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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포선라이즈 Nov 11. 2022

잘 가, 미니멀리즘

매일 택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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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의 동경이 맥시멈을 찍었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인가. 설레지 않는 물건들은 모두 버리라고 하던 미니멀리즘 전도사 곤도 마리에 여사님의 말씀에 마음이 요동치던 그때. 그래, 버려야지. 우리 집도 도화지처럼 미니멀리즘의 기운이만이 가득 감도는 집으로 만들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도 택배가 온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미니멀리즘과 멀어져 가고 있다. 오늘은 내가 미니멀리즘과 어떻게 멀어졌는지, 이 핑계 저 핑계의 하모니를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나는 다양하게 맥시멀 한 남자 셋과 함께 살고 있다.


우선 첫 번째 동거인인 남편은 정말이지 맥시멀 하다. '싸고 별로인 물건'을 좋아한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가성비 좋고 합리적인 물건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물건의 사용성이 오래가는 경우를 못 봤다.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곳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득템 했다는 메이드 인 차이나 물건들은 금방 망가지거나 받은 날 이후에 쓸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번 쓰고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물건이 우리 집에 살기 시작한다. 남편은 비싸고 좋은 물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캠핑용품이라면서 남편이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물건은 쓰레기봉투를 걸어두는 철제 쓰레기통, 약 5000원 정도 하는, 그런 것들을 사는 것에 매우 만족감과 행복을 느껴한다.


몇 년 전 겨울밤, 지인들과의 술자리 도중에 갑자기 물놀이 제트기가 39000원이라면서 흥분하며 주문했다. 우선 물건에는 제값이라는 것이 있는데, 39000원. 튜브 가격으로 적당한 그 값에 전동 모터가 달려있고, 심지어 성인들이 탈 동력이 있는 유사 보트가 정상적인 물건 일리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굉장히 신난 상태였다. 게다가 무료배송까지. 한두 달이 지나서 그 물건이 배송이 왔던 날이었다. 배송기사가 전화가 와서 상세주소를 묻고, 물건을 우체통에 넣고 가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잠깐만, 우체통에 넣는다고? 통상적으로 아파트의 우체통 사이즈라고 하면 편지봉투나 서류봉투가 들어가는데 최적화되어있는 규격을 갖고 있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보트가 왔다는 것인가. 퇴근 후 소포를 뜯어봤을 때 그 안에는 털모자 하나가 들어있었다.


남편은 나보다 가방도 더 많다. 나름 여행 갈 때 면세점에서 큰맘 먹고 사줬던 가죽 백팩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면서 이런저런 작은 가방을 계속해서 사는 것이 놀랍다. 비싼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머지않아 또 다른 물건을 쉽게 산다. 이거 좋다, 보다는 이거 싸다, 로 시작되는 남편의 쇼핑 스타일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로 인해 집에 늘어나는 물건들은 조금은 피하고 싶지만, 우리는 함께 살고 있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이다.



올해 열한 살이 되는 두 번째 동거인, 나의 큰아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을 슬퍼한다. 서너 살 때부터 사기 시작해서 이제 많이 고장 난 변신로봇 장난감들을 한번 정리하려고 꺼내놓으면 이건 할머니가 맨 처음 사주셨던 추억이 있어서 안되고, 이건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거라서 안된다며 어느새 원위치시킨다. 자질구레한 물건들에도 일일이 추억이 있다고 하면서 버린다고 하면 슬픈 표정을 지어 곤란하게 만든다. 그 DNA를 나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아서 그 마음과 감성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에는 아이의 물건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 큰 아이는 미술에 큰 소질은 없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길 간절히 바랐으나 몇 년 동안 지켜본 결과, 미술에 탁월한 재능은 없다. 문제는 만들기 학원을 다니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 가서 두 시간씩 뚝딱거리고 오는 것까지는 너무 좋은데 일주일에 커다란 형태의 뭔지 알아볼 수 없는 작품을 집으로 갖고 오는 것은 정말 곤란했다. 어쩌다 한 개라면 멋지다고 전시를 해두고 두고두고 기념을 하겠지만, 매주 쌓여가는 작품들은 제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저걸 학원에 두면 좋을 텐데 왜 자꾸 집으로 보내실까, 생각해봤는데 가끔 가보면 몹시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학원에서 전시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만들기 학원 생활은 일 년 정도 이어졌다. 아들 셋을 서울대 보내셨다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안 하셨다고 하던데. 나는 두 아이를 서울대에 보내는 꿈을 꾸지 말아야 하나. 정리를 해야겠고, 정리를 시키고 싶다. 아이의 작품을 정리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어쩌자고 이런 물건들이 자꾸 생겨나는 거람. 다행이라고 말하면 좀 그렇지만, 일 년 후에 그 학원 원장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원이 문을 닫게 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아들의 작품이 멈추게 됐다. 물론 요즘도 아들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고 방은 언제나 맥시멀 하게 지저분하다.



나의 마지막 동거인은 둘째 아들. 둘째는 많이 늦둥이로 태어났다. 계획에 없던 아이가 6년 만에 우리 집에 등장했기 때문에, 다시 육아를 처음처럼 준비할 수는 없었다. 있는 것들로 대충, 꼭 필요한 것만 사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다정한 이웃들은 두 번째 육아를 미니멀하게 놔두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육아 구호물자가 도착했다. 아기침대부터 범보 의자, 바운서와 모빌. 아기 신발과 옷가지들. 물려받은 물건들로만 해도 세 살까지는 더 살 물건이 없을 만큼 충분했다. 아니, 넘쳤다. 이래 저래 물려받은 옷가지들이 옷장에 넘쳐나서 다락방에도 가득 차 있다. 신발들, 장난감들, 교구와 책들. 우리 동네 이웃사랑은 맥시멀리즘에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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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미니멀리즘은 함께 가기는 어려운 것 같다. 소소한 소비를 좋아하는 남편, 추억을 사랑하는 아들, 우리 동네 막내 아가를 반겨주는 이웃들의 사랑과 싸울 자신이 없어서 나는 미니멀리즘즘 전쟁에서 패배를 선언하기로 했다.


미니멀리즘은 어렵다.

잘 가, 미니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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