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4명, 저녁은 2명까지 가능하다 보니 시간을 다투는 만남이 아니면 약속을 연기하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다음 달이면 기자로 일 한지 만 15년이 됩니다.
긴 시간, 한 분야에서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동력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든 어디든 업무로 만난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습니다.
15년 전과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어난 체중.
늘어난 흰머리.
얼굴에 잔주름.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 스스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내 나이 서른엔, 휴대전화 연락망에 저장된 연락처가 2천 명 가까이 늘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받은 명함들을 모두 저장하다 보니 번호가 쌓이고 쌓였는데 막상 자주 통화하는 사람은 몇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연말에 과감히 5백여 명의 번호를 지웠습니다. 이름을 봐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 최근 2년 이상 통화를 한 번도 안 한 사람. 나름 기준을 정해 번호를 정리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리더라고요.
내 나이 마흔엔, 휴대전화 연락처에 번호가 몇 개 저장됐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번호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마음속 인간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40년 넘게 살면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다이어트를 고민했습니다.
늘 일정 몸무게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인데, 유독 술자리가 많은 출입처(법조)만 오면 체중이 5kg~10kg씩 불어났고, 이 출입처를 떠나면 다시 운동이든 식이요법이든 뭐든 해서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흔을 넘고 보니 체중 조절보다 내게 필요한 건 마음 다이어트, 인맥 다이어트였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만큼, 내면의 세계도 중요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보단 겉'에 집중하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늘 '뭘 먹을까? 뭘 입을까?..' 정작 겉보다 더 중요한 속,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는 소홀히 했습니다.
#무심코 던진 돌
"어떻게 내 앞에선 웃으면서 나를 위하는 척하고 뒤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호의가 반복되면 호구가 된다더니..."
많은 만남 속,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로 인해 상처 받은 경험, 누구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하면서 많은 관계 속에 상대방이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속앓이를 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참 신기하게도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는 꼭 내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정말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그 돌을 던진 사람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그 한 마디 때문에 마음 졸였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아이가 성장통을 겪는 것처럼, 어른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니 조금씩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애. 쓰. 지. 말. 자'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고, 앞으로도 충분히 잘 해낼 것이며, 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이 마흔한 살에 처음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다른 사람의 한마디,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에 내가 좌지우지될 필요 전혀 없다.'
'그저 묵묵하게, 나는 내 길을 가면 된다'라고요.
방송국은 참 말이 많습니다.
특히 칭찬엔 정말 인색합니다.
누가 방송 사고를 냈거나, 문제를 일으켰으면 관련 없는 부서까지 금세 소문이 퍼지곤 합니다.
제가 방송국에 처음 입사했을 때 놀랐던 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남 일에 관심이 많지?'였습니다.
나랑 차 한잔 마셔본 적 없는 사람이, 내 뒤에서 마치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내 얘길 하고 있고, 또 그 얘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귀에 들어오는 일들이 반복됐습니다.
"걔는 방송 오디오(목소리)가 왜 그래? 북한 조선중앙통신에서 왔어?"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가 방송기자 경력 공채로 입사했을 때 회사 모 선배가 한 말을 누군가 제게 전해줬습니다. 아마 방송 리포트 경험이 없는 데다 중저음 목소리에 강약 조절도 없이 끊어 읽기도 안되다 보니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 얘기니까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 당시 그 얘길 들었을 때는 정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취재는 잘한다며, 기사는 왜 그래? 단신이 왜 이렇게 길어, 읽다가 숨넘어가겠다."
신문기사와 방송 기사는 기사 작성법도 다르고, 구성도 다릅니다.
당시 저는 현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이직을 하게 된 케이스라 방송 기사에 대한 모니터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누구 하나 옆에서 끼고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늘 지적을 받는 게 일상이었죠.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뚝 떨어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자존감도 낮아지게 됐습니다.
돌아보니 10년 전, 내가 상처 받고 고민했던 말들은 업무적 스킬? 프로세스를 배우고 익히고, 경험을 쌓으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였습니다.
# 너나 잘하세요
매사에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기만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틈만 나면 회사 욕을 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남 험담에 열정을 쏟아내는 사람들.
저는 요즘 그런 사람들을 멀리합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란 게 참 무섭게도, 생각에 영향을 끼칩니다.
생각이 쌓여서 행동으로 옮겨지고, 행동이 쌓여서 습관이 되면 그게 결국 그 사람의 삶, 인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