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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진 Sep 21. 2018

서치

인간관계의 최신 트렌드

<서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이다. 이 작품은 여러 장치를 통해 인간관계의 최신 트렌드를 보여준다. 미국 실리콘 밸리가 배경이고, 모든 영화 장면은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구성되었다. 등장인물들은 화상 전화, 소셜 네트워크, 비디오 채팅 앱, 혹은 TV 뉴스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만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흐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외부와의 소통이 대부분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의 형식은 파격이나, 내용은 매우 익숙하다. 몇 년 전 떠나보낸 엄마를 그리워하는 고등학생 딸 마고(미셸 라)가 실종되자 경찰은 가출을 의심한다. 아빠 데이비드(존 조)는 그럴 리 없다며 마고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본인이 딸의 교우관계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데이비드는 마고의 친구를 찾기 위해 그녀의 소셜 네트워크 속 친구들을 하나씩 연락하는데, 그중에는 진정한 마고의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영화적 과장이 있기는 하지만, 실은 우리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수백 명의 친구가 있어도, 그 숫자가 진짜 나의 인간관계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요즘 네트워크라는 용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떠올릴 것이다. 원래 네트워크라는 개념은 의학영역(피부조직, 유전자)에서 먼저 개발되었고, 이후 컴퓨터 공학 (인터넷), 도시공학(교통망), 사회학(인적 네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게 되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라슬로 바라바시에 따르면 이러한 네트워크들은 구성이나 작동원리 등에서 유사점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네트워크들은 노드, 링크, 허브라는 구성요소를 갖는다. 소셜 네트워크를 예로 설명하자면 각 사용자 및 그들이 만들어 낸 포스팅들이 노드이며, 사용자 둘이 친구로 연결되어 있거나 각 포스팅이 댓글, 공유, 좋아요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 관계를 링크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용자 혹은 포스팅은 특히 링크가 많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노드를 허브라 부른다. 허브는 네트워크의 성장과 유지를 위한 핵심적인 요소다. 예를 들어 학생일 때는 학교가 급우라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지만 졸업하고 난 후에도 그 네트워크가 유지되려면 허브가 필요하다. 즉, 스스로 나서서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주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허브가 없으면 그 모임은 자연히 소멸된다. 때문에 네트워크의 달인들은 허브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기도 하고 스스로 허브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제외하면, 대부분 네트워크에서 허브는 어떤 노드가 의지를 가지고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도리어 진화론적 관점으로 허브가 있는 네트워크들이 살아남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어떤 네트워크가 성공적인가의 여부는 그 안에 속한 노드들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가로 결정된다. 다시 SNS의 예를 들면 어떤 서비스가 더 가치 있는가는 얼마나 많은 사용자들과 그들의 포스팅이 서로 얼마나 많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친구, 공유, 댓글, 좋아요)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네트워크의 성공을 정의하는 기준이 각 노드들 혹은 개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 개개인이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행복의 만족도는 양보다는 질적인 측면에 달려있다. 수백 혹은 수천 명의 페이스북 친구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하나의 우정과 사랑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마고는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소셜 네트워크에서 치유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인간이 갖는 인간관계의 만족감은 친구나 좋아요의 숫자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양적인 부분에 점점 더 집착하고 있다. 이러한 집착이 페이스북 같은 SNS 회사를 위한 것인지 우리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데이비드와 마고는 (그리고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영화 내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서만 소통한다. 하지만 <서치>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그 둘이 실제로 만나 찍은 사진 한 장이다. 디지털 기술을 우리에게 인적 네트워크를 손쉽게 확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 도구를 주었지만, 이 도구가 실제 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트렌디한 이 영화가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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