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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Aug 25. 2020

싱스트릿과 원스의 촬영지, 달키로

2019.12.02 아일랜드 마지막 날

 어김없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시간 빠르다. 더블린 주변에는 유명한 근교 여행지가 여러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달키다. 싱 스트릿, 원스 등 영화를 보며 아일랜드에 대한 로망을 키워 온 나로서는 주저할 것 없이 달키가 마지막 날 여행지가 되었다. (달키가 이 영화들의 촬영지다.)


 마지막 날의 여행인 만큼, 혼자 완벽하게 시간을 즐길 수 있게 꼼꼼히 준비했다. 혼자 읽을 책도 챙겼고, 틈틈이 글을 쓸 블루투스 키보드도 챙겼고, 블루투스 스피커도 챙겼다. 준비 완료!
 

달키에 가기 위해서는 Dart라는 열차를 타야 했다. 스웨덴에 있을 때, 통근열차를 타는 느낌이었다. 덜컹거림과 빛바랜 연두색이 말끔한 스웨덴의 열차와는 다르기는 했지만, 내 여행도 흐트러짐 없는 비즈니스 여행이 아니라 큰 계획 없는 청춘의 여행이니까! 오랜만에 방문한 유럽과 혼자 떠나온 여행에 설레는 내 마음처럼 풋풋하고 귀여운 열차였다. 그리고 이 연두색마저도, 싱 스트릿에 나온 그대로였다. 악기와 뮤비 촬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무작정 들고 떠나는 영화 속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가가 그 분위기를 따로 연출한 것 같기보다는, 이 열차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뭔가 낭만적이고. 굳이 비교대상을 따지자면, 춘천으로 가는 ITX 열차와 비슷했다.

 나는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언어의 온도와 함께, 아일랜드 여행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책이었다. 혼자 훌쩍 떠나온 여행인 만큼,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다. 예전부터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었는데, 아일랜드에 와서 겨우 다 읽었다. 처음에는 읽기가 좀 어려웠다. 그런데 여행 막바지에 이른 나처럼, 책도 끝무렵에 이르니 모든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결말에 이르까지의 모든 대사들이 하나 하나씩 다가왔다.

 

아직도 책을 잔뜩 들고 열차에 탑승했던 앞자리 여자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앉자마자, 봉투 안에서 책 한 권을 골라 읽기 시작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매일의 일상인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여자분이었다. 아직도 나는 의식적으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으려나. 서점에서 방금 산 책들을 품 안에 꼭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빵들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큼, 즐거운 일이 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책과 주변 사람,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달키에 도착했다.




(게으름 때문에 미뤄두었던 여행 기록을 더 늦게 전에 복원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니까, 과거의 여행들을 되새기면서 역마살을 잠재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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