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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젹 Jun 29. 2023

방랑백수기_남양주

7h. 충분한 시간

기약 없이 일 없던 어느 초여름, 쏘카 쿠폰이 생겨 어디든 가고 싶어진 오후였다. '서울 근교 여행지'를 검색할 수 있지만 주로 내가 이럴 때 선택하는 것은 그냥 지도 앱을 열어 위성지도를 보는 것이다. 많은 지도 앱 중, 네이버 지도를 쓴다. 즐겨찾기 기능이 꽤 요긴해서인데, 이번 여행도 하나의 별 마크에서 시작되었다.

왜 저장해뒀는지 모를 즐겨찾기. 그때의 내가 고맙다. 사진이 이렇게 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요즘의 수면 패턴으로 보아 내가 출발할 수 있는 시각이 대략 오후 두시 정도였기 때문에,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장소들을 찾던 중 팔당호 주변에 별 마크 하나를 발견했다. 언제, 왜, 심지어는 누가 체크했는지도 모를 '내 장소' 였는데, 살짝 줌인을 해보니 다산 생태공원이라는 생소한 곳이었다. 집에서 차로 1시간 남짓, 이름을 익히 들었던 팔당댐 근처였다. 그 장소의 위성지도를 보는 순간 그 곳이 지금 내게 필요한 조용한 자연 가운데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2시부터 9시까지, 소형 SUV를 예약했다.


설렘 없이, 약하게 떨어지는 비를 우려하며 차가 있는 쏘카 존으로 향했다. 전에 그 차를 빌렸던 사람은 화장실 급한 사람 마냥 차를 엉망으로 대 두었고, 기름도 채우지 않아 거의 바닥이었다. 꿍시렁거리는 것을 들어줄 사람도 옆에 없었기에 입술 한 번 삐죽 하고는 차를 뺐고, 가까운 주유소로 향했다. 일방통행 길에 차를 세워 둔 아주머니를 빵 한번으로 소환하고, 골목길을 돌고 돌아 주유소에 도착했다. 새로 만난 차는 엑셀이 잘 밟혔고, 브레이크는 살짝 뻑뻑했다. 앞 예약자의 비매너로 인해 무려 유턴을 해야 하는 우회로를 선택해야 했기에(나는 운전 초보다.)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나는 회색 하늘 아래 제 길에 올랐다. 늘상 막히는 강변북로를 지나고 나니 날이 조금씩 갰고, 콘크리트 건물들 대신 강과 산이 앞 유리를 채워 가기 시작했다.





렌트카를 빌리러 갈때부터 듣고 있었던 2시간 가량의 시사 유튜브가 거의 끝나갈 때쯤(시사 유튜브와 내비의 공존은 썩 즐겁지 않았다. 서로 맥락을 끊는 느낌이랄까.) 공원 주차장이 보였다. 지갑 사정이 좋을 리 없는 백수여서 주차장 입구에 정산기가 없다는 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늘엔 구름이 여전히 많았지만 내리는 비는 햇살을 머금고 있어 드라마에서 내리는 가짜 비 느낌도 들었다.

1. 봉주르 제빵소, 암울했던 하늘 / 2. 바질과 레몬빵

내리자 마자 내가 들어간 곳은 빵집이었다. 대강 먹고 나온 아점은 강변북로 어디쯤에서 모두 소화되었고, 아직은 눅눅 후덥한 날씨 한 가운데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몬 빵과 바질 빵을 사고 사람이 없는 2층 자리에 올랐다. 에어컨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폴딩도어가 모두 열려 있어 굳이 그걸 닫고 에어컨을 켜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바질 빵은 바질 향이 짙었고 잡곡이 섞여있어 식감이 좋았다. 레몬 빵은 깔끔하고 덜 달아서 맛있었다. 음료는 에스프레소 투샷과 얼음이었는데, 대학 시절부터 나의 여름을 든든하게 지켜준 메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카페인 중독인 내겐 조금 약할 때가 많은데 이렇게 주문하면 첫 입은 시원한 에스프레소, 마지막 입은 시원한 진한 아메리카노로 먹을 수 있다. 이번엔 텀블러를 가져가 오랫동안 얼음이 남아 있었다.


에어컨 없는 카페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을 뿐더러 실학 박물관의 마지막 입장이 5시였기 때문에, 허기만 채우고 카페를 나섰다. 차에 잠깐 들러 비상용 책들과 남은 빵을 두고 가벼워진 가방을 메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실학박물관 답게 기중기, 무기(대포 같은 것들) 등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약용의 생가도 가는 길 왼편에 보였으나, 그때는 아직 에어컨 바람을 더 쐬어야 하는 상태여서 박물관으로 먼저 향했다. 박물관은 입구에서 보면 작은 2층 건물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3개의 상설전시관과 1개의 기획전시관이 있어 예상보다는 조금 컸다.

실학 박물관 입구 모습.

상설 전시관에는 정약용 이전과 이후의 실학자들에 대한 설명, 그들의 저서와 초상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국사 책 한 꼭지가 길게 늘어서 있는 기분이었다. 국내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것이,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지리적으로 해당 도시나 지역에 연관이 깊지만 정작 원본들은 서울의 대학 박물관들이나 국립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원본이 소장된 도시를 떠나 복제본이 있는 박물관으로 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만 이런 경우마다 약간의 허탈함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이번에 방문한 실학 박물관 같은 경우에는 실학자들의 초상화가 낮은 화질로 인쇄되어 있어 약간의 실망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이런 박물관들은 흩어져 있는 원본들을 맥락에 따라 한 이야기를 이루도록 모아주고, 그 이야기와 깊은 연관이 있는 지역인 만큼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시사 유튜브를 계속 들으며 와서인지 그냥 난독증이 온건지 사실 전시된 글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아 상설전시는 빠르게 돌고 기획전을 보러 갔다. 정약용이 유배 과정과 유배 기간 중 가족들에게 보낸, 그리고 그 기간동안 가족들이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와 시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형제간의 우애와 부인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글과 그림을 통해 느껴졌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사실 잔소리 같은 것들(아들아 이 책을 읽고 저 책을 읽거라 라는 등)이 많았지만 그게 조선의 'tough love'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신기했다. 정약용 선생님이 아내와 60년의 결혼 생활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서로 주고받은 편지에 깊은 정이 느껴졌다. 아내에게 7언 절구 시를 보내는 남편, 남편에게 4언절구 시를 보내는 아내 둘 다 멋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1. 기획전 입구 / 2. 내부 / 3. 정약용의 고향 그림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굳이 생가를 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시를 보고 난 후 궁금해졌다. 강진에서 그렇게 정약용 선생님이 그리워 하던 고향 마을 그 곳에 내가 와 있으니, 가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어느새 그치고 부분부분 파란 하늘이 보였다.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與猶堂)은 'ㅁ'자 구성의 한옥으로, 작지 않은 크기의 마당이 거의 정방형을 이루고 있었다. 칸 수나 크기가 지나치지 않고 소박한 집이었다. 집 앞의 나무가 워낙 커서 다산이 살았던 시대와 나의 시대의 차이를 일러 주는 것 같기도 했다.

1. 여유당 앞의 큰 나무 / 2.여유당 현판 / 3. 여유당의 마당
여유당의 작은 마당들. 툇마루에 잠시 앉았더랬다.

왠지 주변도 다 마을이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문화관 등 시설들을 제외한 곳들은 잔디밭으로 비어 있었다. 한강 상류가 휘어져 흐르는 사이 남쪽을 향해 누운 야트막한 언덕, 참 살기 좋은 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있는 정약용 부부의 묘에 내 방식대로 인사를 한 후(잠시 보다가 목례를 했다) 나는 가장 궁금했던 생태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생태공원 가는 길 마주한 풍경

박물관에서 생태공원을 가는 길은 그렇게 잘 정비가 되어 있지도, 이렇다 할 표지판도 없었다. 지도를 보며 얼추 길이 시작되는 것 같은 곳으로 걸었고, 음식점들이 드문드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쳐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을 마지막으로 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왠지 가장 좋을 것 같아 미룬 것도 있지만 공원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이 동네 여행의 마지막으로 장식하면 좋겠다 싶었다. 공원은 생각보다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비가 왔음에도 웅덩이가 거의 없었고, 램프로 이뤄진 전망대에서는 공원을 끼고 흐르는 강을 넓게 조망할 수 있었다. 산책로 양 쪽으로 키 큰 풀들과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여름을 만끽하기 좋았고, 강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는 가운데 벤치들에는 부모님뻘의 어르신들이 도시락도 드시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여행을 하다 꼭 나오는 약간의 오지랖인데, 부모님 뻘의 부부가 함께 계시면 꼭 같이 사진을 찍어 드린다. 그들도 셀카를 잘 찍으시겠지만 왠지 엄빠 생각에 예쁜 전신 사진을 담아드리고 싶어 기회가 될때 꼭 (INFP답게 벌벌 떨면서) 여쭤보고 찍어드린다. 이번에도 전망대 한 곳에서 한 부부의 사진을 찍어 드렸는데, 뒤돌아 걸어 갈 때 '역시 젊은 애들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투의 기쁜 목소리가 들려 혼자 뿌듯해 했다.


1. 전망대에서 본 팔당호 / 2. 그 때의 하늘
여름이 가득한 공원

나중에 지도를 보니 공원을 낀 그 강이 사실은 팔당 댐으로 막힌 팔당호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댐이 조성되기 전의 강가에는 마을도 있었을테고, 여유당은 아래로 더 많은 마을과 땅을 굽어보고 있었을텐데 그 모습이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인적이 드문 호수에는 오리, 가마우지, 백로 등 많은 물새들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지는 해를 따라 뭍으로 떼를 지어 날아가기도 했다. 참 멋진 광경이라는 생각과 이 존재들도 먹고 살기 위해 출퇴근하는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밥벌이를 경험하면 사람이 이렇게 되나보다. 아쉬웠던 것은 아직 연꽃이 필 때가 되지 않아 우람한 연잎들만 잔뜩 봤는데, 그렇게 큰 연잎을 가까이서 본 일이 몇 번 없어서, 연꽃에 물방울이 큼지막하게 놓여 있는 것을 처음 본 것 같아서 충분히 좋았다. 여름이야말로 자연의 녹색 광기가 빛을 발하는 때이지 않을까.


1. 물 위엔 물새들 / 2. 벤치엔 어무니들
연잎 가득한 공원

충분히 산책하고 나니 이제 이 마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고, 생태공원에서 노을을 보는 것도 너무 좋겠지만 후딱 밥을 먹고 팔당댐 근처에 가면 일몰이 기가 막힌 곳이 또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차에 올랐다. 돌이켜보니 이번 여행은 참 운이 좋았다. 그때 그때 판단했던 것이 결국 너무 좋은 시간을 선사해 줬다. 마을을 떠난 판단도 그 중 하나였다. 차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밥집을 찾아 봤는데, 서울로 돌아가는 길 팔당댐 근처에 있는 곤드레밥집을 찾아 그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한적했고, 작은 마을 한 두개를 거치니 밥집이 있는 관광지가 나왔다. 내가 찾은 곳은 "팔당 자연애"라는 전집이었다. 미나리, 부추 등 전을 주문시 자리 옆에 있는 철판에 바로 조리해 주시는 것 같았는데, 혼자여서, 그리고 돈이 썩어나지 않아서 곤드레밥 정식 하나를 주문했다. 반찬도 간이 좋았고, 야채가 신선했고, 된장은 진한 집된장의 맛이었다. 발우공양하듯 모든 접시를 다 비웠다. 서울에서 더 가까운 곳이니만큼 입을 더 데려와서 많은 음식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던 한 상

여름해가 참 길었지만, 밥을 먹고 나오니 세상이 세피아톤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침잠이 많아 일출은 유니콘처럼 취급하는 나에게는 어딜 가든 일몰이 중요하다. 차에 올라 서쪽으로 물이 보이는 곳을 찾다 '폴콘'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카페를 찾았다. 음식점에서 차로 10분 이내였고, 그 카페에서 사람들이 찍은 일몰 사진들이 맘에 들어 그 곳으로 출발했다. 근경은 시골이고 원경은 도시인 생소한 풍경을 지나 카페에 도착했다. 이미 커피를 많이 마신지라, 그리고 이미 빵도 먹은 후여서(지금 찾아보니 카페의 이름인 'vollkorn'은 통밀 이라는 뜻이다. 빵 한두개 포장해올 걸 후회가 된다.)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카페는 큰 온실 같은 공간과 2층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고, 강가에 야외 좌석들이 놓여 있었다. 기온이 많이 떨어져 밖에 앉기에 딱 좋았고, 잔디밭에는 고양이 세마리가 각각의 자리에서 남은 해를 만끽하고 있었다.

1. 겹치지 않는 컬러의 고양이들
2-3. 식빵 두 덩이

카페는 강가에서 약 5미터 정도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었고, 강 건너편으로 멀리 아파트 단지와 큰 빌딩들이 보였다. 해가 있는 곳 기준으로 북쪽에는 아마도 서울에 속해 있을 높은 산들이 옅게, 하지만 위엄있게 솟아 있었다. 천천히,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강을 물들였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요했고, 눈과 팔뚝과 목덜미가, 들이쉬고 내뱉는 숨이 모두 시원했다. 도시는 내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불을 밝히지 않았다.

1-3. 흐렸던 오후가 감사해지는 하늘 / 4.신선놀음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각, 오렌지 빛 강물을 바라보던 나는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내 운전실력을 고려해 2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서울로 다시 바퀴를 굴렸다. 퇴근시간이 약간 지나 차가 많이 막히지는 않았고, 올림픽대로의 거대한 흐름에 핸들을 맡겼다. 한강은 팔당호만큼 커보였고, 내 아쉬움을 알았는지 해는 출발한 후 금방 자취를 감추고 도시의 빛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떠난 곳에 차를 세우고 크게 숨을 쉬었다. 일을 예상보다 오래 쉬게 되면서 밀려들기 시작한 어떤 감정들을 잠시 막아 세우기 위해, 혹은 어쩌면 다른 색으로 물들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결국 7시간이었다. 스스로를 너무 약하게 대하면 안될 것도 같지만, 어쨋든 궁둥이를 떼고 남양주로 잠시 옮겨놓은 나놈 참 장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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