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속먼지 Nov 20. 2020

아들을 낳는 것이 여전히 '이쁜 일'인 사회

아들이라고 고마워하지도, 칭찬하지도 않는 사회에 살고 싶다.

어찌되었든 나는 임신을 했다. 하여튼 나는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결국 모범생이다. 잠시 휴학을 하고 외국에 가서 살았을지언정 결국 동기들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나이와 능력에 과분한 (물론 워킹 아워에는 적합한) 연봉을 받다가 동기 누구보다도 먼저 결혼을 했고 이제는 동기 누구보다도 먼저 아기를 가졌다. 


아이를 임신하고 나서부터, 혹은 그 이전에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내게 자식 성별을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무엇이든 상관없다고는 답했다. 딸이면 귀하고 이쁘게, 우리 부모님이 나를 키웠듯이 키워주면 된다고 생각했고, 아들이면 (조카를 미루어보건대) 딸보다는 덜 걱정하며 어리고 둔한 귀여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한 편으로는 아이 몇을 낳건, 아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말했듯이 나는 모범생인데, 사회에서는 아들이건 딸이건 무언가가 결핍되어있으면 항상 말이 나오니, 그냥 골고루 낳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딸을 낳은 형님-남편의누나-에게 아기가 100일도 되기 전에 시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너희 시어머니는 아들 낳으라고 그러시는 분은 아니니?" 라고 물어보는 그 염려스러운 표정이, 남편의 할머니가 형님에게 (형님의 딸이 엄지손가락을 빨자) "딸이 엄지손가락 빨면 엄마가 아들 낳는다던데, 너도 둘째 아들 낳으려고?" 라고 물어보시는 것이 경멸스러우면서도, 아들 낳지 않으면 나에게도 저런 말을 직간접적으로 하시겠구나- 싶긴 했다. 그래서 하나 낳아버리면 속은 시원하겠다 싶긴 했다.


우리 엄마의 엄마-나의 할머니-는 아들 둘 딸 둘을 낳았다. 아들-딸-딸-아들의 순서로. 다 장성한 자식들이 할머니 생신을 위해서라도 모이는 날이면 오빠 - 누구야 - 언니 - 누나 - 하며 오가는 호칭 속에서 그 단단한 유대감과 퍼져나가는 포도송이같은 자손들을 보며 '우리 할머니는 좋겠다. 든든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 우리 엄마는 딸만 둘 낳았다. 아빠가 아들 타령하는 남자도 아니었고, 할아버지는 셋째를 낳아보라고 추천하셨다지만 어쨌든 아빠가 잘 컷트하여 내가 우리집 막내딸이자 둘째딸이다. 그래도 나는 딱히 구박을 받고 크지는 않았다.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우리 할머니는 아들손주만 이뻐해서" 같은 일을 겪어본 적은 없다. 물론 장손을 더 이뻐하긴 했겠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안의 귀여운 막내 손녀도 골고루 사랑해주셨다.




아이를 임신하고 나니 과연 이미 성별이 정해진, 3cm에 불과한 이 콩알만한 아이가 과연 여자일지 남자일지 정말 궁금하긴 했다. 아이를 여럿 낳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딸 부자집의 막내 아들 구조와 아들 부자집의 막내 딸 구조를 사회에서 얼마나 다르게 보는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해치워버리자-의 느낌?) 그리고 한 편으로는 직접적인 차별을 받아보지도 않았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했다. 쳇. 나 또 모범생처럼 구는거야? 부당한 사회구조에 굴복할꺼야?- 생각하며.


남편과 12주차에 산부인과를 갔을 때, 의사선생님은 열심히 성별을 볼 수 있을까 요리조리 살펴봐주었는데 일단 아기가 자세를 도와주지 않기도 했지만, 떡하니 달려있는 고추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머리 속을 스치는 수많은 내 딸이 당할 일들이 생각났다. 박완서 소설에서 본 시어머니가 아기가 딸인 것을 알자 '쳇' 하고 나가버렸다는 소설 에피소드도 생각났다. 저 위에 적은 남편의 어머니와 할머니 얼굴도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 아빠가 그 누구보다 곱게 키운 내가 결혼하며, 결혼하고 나서 들은 '여자'로서의 차별적인 발언들이 생각났다. 그들이 악의가 없었다고 해도 뿌리깊은 편견과 작은 사고관 속에서 내가 들어야했던 말들도 생각났다. 


그리고는 눈물이 났다. 나는 비교적 설움없이 살았는데도, 오히려 공주처럼 자랐는데도 이런 사사로운 억울함이 있는데 내 딸도 그렇겠구나. 아무리 내가 곱게 키우고, 입주 가정부가 차려준 밥을 먹이고 기사차를 태워 학교에 보내도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하나씩 적거나 불평하기엔 사소할 수 있지만 분명히 '틀린' 일과 말과 표정들을 만나겠구나. 가엾어라. 그런 존재를 나는 열 달을 잘 품어주어야겠다. 그리고 잘 키워줘야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실 딸은 또 입히는 재미가 있으니 김칫국 마시며 원피스도 줄지어 샀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오래 가지고 가는 사람은 아닌 것이 장점인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16주차의 임산부는 산부인과에 갔다가 "보이시나요 이것이 거시기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아?


처음 든 생각은 잔뜩 사둔 원피스들 아깝다. 둘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아 맞다 아들이라고. 아들 귀엽겠네 -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이 안도하는 것을 느꼈다. 다행이다. 곱게 키운 자식이 이 냉정하고 배려 없는 사회에서 차별 받을 일이 그래도 하나 줄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자신을 위해서도 과제 하나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아들 손주를 바란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 싶으면서도 사실 당신 아들 귀하다고 남녀 타령하는 60대 노인 둘이 말을 안 할 뿐 바라기야 얼마나 바라겠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니 또 화남. 그러다 잊어버림. 그 연속의 일상을 살고 있다.




나는 이전에 올린 브런치 글에서 "집을 양가가 공평하게 부담하였으니 부모님을 모시는 도리도 양가가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추석에는 무조건 저희 집만 가겠습니다." 선포한 이후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왕래가 없다. 시아버지는 멀리서 며느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표시로 카카오톡에 나의 출산 예정일을 '손주 D-nn' 적어두긴 했지만 시어머니는 토라져 가족 채팅방을 나가버렸고 나는 내가 틀린말 한 것도 아니고 예의 없게 얘기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행동하는 어른들이 '어른답지 못하다'며 딱히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지 않다. 

https://brunch.co.kr/@dust-universe/14


그리고 지난달 배나온 임산부가 이사를 하는데, 고생한다는 연락도, 예의상 와서 도와주겠다는 연락도 하지 않은 남편네 사람들에게 나는 괘씸죄를 추가하였다. (친구들은 보통 시부모가 며느리가 연락안한다고 괘씸하다고 하지, 며느리가 반대로 그러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한다. 안다. 그래도 첫 신혼집에 들어갈 때 에피소드인 '제가 시모여서요..' 까지 고려하면 괘씸하다.) 

https://brunch.co.kr/@dust-universe/2


그래서 보나마나 기뻐할 그 소식을 나는 남편네에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남편은 일이 바쁘고 원래 살갑게 부모에게 연락하는 타입이 아니니 당연히 알리지 않았을거고. 결국 참다못한 시어머니가 그 궁금증을 못이기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더라. "잘 살고 있니? 아기 성별은 뭐니?" 남편은 바로 "응 잘 지내. 남자 아기야" 답했더라. 그리고 시어머니는 "다행이네. 잘 지내라."라고 했더라.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닌 우리 시어머니의 저 '다행이다'는 잘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뜻이겠지만 나는 괘씸죄와 함께 이것 조차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며칠 뒤 시어머니가 자신의 시어머니이자, 남편의 할머니에게 드디어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말했나보다. 남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할머니에게 너희 아기가진 것 말했어. 할머니가 고맙다고 몸 조심하래." 남편은 읽씹했더라. 보나마나 시어머니에게 "누구가 임신했어요. 아들이라고 하네요" 라며 마치 한 시름 놓은듯이 얘기했겠지. 그리고 시할머니도 아들이라는 말에 마치 자신이 여지껏 살아있었던 숙원 과제를 해결한마냥 고마워했겠지. 내가 임신한 아이가 딸이었어도 그랬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래 훌륭한 가임기 여성임을 증명했구나. 곧 아들도 낳겠지' 라고 생각했겠지.


꼭 남편네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어른들도 그런 말들을 스치듯 많이 하고 있다. 나를 이뻐해주셔 반찬까지 만들어 보내주시는 친구 어머니나 이모 할머니들이 아들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이쁜 애가 이쁜 짓만 해" 라고 한다거나 "아이가 잘했다 잘했어" 하는 것들이 다 그런 것들이지. 그게 나를 이뻐해주는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 스스로 한 명의 딸로서, 또 딸을 언젠가 낳을 사람으로서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이전글 설날을 시댁에서 보냈으니, 추석은 친정에서 보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