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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민기 Mar 31. 2021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법이 있다.

생리 컵에 대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법이 있다.

바로 월경이다.


  월경이란, 내 몸 안에 착상을 위한 자궁벽이 만들어졌다가 허물어지면서 배출되는 생리 현상이다. 내 자궁은 얼마나 성실한지 매달 빼먹지도 않고 생리가 찾아온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월경이라는 생리 기간이 싫다. 좀 더 정확하게는 생리대라는 물건에 반감이 큰 것 같다. 언젠가부터 생리혈이 묻어있는 생리대를 버릴 때마다, 지독한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생리통을 경험해본 적 없는 천운을 가진 사람이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남자로 태어나 생리대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호르몬의 변화만으로도 버거운데, 이로 인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어쩐지 억울한 일이다. (나는 생리대 외에도 어마 무시한 쓰레기를 만든다구...)


  한 달의 1/4인 약 일주일 동안, 하루에 최소 4~5번 이상은 갈아줘야 하는 생리대. 이 생리대는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면과 부직포 등을 사용해서 만든다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가임기 여성으로 살았으니, 내가 버린 생리대를 단순히 계산해보면 6천 개가 넘는다. 하지만 나에겐 생리대와 탐폰 이외의 선택이 없었다. 생리대도, 탐폰도 거부감이 들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몇 년 전, 친구가 조심스레 고백했다. 요즘 생리 컵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생리통도 점차 없어지고 생리하는 날에 맘 편히 낮잠을 잘 수 있다며 적극 추천했다. 사용 방법이 기이하긴 해도 사용하다 보면 이래저래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대중적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생리대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생리 컵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 생리 컵을 사용하던 날은 아직도 생생히 생각난다. 기본적인 사용방법은 유튜브 영상과 친구에게서 배웠다. 직접 시범을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 내 질에 내 손가락을 직접 넣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화장실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를 하면서 현타가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ㅜㅜ


  생리 컵을 사용한 지 벌써 4년 차다. 이제는 내 몸과 한결 친해져서 꽤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생리 컵은 재사용이 가능하므로 쓰레기가 없고, 생리 기간에도 불편함 없이 잘 수 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재사용을 위해 세척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어쩔 수 없다. 비닐포장을 뜯어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만인 생리대나 탐폰을 다시 사용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아주 세밀하고 정확한 사용법을 배울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는 생리 컵을 사용할 때마다 자궁경부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최근에는 양이 많은 이틀 동안만 생리 컵을 사용하고 그 후엔 생리 팬티와 면생리대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빨아 쓰는 생리대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세탁을 해야 한다는 점이 생리 컵보다 훨씬 더 번거롭지만 세탁법만 잘 익히면 사용 자체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요즘은 생리 팬티와 면생리대 시장이 커져서 소비자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반가운 일이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맘 편히 생리대 쓰레기 대신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생리대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에 대해 익히 들어왔으므로, 이것은 지구를 위한 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의 몸을 위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 얼마 전, 불가피하세 4년 만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생리대 없는 생리 컵의 홀가분함과 폭신한 면생리대를 누리다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니 은근히 불편하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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