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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ug 06. 2021

“연속타 맞을 땐 마운드가 무덤 같아”

힘내요, 대표팀


"연속타 맞을 땐 마운드가 무덤 같아"

          

2007년 4월 어느 날.

잠실구장에서 프로야구 LG 마무리 투수 우규민 씨(당시 22살)를 만났습니다.     


그땐 신문기자 시절이었는데, 신문사에서 야구 담당 기자들은 하루 평균 3~4번 마감을 합니다.     

멀리 여수나 광주까지 가야 하는 신문 초판을 발행하려면 첫 마감은 오후 5시 이전이고

그보다 가까운 지역까지 가는 것은 저녁 7시~8시쯤

한 번 더 마감을 하고 수도권 지역으로 가는 신문은 밤 10시, 아주 부득이한 경우엔 밤 11시 이후 한 번 더 마감을 합니다.


일명 '판갈이'라고 해서, 윤전기를 세우진 않더라도, 자정 직전 상황이 새벽 3시에 배달되는 신문 지면에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보통 야구 경기는 저녁에 시작되는데, 초판에 빈 지면으로 신문을 발행할 수 없으니 박스성, 가십성 기사를 쓰고 미리 지면을 확보해놓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면 결과를 지면에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초판에 프로야구 신인 선수 인터뷰를 많이 했습니다. 양준혁 선수같이 베테랑이 아닌, 이제 막 팬 층이 형성된 루키 선수들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다리를 쭉쭉 뻗어 수비하는 '고젯트(고영민+가제트)' 고영민(두산), 빠른 발로 베이스를 훔치는 '도루왕' 이종욱(두산) 등...


우규민 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LG는 13경기 8승 5패로 공동 2위를 하고 있었고, 우규민은 개막전 이후 6세이브로 삼성 오승환과 함께 세이브 부문 공동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도쿄올림픽 야구 미국과의 경기를 보면서 후반부에 우리 팀 투수들이 대거 교체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조마조마하며 경기를 계속 지켜보는데, 마운드를 내려오는 투수들의 표정에서 옛날 우규민 선수가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연속 안타를 맞을 때면 마운드가 무덤으로 보여요.

그땐 정말 무덤을 파서 공을 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우규민 인터뷰 중에서-

     

2003년 LG에 입단했던 우규민은 프로 데뷔 때부터 마무리 투수가 꿈이었습니다.

한창 불붙은 경기에 소방관처럼 나서 깔끔하게 불을 끄고 승리에 환호하는 마지막 투수가 멋져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어제 미국과의 경기에서 후반부 마운드에 올랐던 5명의 투수들은 하나같이 소방관처럼 깔끔하게 불을 끄고 경기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겁니다.

           

"시즌 초부터 마무리로 나선 건 처음이라 무척 떨렸어요. 그래서 급할 땐 혼자 중얼거렸어요.

'내가 저 타자 못 잡으면 여기서 땅(마운드) 파고 들어간다'라고요."  -우규민 인터뷰 중에서-          




전 국민이, 아니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심정은 어떨까요. 프로야구 선수들은 요일별, 날씨별(비 오는 날 등), 상태 타자 혹은 투수의 타율이나 방어율 등을 분석하고, 상대 선수에 대한 분석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한 대표팀 선수들은 미국과의 경기 전, 낯익은 선수들이 적다 보니 상대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전에서 처음 마주한 다른 나라 선수와 어떻게든 한 판 승부를 펼쳐보고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표정에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마운드에 올랐지만 낯선 환경에 스트라이크존 해석도 이해하기 어렵고, 여러 가지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대표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비록 경기는 졌지만, 어제(5일) 경기에서 19살 좌완 투수 이의리 선수의 활약은 눈부셨고, 대한민국 야구의 희망을 봤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내일(7일)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동메달 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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