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il Aug 23. 2020

첫 운전

올챙이의 마음

 어제 처음으로 집 근처에서 운전을 했다. 장롱면허를 탈피하기 위해서 저번 주 아침 매일 2시간씩 운전 연수를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보험을 신청해서, 조심스럽게 엄마의 차를 운전해보았다!


 오랫동안 묵혀두기만 했던 운전면허를 진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 별다른 계기는 없고. 그냥 가끔 나도 부모님을 역으로 데리러 가고, 혼자 근처 큰 카페도 가보고, 나중에는 여행 가게 될 때, 혼자만 운전하는 친구의 수고로움을 살짝 덜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운전은 꽤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엄청난 멀티태스킹 실력과 집중력을 요구했다. 옆에 거울, 뒤에 거울도 보고, 길도 찾아야 하지, 속도도 지켜야 하고, 신경 쓸 것 투성이었다. 전화하면서 운전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들이 할 땐 쉬워 보이고 당연해 보였던 것들을 내가 직접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결국, 내가 경험의 주체가 되기 이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평가하는 것이 무의미하고 건방진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하는 만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익숙했던 길에서 새로운 도로의 표지들을 발견했고, 운전하는 사람의 노고에 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수많은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운전을 잘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만 여겨온 것은 아닐까,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세상엔 당연하고 쉬운 일은 없으니, 언제나 그렇듯 겸허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과장해서 거창하게 말하자면, '도로'도 협력을 필요로 하는 작은 사회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차량, 자전거, 오토바이, 보행자들이 서로에게 잘 협조했을 때, 안정적인 도로의 질서가 성립될 수 있었다. 가끔 보행자로서, '보행자가 제일 중요하지!'라는 막가파적인 마인드로 돌아다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운전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들이었다. 물론,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가장 우선이지만, 왕도 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우월한 지위와 규칙 준수는 엄연히 별개의 이야기니까.


 운전의 어려움을 내가 직접 겪은 지금에서야, 뒤늦게 규칙 준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언제쯤이면, 다른 상황에 놓인 타자를 비슷한 경험 없이도 진심으로 공감하게 될 수 있을까?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나는 아마 당분간 많은 자동차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니, 나도 절대로 올챙이 적의 지금을 잊지 말고, 도로 사회에 기여해야지. 운전자로서도, 보행자로서도, 열심히 규칙을 지키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엄마는 나한테 초보 치고, 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
 아니라고 빽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 것 같다.
 운전하랬더니, 무슨 생각을 이렇게 많이 했지?

작가의 이전글 Irish breakfas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