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열아홉 살이 되자마자 다니던 음악학원으로 달려가 선언했다. “저 이제 음악 전공 안 할래요.” 원장 선생님에 이어 보컬 선생님께 그 말을 내뱉던 순간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나의 보컬 선생님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호랑이’였다. “하기 싫어? 하지 마. 너 말고도 할 사람 줄 섰어.”가 전매특허였고, 남학생들에겐 거친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수업 중에 울며 뛰쳐나간 여학생이 수두룩했고,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 호랑이가 나의 포기 선언 앞에서 뜻밖의 아쉬움을 표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결심이 선 것 같아 더는 안 붙잡겠는데, 참 아쉽네.” 호랑이답지 않은 담백한 고백이었다. 서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정말로 내가 노래에 재능이 있긴 했나’ 하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 길로 전공을 ‘음향’으로 바꿨다. 그때부턴 서점에서 ‘음향’ 관련 서적이란 서적은 모조리 찾아 읽는 쓸데없는 열정을 보였다. 대학에 가면 어차피 처음부터 배울 것들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높은 시작점에서 출발하고 싶었다. 그 객기로 따낸 ‘음향전문사’ 자격증은 서른 살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써먹지 못한 채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진짜 문제는 엄마였다. 딸이 평범하게 공부하기를 원했던 엄마는 나에게 한 가지 협상을 제안했다. 네가 원하는 음향 공부를 허락해 주는 대신, 엄마가 원하는 교과 공부도 병행할 것. 당시의 나는 그 제안이 제법 합리적이라 판단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었다. 나에게도 일명 ‘코디’가 붙었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교과별로 과외 선생님을 배치하고 수시 원서를 넣을 대학 리스트를 뽑아오는 전문가. 나는 그 코디의 지시에 순응하는 척 과외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엄마와의 거래를 성실히 이행하는 연기를 펼쳤다.
드디어 운명의 원서 접수 시즌. 나는 엄마 몰래 오직 내가 원하는 음향 전공 대학들에만 원서를 접수했다.
이 일은 여전히 우리 집에서 전설적인 해프닝으로 회자되곤 한다. “그때 동국대를 갔더라면”, “그때 그 과를 갔더라면” 같은 무의미한 가정들과 함께.
확실한 건 <스카이캐슬>은 철저히 사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 엄마의 비위를 맞추다, 결정적인 순간에 멋지게 유턴해 음향 전공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이 되었고, 치열했던 16학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