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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Sep 05. 2021

비전과 꿈의 차이

'질투'와 '질투' 사이


# 비전과 꿈의 차이      


"여러분, 비전과 꿈의 차이를 아시는 분?"

     

지난해 처음 이화여대 강단에 섰을 때 미래의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한 학생이 수줍게 손을 들어 얘기합니다.     


"비전은 목표가 있는 것이고 꿈은 희망하고 바라는 것 아닌가요?"

    

또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더니 다들 머뭇머뭇거렸습니다.          


"여러분, 일반 기업 홈페이지 한번 들어가 보면 각 회사마다 비전이 나오죠.

그 비전을 보면 이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가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특징이 있어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행 계획(플랜)이 매우 구체적으로 쓰여있다는 겁니다.


비전은 내가 뜻 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 까지 나와있는 게 비전입니다. 비전은 아주 구체적이어서 목표를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꿈은 어떤가요. 꿈은 비전과 같이 이루고 싶은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요. 막연히 본인이 되고 싶은 그 무엇, 그게 전문직이 될 수도 있고, 전문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나와 같은 꿈을 꾸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많거든요. 마음에 비전을 품은 사람이 더 빨리 뜻을 이룰까요? 꿈을 품은 사람이 더 빨리 이룰까요."

     

미래의 기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참 설렙니다.

그들에겐 꿈이 있고, 비전이 있어서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친구들이니까요.     




이화여대 저널리즘스쿨은 SBS 윤세영 재단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합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정말 선택받은 학생들이죠. 소수정예로 일종의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만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보석으로 치면 원석과도 같습니다. 다양한 끼와 재능, 아이디어들이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죠.      


학생들은 저를 '선생님' '교수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지만, 사실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저 스스로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배우게 됩니다.     


지난해 우리 반 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현직 기자로 합격해 현장에서 뛰고 있습니다. 올해도 강의를 맡아

주말마다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작년엔 코로나 상황이 올해만큼 심각하지 않아서 강의실에서 전체 수업도 하고, 코로나 상황이 엄중할 땐 조를 짜서 일부 학생은 대면 수업, 일부는 화상수업을 병행했습니다.  

    

올해는 제가 팀 내에서 챙겨야 할 일들이 많은 상황이어서, 캠퍼스에서 대면 수업이 어렵고, 휴일 아침 이른 시간에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제 수업을 선택해 들어온 학생들이 있습니다.     


매주 사회적으로 핫한 이슈를 주제로 선정해 글을 쓰고, 글에 대해 첨삭하면서 다양한 자료 등을 활용해 글을 보완하는데, 2년째 강의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보이는 게 있더라고요.     


어떤 학생은 어느 언론사든 금방 합격하겠구나 싶고, 어떤 학생은 시간은 조금 더 걸리더라도 기자가 되면

정말 잘하겠구나 싶은 학생도 있고 다양합니다.      


아무리 화상수업이지만 5분 이상 늦게 접속하면 결석 처리하겠다고 공지했고, 평일 과제 등을 마감시간 이후에 제출하면 안 낸 것으로 알겠다고 했는데, 학생들이 처음엔 긴장을 안 하더라고요.

    

"여러분, 오늘 이 수업 시간이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가고 싶은 언론사 최종 면접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5분 지각할 수 있어요? 아마 30분, 한 시간 전부터 회사 근처 커피숍에 도착해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지 않을까요? 화상수업의 장점이 뭔 줄 알아요? 여러분들의 눈빛, 표정, 태도가 그대로 선명하게 다 드러나요. 강단에서 여러분들을 만나면 표정 변화까지 읽긴 어렵지만, 화상 수업이 오히려 더 잘 드러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시 정위치가 중요합니다."

     

그랬더니, 수업 시간이 거듭될수록 학생들은 자세를 고쳐 앉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작년에 우리 반 학생 중 방송국과 신문사에 합격한 학생들이 여럿 있는데요. 방송국에 합격한 학생들이 소식을 전하며 전화를 줬을 때 전화기 너머에 떨리는 목소리에 저도 울컥했습니다. 자기들이 공부하면서 제 기사를 모니터 하고,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들보다 더 바쁘게 사는 게 눈에 보이는데, 잠자는 시간 쪼개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준 데 자극을 받고, 힘을 냈다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울먹이던 목소리... 마치 2006년의 어느 날 내가 기자로 최종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울면서 고마운 분들께 감사 인사를 하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해 총 20회 강의를 하면서 10회 수업까지 우수한 점수 학생 세 명을 발표해 '선생님과의 식사 시간'에 초대를 했고, 마지막 강의 후 두 명을 발표해 '평생 멘토'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하며 책 등을 선물했는데 이 학생들이 대부분 기자가 됐습니다.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을 선정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명 한 명 합격 소식을 전해올 때마다 가슴 벅찬 무언가를 느낍니다.     


"사건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세요. 사건만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사람을 보면 보입니다."

     

"기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기자가 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포기하지 많으면 언젠가는 기자가 되겠지만,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사실 학생들과 논술 수업시간에 글을 쓰고 첨삭을 하며, 수업 시간에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늘 나 스스로 고민하며, 다짐하는 한 마디이기도 합니다. 만 15년, 햇수로 16년째 기자생활을 하고 있지만 기자는 전문직이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단편적인 사건만 보고, 상황만 보면 놓치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국회에 상정된 ***개정안과 관련된 주제로 글을 쓰는데, 학생들이 어디서 본 듯한 글, 비슷한 형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여러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들어가서 법률 개정안 다운 받아 읽고 분석해본 사람 있나요? 여러분들 기자 하고 싶다면서요. 그럼 신문 보도가 아닌 내 눈으로 그 법안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 것인지 직접 보고 분석하고, 그걸 토대로 보도 내용의 팩트를 체크해야죠. 나중에 보도자료만 보고 기사 쓸 겁니까."

     

학생들에게 국회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은 법률 개정안을 나눠주면서, 몇 페이지 몇 쪽에 이 부분은 어떻게 보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수업, 학생들이 퇴고해 온 글을 보니 어디서 본 듯한 글이 아닌 자기만의 생각을 담은 글이 되어있더라고요.

      

사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나 스스로도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누군가에게 스승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제가 기자로 일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 어려움, 고민들을 미래의 후배들인 이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면서 성장해나가는 시간이 정말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이제 저는 현장에서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지만,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적어도 앞으로 15년은 현장을 뛸 후배들이기에 학생 한 명 한 명이 참 소중합니다.     


"여러분, 언젠가 여러분들이 기자 아무개로 기사 쓰는 그날이 오겠지만, 저는 여러분들이 정식 바이라인을 달고 글을 쓰기 전에 여러분들의 글을 본 '독자 1호'입니다. 독자 1호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며칠 전, 서초동 기자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연락이 왔습니다.

모 언론사 기자로 당당하게 합격해, 신문 1면에 우리 반 학생 이름이 있더라고요.     

저보고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제 수업을 통해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됐다면서, 필기시험을 보고 실무 면접, 임원 면접에 가서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개 씨가 기자가 될 거란 사실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을 보면 보이는 게 있거든. 앞으로 아무개의 글을 지면을 통해 보게 되어 너무 기쁘고, 기자 생활하다 보면 더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생길 텐데 고민 있을 때 언제든 편하게 연락 줘요. 막상 일을 하다 보면 현실은 아무개 씨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는데, 그래도 지금 그 마음으로 잘 해내리라 믿어요."

     

사실 제가 처음 기자가 돼 경찰서 기자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던 시절과, 지금 수습기자로 입사하는 친구들의 취재 환경은 분명 다릅니다. 흔히 '하리꼬미'라고 하는 밤새 경찰서 기자실을 돌고 취재하는 문화도 사라졌고,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208시간 이상 초과 근무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각 수사기관들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서 수사 속보 상황을 취재하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분명 기자가 할 수 있는 역할? 일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도자료만 보고 쓴 기사와, 발품 팔아 현장에 한 번 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기사를 쓰는 게 다르듯이, 어떤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남 다른 무언가를 발굴해 낼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질투'와 '질투' 사이


저는 사람을 오래 만나는 편입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일이 터졌을 때, 취재원에게 전화 한 통으로 물어보고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이유는 한 번 더 발품 팔아 현장을 갔고, 한번 더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는 남들이 참 싫어하는 직업이죠. 무언가 감추고 싶은 것을 들춰내고, 남 잘 되는 일 보단, 사건 사고 같이 안 좋은 일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걸 자기 업무 성과로 연결 짓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 보니 기자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점 중에 하나는 남 잘되는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을 영어로 'Jealousy'와 'Envy'로 쓰는데 두 단어는 같은 질투라고 해도 큰 차이가 있지요. 전자는 남을 부러워하면서도 시기하는 마음이 들어가 있고, 후자는 남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사람을 선망합니다. 같은 부러움도 전자를 택하면 나 스스로 불행하게 생각되고,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게 될 가능성이 더 높고, 후자를 택하면 그 사람과 닮은 나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 좋습니다. 나도 그들과 닮고 싶은 Envy 하는 마음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되거든요. 진심으로  그 사람들을 축복하고, 축하하면서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구체적으로 난 어떻게 노력하면 되는지 고민하면서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 나의 내일을 위해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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