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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한 새벽빛 Oct 21. 2018

마음 알아주기

상대의 입장이 되는 일은 어렵다

사진 - A가 자신의 상태를 친구들에게 설명하는 그림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고 또 물었다. 가족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입 아프게 나의 아픔을 설명하고 증명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혼자 글로 풀어내느라 모든 징징거림을 이곳에다 쏟아냈기에, 말 없이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그저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 때가 많았지만,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살아갈 것이다. 그것도 아주 살맛나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나를 알아줘야 했다. 온전한 나 자신과 함께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도 필요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힘을 낼 수 있다.


우울증이 있었던 나와 분노조절이 안 되던 우리 반 ADHD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별한 '다름'을 지닌 사람으로서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는 점이다.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한 것이 아니었으며,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A는 나를 아주 잘 따랐다.


화를 다스리는 힘이 자라서 감사하게도 이제는 까마득한 일이 되었지만 1학기만 해도 A는 자주 화가 나서 물건을 부수거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행동을 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 때문에 자기 자신이 가장 힘들 것을 알기에, 믿고 기다려주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힘들고 아픈 마음이 '가짜'임을 알고 명상으로 비워내는 일도 가장 잘했다. 


이런 아이의 행동에 휘둘리지 않고 단호하게 대하는 것이 필요한데, 가끔은 교사로서 자책하는 마음도 들고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 못했지만, 교사는 부모와 같은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것은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고 자라나는 일이다.


상처를 받아도 그것을 다 표현할 수도 없었다. 단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길 바랐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탓에 본의 아니게 부모나 교사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다른 여느 관계들처럼, 아무래도 상대 따로 나 따로인 마음에서는 외로움만 남는다.


약해질 때마다 나는 다시 아이들 편에 서기로 했다. '나' 없이, 아이들 입장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랬겠네... 서툴지만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 어느새 힘든 내 마음이 사라지고 무엇이든 표현해주는 아이들이 고마워진다. 명상 덕을 가장 많이 본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전에 한 번은, 화가 난 A가 교실을 돌아다니며 교실 곳곳에 있는 부착물을 떼는 행동을 하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좀 알아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수업은 이미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 모든 과정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아이들을 향해서 나는 A에 대해 이해시키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랬더니 A가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자신에게 분필을 달라고 하였다. 나는 A에게 스스로 설명할 기회를 주었다.


전두엽까지 신호가 가는 데 보통 아이들과 자신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는 그림. A는 마치 대학교수님처럼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였다.


A의 마음속에 있는 화와 기쁨.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정.



놀라웠다. 스스로 뇌 기능상 자신이 가진 어려움과 가지고 있는 감정, 그리고 이런 다름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표현하고 설명해줘서 친구들도 이해가 아주 잘된다고 말했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격려의 말을 하게 했고 아이들은 A의 장점도 이야기해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다름'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시각을 고스란히 닮아있기도 했다.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면서 만나게 될 무수한 '다름'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조금 더 생겼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것이다.


어느 날에는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며 차라리 자기가 없어지는 게 낫겠다며 A가 내 옆에서 한 시간을 울었었다. 나도 덩달아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서 같이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A야, 아무도 네 마음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상하지.. 선생님도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정말 슬프더라. 하지만 원래 A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 수는 없어. 선생님도 네 마음을 몰라. 그래도 알아주려고 노력은 해왔는데 네가 선생님한테 무례하게 하고 이렇게 스스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니까 선생님은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괜찮아. 선생님 마음은 선생님이 알아줄 수 있거든. 그런데 너는 네 마음도 몰라주잖아. 너의 가장 큰 잘못은 네 마음을 네가 알아주지 않은 거야."


비단 A뿐 아니라, 자신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 모두가 한 마디씩 따뜻한 말을 나누게 했고, 서로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 것을 느꼈다.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학교는 그래서 필요한 곳인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일, 그리고 가족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친구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나아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명상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변화를 경험했는데 특히 B의 변화를 느낀 어머니께서는 명상수업을 우리 반만 할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이뤄지게 못하냐고 물으셨다. 학년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시키고 싶다고.. 학교에서 공부보다도 이런 인성교육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셨다.


어머니 말씀에 힘이 났다. 내가 꿈꾸는 학교도 그렇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과 즐겁게 함께하는 법을 배우러 학교에 다니게 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야 겠다.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학교에 가는 것이 행복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상대의 입장이 되는 것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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