
"그땐 내가 너무 바빴거든"
수퍼E 성향을 가진 남편과 만약에 이혼을 하게 된다면 돌싱글즈에 출연한 남편을 만나게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