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민기 Mar 31. 2021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법이 있다.

생리 컵에 대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마법이 있다.

바로 월경이다.


  월경이란, 내 몸 안에 착상을 위한 자궁벽이 만들어졌다가 허물어지면서 배출되는 생리 현상이다. 내 자궁은 얼마나 성실한지 매달 빼먹지도 않고 생리가 찾아온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월경이라는 생리 기간이 싫다. 좀 더 정확하게는 생리대라는 물건에 반감이 큰 것 같다. 언젠가부터 생리혈이 묻어있는 생리대를 버릴 때마다, 지독한 쓰레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생리통을 경험해본 적 없는 천운을 가진 사람이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반드시 남자로 태어나 생리대가 없는 삶을 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호르몬의 변화만으로도 버거운데, 이로 인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어쩐지 억울한 일이다. (나는 생리대 외에도 어마 무시한 쓰레기를 만든다구...)


  한 달의 1/4인 약 일주일 동안, 하루에 최소 4~5번 이상은 갈아줘야 하는 생리대. 이 생리대는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면과 부직포 등을 사용해서 만든다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가임기 여성으로 살았으니, 내가 버린 생리대를 단순히 계산해보면 6천 개가 넘는다. 하지만 나에겐 생리대와 탐폰 이외의 선택이 없었다. 생리대도, 탐폰도 거부감이 들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몇 년 전, 친구가 조심스레 고백했다. 요즘 생리 컵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생리통도 점차 없어지고 생리하는 날에 맘 편히 낮잠을 잘 수 있다며 적극 추천했다. 사용 방법이 기이하긴 해도 사용하다 보면 이래저래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대중적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생리대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생리 컵 사용을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 생리 컵을 사용하던 날은 아직도 생생히 생각난다. 기본적인 사용방법은 유튜브 영상과 친구에게서 배웠다. 직접 시범을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 내 질에 내 손가락을 직접 넣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화장실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를 하면서 현타가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ㅜㅜ


  생리 컵을 사용한 지 벌써 4년 차다. 이제는 내 몸과 한결 친해져서 꽤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생리 컵은 재사용이 가능하므로 쓰레기가 없고, 생리 기간에도 불편함 없이 잘 수 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재사용을 위해 세척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어쩔 수 없다. 비닐포장을 뜯어 쓰레기통에 넣으면 그만인 생리대나 탐폰을 다시 사용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아주 세밀하고 정확한 사용법을 배울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는 생리 컵을 사용할 때마다 자궁경부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최근에는 양이 많은 이틀 동안만 생리 컵을 사용하고 그 후엔 생리 팬티와 면생리대를 적절하게 사용한다. 빨아 쓰는 생리대라고 생각하면 쉬운데, 세탁을 해야 한다는 점이 생리 컵보다 훨씬 더 번거롭지만 세탁법만 잘 익히면 사용 자체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요즘은 생리 팬티와 면생리대 시장이 커져서 소비자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반가운 일이다. 덕분에 나는 비교적 맘 편히 생리대 쓰레기 대신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생리대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에 대해 익히 들어왔으므로, 이것은 지구를 위한 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의 몸을 위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 얼마 전, 불가피하세 4년 만에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생리대 없는 생리 컵의 홀가분함과 폭신한 면생리대를 누리다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니 은근히 불편하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껄껄




소심한지구방위대의 다른 글은 매거진에서 보실 수 있어요.

여러 대원이 참여하는 매거진에서 각자의 소심한 실천을 지켜봐 주세요.

https://brunch.co.kr/magazine/planet-guard​



매거진의 이전글 쓰레기의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