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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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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 Apr 04. 2017

연인과의 소통 문제

내 애인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1.

어젯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애인 생일 선물을 줘야 하는데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괴롭다는 이야기였다.

난 "물어보면 되잖아"라고 말했는데 "뭐 말을 하는데 들어도 모르겠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알 때까지 물어봐, 아니면 고르라 그래"라고 하자 그건 또 싫다고 했다.


2.


이상했다.

정말 '몰라서' 가 문제라면 상대가 답을 정하게 하면 되지 않는가.


그래서 혹시나 '서프라이즈'가 아닌 걸 니 애인이 싫어하냐? 했더니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자기가 고르겠다 했다고.


더 이상했다.

애인이 고른다고까지 했으면 왜 모르는 게 고민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나: 그럼 넌 지금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지 않아?

친구: 그런가. 그런데 진짜 모르겠어


나: (갑갑) 걔 신발 좋아하잖아. 고작 걔 sns 대충 훔쳐본 나도 알겠는데

친구: 어 신발 완전 좋아하지

나: 그런데 뭘 몰라? 신발 좋아하고 좋아하는 브랜드 확실하고, 그냥 고르래도 고르겠는데?

친구: 아니 난 향수 뿌렸으면 좋겠고..

나: 그럼 향수 무슨 향 좋아하는지 물어봐

친구: 향수는 뿌리기 싫대.

나: 다른 거 줘야겠네

친구: 아 모르겠다..

나: 왜 몰라????? 뭐 좋아하고 뭐 싫어하는지 아는데?



3.


그렇다


사실 내 친구의 문제는 '진짜 몰라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자기가 주고 싶은 선물'을 '자기가 주고 싶은 방식'으로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자기 애인이 싫어할 게 뻔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 또한 스스로에게 그런 고집이 있다는 건 모르고(또는 인정하기 싫고) 머리는 아프니
그걸 자꾸 '모르겠다'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


우리 엄마 아빠도 비슷한 패턴으로 30년째 다투신다 쿄쿄 (문제는 엄마가 준 선물을 아빠가 맘에 안 든 적은 한 번도 없음ㅋㅋㅋ)



4.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나:  니가 생각할 때 선물이라는 건 뭐냐?

친구: 사랑하는 사람한테 좋은 거 주는 거지

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좋은 거 준다는 건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뭐 독약이나 자살 같은 게 아닌 이상 원하는 거 주면 되는 거잖아

친구: 아니 내가 주고 싶은 것도 있고...

나: (또 갑갑) 니가 주고 싶은 걸 줄 수도 있고 그게 좋은 것일수도 있는데, 그게 상대가 싫어할 게 뻔하면 굳이 안주는 게 맞지 않아? 우선순위가 니 마음이 아니잖아 여기에선. 그러면 선물이 아니지. 너무 간단하지 않아?

친구: 그렇지.. 그런데 그럼 매번 "사줄게 골라!"라고 해? 성의 없잖아

나: 성의 없다는 건 니 생각이고...... 지금 선물 받는 사람은 걔잖아. 너 기준에서는 그게 성의 없음인데 걘 그게 성의라고 생각하잖아.


친구: 그러네


나: 정 로맨틱하고 니가 생각하는 성의라는 걸 발휘하고 싶으면 '사줄게 골라'를 어떤 말투와 방법으로 할지를 고민해야지. 넌 지금 '사줄게 골라'를 '아 존나 귀찮은데 아무거나 골라 사줄게'로만 생각하잖아.


친구: 어 맞아 그런 것 같아


나: 넌 '잘해줘도 지랄이야' 생각 들어서 억울하고?


친구: 어 ㅋㅋㅋㅋㅋ


나; 아주 짧고 멍청한 생각이야. '사줄게 골라'는 너같이 니 고집만 있어서 상대에게 선물 줄 때마다 실패하는 애들이 그나마 실패 안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고 정말 예쁜 마음으로 거기에 성의를 보이고 싶다면 '사줄게 골라'를 하되 그걸 '예쁘게' 하면 되는 거야. 생각나는 거 없어?


친구: 뭐 좋아하는 곳 같이 가서 골라보렴 하면 좋아하겠지. 근데 난 그게 너무 안로맨틱한 거 같아


나: 너 심하게 이기적인 거 알아? 로맨틱과 덜 로맨틱의 기준을 누가 정한 거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촛불잔치를 좋아해도 니 애인이 그걸 싫어하면 그건 니 애인한테 해줄 땐 안로맨틱 한 거 아냐? 니가 말하는 로맨틱함은 그냥 테레비에 나오는 '로맨틱할 땐 이렇게 하세요' 이런 거잖아. 정 그게 로맨틱하고 그게 연애 같으면 그걸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친구: 그런 결론을 말하는 게 아니잖아


나: 아니 그러면 좀 생각을 하라고. 반대로 너한테 걔가 선물 줄 땐 니 기준과 성의에 맞추잖아. 그래서 넌 늘 좋았잖아 마음에 들고


친구: 그랫지


나: 너 막 성의 차린다고 막 촛불 켜고 포장하고 서프라이즈! 했는데 완전 맘에 안 드는 선물이라 애 표정 썩고 너는 그 표정 보고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하고 삐지고.. 막 그러고?

친구: 어 ㅋㅋㅋㅋ 맞아 옛날에 그랬었어

나: 그거 문제야. 서로 쉬울 수 있는데 왜 넌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고생을, 심지어 원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인정 안 하고 니 기준대로 성의라고 믿는 행동만 하고, 그걸 알아주지 않는다고 삐지고. 미안하지만 그건 선물도 성의도 아니고 그냥 고집이야. 니가 고생했다 해서 고집이 성의로 바뀌진 않아. 어서 고집을 꺾으렴

친구: 난 늘 고민하는데...

나: 넌 니가 고생하고 고민 오래 하니 열라 좋은 애인 같지? 별로. 슬프게도 진짜 좋은 건 그게 아니다 너 그러다 채인다.


친구: 연애 어려워


나: 존나 쉬워. 니가 문제


친구: 어려운데


나: 니가 진심으로 맞추려고 해봤는데 정 걔 취향이 싫고 그대로 하기 싫은 거라면 그 문제는 진짜 그냥 헤어져야 되는 거라니까. 왜 억지로 퍼즐을 맞춰


친구: 취향 다르다고 헤어져?


나: 아니 다르다고 헤어지진 않는데 다른 것이 계속 거슬리면 엄청난 스트레스야 왜 사서 고생해 각자 잘 맞는 사람 만나야지


친구: 그럼 어케


나: 뭘 어케 선물을 줄 거면 걔가 원하는 거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라고


친구: 또 난 매번 받기만 해서 더 고민이야

나: 그게 뭐가 그리 고민여? 니도 줘

친구: 모르겠어서 워낙 까다로우니

나: ㅋㅋㅋ 시발 똑같은 얘기 또 나오네.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니 기준의 성의대로만 고집부리니까 넌 매번 찐빠 나는 거고. 아는 걸 부정하는 것 플러스, 니 기준이 너무 쎄서 상대방이 원하는 게 안보이고 안 들리는 거야. 너 그거 일종의 이기심이고 권위주의고 고집이야


친구: 나 고집 안쎄


나: 지금 니가 하는 짓이 고집이거든 고집이 별거니?? 모르겠다는 니 선하신 마음은 결과적으로 널 소통 안 되고 상대 마음은 안 보고 맨날 받기만 하고 암것도 안주는 사람으로 그냥 만드는 거라고. 망해라. 미움받아 싸다

친구: ㅎ ㅠ우우......알겠어 나 근데 기억이 안 나 종이에 써줘

(그렇게 이 글은 친구에게 종이에 써주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읽기 좋게 적당히 문맥을 수정했으며 왜곡이 없는지 친구에게 먼저 글을 보내고 검토받고 공유할 것에 대해 동의를 받은 뒤 브런치에 올린다)  



5.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건

결코 창피한 것도 '지는 것'도 아니다.

모르는데 우기거나,

모른다고 주눅 들어 가만히만 있는 게 안습인 것.


진짜 '몰라서'가 문제라면 적극적으로 묻고 그 답을 마음 열고 받아들이면 된다. 쉽다.

하지만 그전에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 있다.

당신이 문제 삼던 것이 진짜 '몰라서'의 문제인지


사실은 내 친구처럼 다른 어떤 불쾌한 마음인데
그걸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 '모른다'는 단어 아래 뭉뚱그려 버린 것은 아닌지




대화의 꼬임은
생각보다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서로의 마음을 인지하려 노력하고, 그걸 최대한 오해 없이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건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닌 성의와 겸손의 문제이다.


혹시 매번 상대가 말해도 상대가 원하는 바를 모른다면

그건 상대의 까다로움 문제나 당신의 두뇌 문제이기보다는

당신이 사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수용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끝까지 수용하고 싶지 않은 게 크고 매번 부딪친다면 이별을 고려해볼 만하다. 꽤나 큰 문제이다.


자기 마음이 진짜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매번 한번 꼬아서 솔직하지 않은 언어로 말하고

자기 기준에서 옳다고 느끼는 행동만 반복한 채

그런 자기 본심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았다고 섭섭해만 한다면
당신은 늘 외롭고 억울하고
상대는 늘 갑갑하고 스트레스받을 것이다.


무엇이 '성의'이고
무엇이 '사랑'인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볼 때이다.



자신의 소재를 적극 사용하게 내어준
친구 B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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