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변화하는 (지)점은 서로 다르다. 예컨대 우리가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것만을 봐도 그렇다.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몸은 벌써 혹은 갑자기 고장이 난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
일주일새 나의 아버지는 심장혈관이 막혀 응급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고 퇴원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를 맞는 아빠는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였고 내가 왜 이런 중환자들 사이에 있어야 하는지 답답해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이 환자들 사이에서 나를 떼어놓지 않으면 나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겠다 간호사에게 으름장을 놓았단다. 일주일간 두번 병원을 오가며 나 또한 마음에 이상이 생겼는지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아니면 그 전부터 이상했던 기미가 고개를 쳐들었는지 속이 답답하고 숨이 가빴다. 운동부족이라 여기며,
코로나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게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 마스크를 하고 잠을 자야한다니, 안과 밖을 통하는 문은 몇개 나 있지 않았고 수시로 확인하는 그것들에 지쳐 갈 때즈음 퇴원을 명 받았다. 나는 답답한 병원에서 아빠는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에 흥에 겨운지 마스크를 차에 벗어 내던졌다. 사실, 내가 온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때문이었다.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까. 그 마음은 늙어가는 몸에 비해 나이를 먹지 않았다. 되려 물에서 건져올린 생선과 같았다. 애써 침착하고 평안한 척 했지만 나는 그렁그렁 눈에 매달린 물이 차가운 바람에 휙 날아가버리기 직전에 보았다. 지난번 사준 안구건조증 약은 요새 먹지 않는군 하면서,
이런 날이 이리 일찍 찾아올 줄이야. 가슴을 쓸어내리다 나 또한 가슴이 답답하고 해서 밥을 먹지 못하다 엄마에게 증상을 들켜버렸다. 밤사이 매실을 세 컵이나 들이붓고 들기름을 두어스푼 집어삼키며 엄마의 속삭임(잔소리)을 들어야했다. 이른 새벽 엄마의 거친 손이 내 배위를 쓰다듬어 잠시 잠에서 깼을 때 조용히 읊조리는 기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을 청했고.
“기쁨이 왔어!”
이른 새벽에 엄마는 날 위해 기도하다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아침에 눈 뜬 나에게 소리쳤다. 그렇지 은수도 시우도 나에게 놀라운 기쁨인 것처럼 엄마에게도 내가 그럴꺼야, 속으로 말했다. 그러나저러나 아빠 혹 떼러 왔다가 내 혹까지 붙여줘 버렸네, 미안하지만 덕분에 내 속은 편해. 진짜 속이 편해져버렸다. 운동부족일꺼야,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마음을 너무 써서 그런가, 밉기도 하지만 때론 가여운 생각도 든다. 니 아빠 말여, 스트레스가 가장 위험하다드라 의사 말이. 그러게 엄마도 이제 잔소리좀 작작.. 말하려다 말았다. 간밤 엄마 거친 손이 생각난 것은 열차를 타고 나서다. 엄마도 스트레스 받지 말어. 세상에 나처럼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출퇴근 하는 버스에 나만 홀로 타서 봄이면 벚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 여름과 겨울엔 손주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행복해
옅은 안개를 헤치고 뜨는 해를 오른편에 두고 간다.
눈 녹으면 운동해야지,
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