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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Jul 16. 2024

불운 땔감을 차곡차곡 쌓고 나면

나보다 어린 어른들에게 배운 것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뒤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어른이 되고서 처음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넘어져 반차를 내고 엑스레이에 물리치료까지 알차게 받은 다음 날이었다.



차량 통제로 곳곳이 줄줄이 마비되었던 골목



 회사 건물로 가려면 무조건 지나야 하는 모든 길목이 옆 건물 화재 진화 작업으로 통제되어 한참을 돌아 건물로 들어갔다. 한참 가고 있던 중 전원 퇴근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어차피 재택을 하려면 사무실에 두고 온 노트북을 챙겨야 해서 나쁘지 않은 발걸음이었다.

  온몸이 안 그래도 쑤시는데 대낮에 일찍 돌아와 간간이 스트레칭을 하면서 업무를 볼 수 있으니 나름 소득이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 없이 진압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 이어져 마음이 놓였다.

 쉬엄쉬엄 일을 보며, 최근 몇 주 동안 급격히 바뀐 삶의 흐름에 대해 생각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기 시작한 건 정확히 작년 3월부터였지만, 올 4월부터 본격적으로 누가 보아도 불운한 일들이 하나, 둘 터지며 심리적 안정이나 자기효능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마음을 기댈 울타리가 하나, 둘 사라져 가는 모습을 목도하며 간신히 버티던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곁에 있던 사람들 또한 10분의 1 정도만 그대로 남고, 나머지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인맥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들이나, 내가 그때 마음만큼 잘 해주지 못해서 영영 잃었다고 생각했던 인연들이 아주 우연찮은 기회로 연락이 닿아 다시 밀물처럼 들어왔다.

 오히려 내가 겪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 주고, 어떤 시점에는 내 고통의 원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다시 내 곁에 착착, 서로 짜 맞춘 듯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지금은 또다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여기서 얼마나 더 잘 되려고 이러나'를 읊조리며 되려 불운 땔감을 차곡차곡 주워다 쌓아 올리는 중이다.

 신제품을 론칭하는 주에 화재로 하루 일을 허탕치는 불운 앞에서도, "우리가 아무래도 정말 잘 되려나 봅니다." 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내친김에 다음 분기 할 일과 해외 답사 계획을 툭툭, 공유하는 사람들.




삶의 밑바닥까지 갔을 때
새똥까지 맞아 보면, 되려 웃게 됩니다.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불운과 행운을 곱절로 맞이하며 나보다 먼저 단단한 어른이 된, 나를 알아봐 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하다 보면, 불운 따위는 우리가 만드는 로켓을 쏘아 올릴 땔감으로 쓰자고 절로 다짐하게 된다.

 불운 속에서 행운을 정제할 줄 알았던, 나보다 어린 어른들에게 또 하루 배우며 오늘은 행운의 불씨를 지핀다.


 출근길에 가방에서 떨어져 버린 에어팟 충전기와 퇴근길 사라진 매일 하던 귀걸이 한 짝,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소송의 기각, 10년 이른 이별, 그 외 무산된 모든 약속들.

 그것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거나, 아깝다고 생각하거나, 지난 시간을 아파하는 건, 아스팔트에 쓸린 내 팔 다리가 다 나을 때까지로. 그렇게 기한을 정해 보기로 한다.







마음을 양조합니다.

마인드 브루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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