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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Aug 17. 2018

어느 가족

가족 vs. 식구

해변가에 놀러가는 즐거운 시바타 가족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으로, 2018년 칸 영화제 최우수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장편 영화이다.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판타지 영화다. 해리포터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어벤저스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더 초인적으로 보였다. 왜 그런지 한번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도쿄의 한 작은 기와집에 할머니, 아빠, 엄마, 이모, 오빠와 어린 딸, 모두 6명인 시바타 가족이 살고 있다. 거실과 좁은 방 하나뿐인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이들을 항상 행복하다. 이들에게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상대방을 힘들게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가 다리를 다쳐 막노동을 못하게 되어도, 엄마 노부요(안도 사쿠라)가 정리해고를 당해도 그저 웃으며 넘어간다. 가족들 모두 같이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이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이란 그저 각자 해결해야 할 사소한 문제 같은 것인데, 이들에게는 조금 비윤리적이고 때론 불법인 각자의 해결책들이 있다.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은 전남편 자식들에게 돈을 뜯어내고, 오사무와 아들 쇼타(죠 카이리)는 좀도둑질로 생필품을 구해온다. 이모 아키(마츠오카 마유)는 성인 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위태롭게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생존을 위한 활동 중 하나일 뿐이다. 


수퍼마켓에서 생필품을 훔치고 있는 아빠 오사무와 아들 쇼타


이들은 원래부터 가족은 아니었다. 아들 쇼타를 빼면 모두 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애초에 이 수상한 가족에 편입된 동기는 순수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연금과 집에 기대 살려는 거지 근성이, 임신을 할 수 없는 여자가 엄마가 되고픈 욕심이,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생존 본능이, 이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노부요에 말처럼 직접 선택한 가족이었기에 더 강한 유대감을 갖게 되었다.


결국 이 가족은 파국을 맞이하고, 가짜 엄마 노부요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된다. 실질적으로 이 가족의 시작이었고, 가장이었던 노부요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남들이 버린 이들을 주워 만든 가족으로 행복했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범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학대받거나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것, 홀로 남겨진 노인의 집에 들어가 사는 것, 모두 해서는 안 되는 범죄였던 것이다.


경찰에게 취조를 받고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 노부요


국어사전에 나오는 ‘가족’의 뜻는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그로부터 생겨난 아들, 딸, 손자, 손녀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이에 따르자면 가족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다 너를 위한 것이라며 아이에게 무리한 기대를 하고, 부모니까 당연히 나를 이해해줘야 할 것 같아 더 섭섭하다. 여기에 돈 문제가 얽히면 가족은 금방 철천지 원수가 된다. 


가족과 비슷한 단어인 ‘식구’의 뜻은 ‘같은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좀 다르다. 한자도 먹을 식, 입 구를 쓴다. 시바타 ‘식구’들은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각자 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사이좋게 전골을 나누어 먹는다. 왁자지껄 각자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할머니는 어릴 적 배운 민간요법으로 새 손녀딸의 야뇨증을 치료해준다. 부러울 정도로 행복해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일까 식구일까? 난 식구가 갖고 싶다. 늙어서도 자식들을 도와주고, 그 아이들이 함께 바닷가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며 함께 놀고, 자식들과 부인이 함께 사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재의 난 이미 오사무와는 거리가 먼 아빠이다. 초등학교 딸아이가 하는 행동들에 매번 걱정이 앞서고, 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놀아달라는 조름이 때론 귀찮게 느껴진다. 부인의 잔소리는 당연히 듣기 싫다.


물론 우리 가족은 객관적으로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아빠 엄마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들보다 조금 더 넓은 집에 살고 있으며,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보증하는 합법적인 가족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매일 훈시를 할 수도 없다. 영화 속 이야기라고 판타지로 치부하고 싶지도 않다. 가족들에게 매일 고맙다고 말하며 스스로의 행복을 감사하며 사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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