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책 한 권쯤 출간하고 싶다, 라는 소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다 보면 언젠가 책 한 권 내고 싶다, 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의식이 흘러간다. 나의 의식의 흐름도 다르지 않았다. 한때는 회사에서 둘러앉아 “너도 책내” “그거 책내”라는 말을 유행처럼 주고받았다. 그게 괜찮은 글이든 아니든 우리는 대부분 글로 밥을 벌어먹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서점에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간에 우리들 누군가의 책도 나란히 누워있으면 안 되란 법은 없는 거 아닌가 싶었다.
예전에는 책을 내고 작가가 된다는 게 장원급제 수준의 일로 느껴졌다(지금이라고 껌처럼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신춘문예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교보문고 같은 곳에 책이 진열될 수 있는 시대는 불과 10여 년 전 아니었나?
블로그라는 것의 등장으로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나 혼자 읽는 일기가 아니라 누군가가 읽어주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꼭 파워블로거가 아니더라도 어떤 블로그는 책으로 출간됐다. 등용문이랄까, 잘만 하면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엄청난 타이틀 없이도 유명하거나 안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다.
브런치에서는 나도 일종의 작가라는 호칭을 갖게 됐다. 작가가 되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쉬워지는 건가. 허허.
작가의 꿈. 사실은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해"라는 글을 읽었던 스무 살, 뭔가 가슴이 몽글몽글 했다. 그동안 멋진 책이라고 하면 어려운 말을 사용하거나 심각한 문체, 혹은 엄청난 문장력을 구사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그의 에세이는 심오하거나 깊이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문체가 간단하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읽고 싶어 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주위를 둘러싼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는구나. 물론 소설가였지만, 나는 그의 수필에 더 매료됐다. 그런 쉬운 글은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했다.
글을 써보면 안다. 쉽지만 재미있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심오한 사상이 내포된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쓰면 쓸수록 깨닫는다.
서점에 이렇게 책이 많은데 당연히 일 년 내내 한 번도 읽히지 않는 책도 있겠지. 책을 출간하고 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면에는 이런 글을 누가 끝까지 읽어줄 건지에 대한 의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어쩌다 한 번을 읽을 수도 있지만 책으로 낼 정도는 아닌데 싶은 거다.
작가는 되고 싶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는 것은 쑥스러워. 자신감이나 뻔뻔함이 부족하다. 결정적으로는 내가 쓴 글을 내 주위의 아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읽게 되는 상상을 해보면 그게 여간 쑥스러운 것이 아니다.
만약에 아이의 학교에 상담을 하러 갔다가, 그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을 아시고서
"어머니, 이번에 내셨다는 책 잘 읽어봤습니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작가를 할 거라면, 필명을 갖고서 베일에 쌓여서 활동해야 할까. 이런 진지한 고민을 떠나서 글을 어떻게 더 잘 쓸지에 대한 연마가 더 중요한건 쯤은 알고있고 결국엔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소규모 독립출판사를 통해서 이러저러한 노력을 하면 꼭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출간은 가능하던데.
꿈을 이루거나, 꿈을 깨거나
언젠가 결론이 나겠지.
그래도 글을 쓴다. 책으로 낼 정도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