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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Dec 07. 2023

현재 - 돌고 돌아 맞부딪친 우리의 첫 '짠'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짠!


십여 년 전 영국에서 공부할 때 잠시 하우스 셰어를 했던 플랏메이트 친구가 한국에 들어와 오랜만에 강남에서 만나 한 잔을 기울였다. 아니, 오랜만이 아니라 이건 우리의 첫 '짠'이었다.

그때 런던에 놀러 왔던 내 여고 동창 친구와 셋이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되면서 인연이 깊어져, 지금껏 종종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이 끈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건, 어쩌면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성 지오반니 축제의 불꽃놀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모여든 영문모를 인파 속에서 아주 편안하게 축제의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던 건,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우리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때는 술에 관심이 없거나 종교적 신념이 있어 셋 다 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는데, 십 년이 흐르고 보니 그 좋은 곳들을 다니면서 와인 한 잔 기울이지 못하고 지나온 게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플랏메이트 친구는 한동안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이직을 했고, 여고 동창 친구는 그 긴 기간 동안 비영리 재단에서 일을 하다가 이번에 퇴사를 했다. 그곳이 극소수를 위한 영리 목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음을 알고 과감히 퇴사를 결정, 경찰 조사까지 받았던 친구는 수개월이 지나서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 요즘은 블로그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힘든 일을 겪으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에, '반려견이랑 지내는 일상 이야기라도 블로그에 써봐라' 숱하게 권유한 결과 이제는 현물 협찬도 제법 선정이 잘 되는 블로그로 성장을 했다.

영국 친구는 그 바쁜 와중에도 선물까지 챙겨다 주었는데, 다른 마트보다 비싸서 잘 가지 못하던 WaitRose의 식료품이었다.

당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독일계 초저가 마트인 Lidl이나, 정말 시들어빠진 야채가 즐비한 저가 마트 Tesco를 주로 이용했었다. 50펜스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밀가루나 다진 고기는 그런 곳 외에는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던 케케묵은 이야기까지도 이내 웃으며 안주 삼을 수 있는 현재를 지나고 있음에 내심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야근 때문에 나중에 합류한 또 다른 친구의 육아와 외벌이, 직장에서의 고충을 들으며 불과 3년 전 이곳 바로 건너편 건물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오늘 만난 장소 또한 그때 종종 끼니를 때우던 가게라 잡게 된 것이었다.


와인 가게였을 때 꼭 와보고 싶다, 생각하다가 우동집으로 바뀌고 나서야 자주 들락거리게 된 이곳. 내부 인테리어는 와인을 팔던 그때 그대로라, 또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복잡한 이 근방에서 조용하게 술 한잔할만한 곳이 마땅치가 않은데, 음식도 나쁘지 않고 항상 자리가 있어 나와 뭇 지인들에게는 아지트 같은 곳이다.

그렇게 우리가 '누구'로 머물렀던 얼마간의 시간대들이 지층처럼 밀려나고 끊어지고 합쳐지다 잠시 융기한 외딴섬, '현재'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앞으로 또 어떤 직함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외딴섬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누리고, 맛보고, 취하며 그렇게 가보기로 했다.


각자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이고, 또다시 무대를 옮기느라 한동안 고생을 하겠지만 이제 시작된 우리의 '첫 짠'은 우리가 정박하게 될 그곳이 어느 곳이든, 또다시 경쾌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짠!










마음을 양조합니다.

마인드 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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